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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핵버튼과 평창 사이, 김정은의 게임

중앙일보 2018.01.02 01:41 종합 1면 지면보기
핵을 앞세운 북한 김정은의 승부수가 ‘평창’을 겨냥했다. 새해 벽두 신년사를 통해 평창 겨울올림픽을 “민족 위상을 과시할 좋은 계기”라고 치켜세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38일 앞둔 겨울올림픽이 얼어붙은 남북 관계의 쇄빙선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미국에 대해선 ‘핵 단추’로 위협했다. 김정은은 1일 오전 조선중앙TV로 30분간 방영된 신년사 첫 대목에서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고 했다.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과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 등을 “역사적 대업 성취”로 주장하면서다. 특히 김정은은 “미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A4용지 10쪽 분량 신년사에 핵 관련 단어는 22차례(지난해는 5회) 등장했다. ‘김일성·김정일’도 거명하지 않아 집권 7년차 홀로서기를 예고했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은 “핵 무력 완성을 토대로 한 자기과시 형태의 공세적 레토릭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남북 관계와 관련, “남조선 집권세력이 바뀌었으나 북남 관계에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문재인 정부에 불만을 토로했다. “오히려 미국의 대(對)조선 적대정책을 추종함으로써 북남 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격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런 언급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한·미 공조에 북한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대북정책 전환과 한·미 대북 공조를 이간하려는 노림수가 깔린 평화공세”라고 해석했다. 눈길을 끄는 건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을 요구한 대목이다. 김정은은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겨울올림픽 기간 중 군사연습 연기를 고려하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의 참가 표명으로 한·미가 연합연습 연기를 조만간 공식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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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북한 신년사 7시간 만에 “환영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선언 대북 제안을 거부해 온 북한이 화답했다는 점에서다. 고민도 크다. 대북제재 국면에서 한국만 남북 대화로 유턴하는 건 부담이다. 싸늘하게 식은 국민 대북 감정을 달래는 것도 쉽지 않다.
 
김정은 신년사가 구두선에 그친 경우가 많은 것도 정부엔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지난해 12월 초 “북한의 ICBM 완성을 막을 기한은 3개월”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에 뒤통수를 맞을 경우 김정은의 시간 벌기에 말려들었다는 비판이 정부에 쏟아질 수 있다. 김정은도 신년사에서 “핵탄두와 탄도로켓(미사일) 대량 생산 및 실전 배치”를 언급했다. 통일부는 “핵 능력 고도화는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핵 버튼을 거머쥔 김정은의 유화공세는 도발 국면보다 대처가 더 까다로울 수 있다. 그의 입보다는 발걸음을 주시하며 신중한 대북전략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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