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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개띠'가 묻고 '58 개띠'가 답했다 "인생 별 거 있다"

중앙일보 2017.12.29 02:00 종합 4면 지면보기
2018년은 무술(戊戌), 개의 해다. 현대사의 굴곡을 겪으며 쉼 없이 달려온 '58년 개띠'가 환갑(還甲)을 맞는다. 이제 58년 개띠 앞에 놓인 화두는 '노후'다. '두 바퀴' 아래 띠동갑 82년생 개띠는 서른여섯, 청춘에서 장년으로 다가섰다. 인생 2막에 돌입한 전직 최고경영자(CEO) 58년생과 시인 82년생이 '개띠 공감' 이야기꽃을 피웠다. 
개띠인 58년생 정권수 전 버거킹코리아 대표(왼쪽)와 82년생 오은 시인이 26일 오후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소품으로 준비한 강아지 인형 가운데 정씨는 '누렁이'를, 오은은 가장 엉뚱하게 생긴 강아지를 골랐다. 박종근 기자

개띠인 58년생 정권수 전 버거킹코리아 대표(왼쪽)와 82년생 오은 시인이 26일 오후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소품으로 준비한 강아지 인형 가운데 정씨는 '누렁이'를, 오은은 가장 엉뚱하게 생긴 강아지를 골랐다. 박종근 기자

동창회에서 어떤 놈이 그러던데 우리가 뭐, 베이비붐 세대라면서?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 왔다고 하던데, 그랬냐? 그러고 보니 우리는 참 여러 가지로 장한 인생이야. (중략) 그래서 너는 사는 게 재밌냐? 이 나이에 재미는 무슨 재미야. 술 맛있는 줄도 모르겠고 마누라가 목욕을 해도 돌아누워서 자고, 진짜 뭘 해도 재미있는 줄을 모르겠어. 돈도 얼마 못 벌어놔서 노후를 생각하면 한숨 나고. 뭐 이 타령으로 살다가 끝나는 거겠지, 별거 있겠냐. -은희경의 『마이너리그』 중에서.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신문지를 구겨대던 시대에 태어나 민주화, 경제성장,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등을 지나 스마트폰으로 동창들과 연락하는 시대에 다다랐다. 내년이면 만 60세, 환갑(還甲)을 맞는다. 개떼처럼 많다고, 생활력이 강하다고, 맹랑하다고 '58년 개띠'라 불렸다.
 
'58년 개띠' 정권수 전 버거킹코리아 대표이사와 '82년 개띠' 시인 오은이 마주 앉았다. 35세의 오 시인은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고도 성장기에 초년기를 보냈다. IMF 시대와 정보기술(IT) 혁명기를 거쳤다. '스펙' 붐을 통과해 30대에 이르니 '두 바퀴' 인생 선배들이 젊었을 때 맞이했던 것과는 다른 팍팍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정권수씨=195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83년에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77학번)하고 그해 5월 두산그룹에 입사해 기획실 등에서 근무했다. 2012년 두산그룹 계열사였던 버거킹코리아에서 대표이사를 맡았고, 이듬해 퇴직했다. 올 2월부터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중·장년층에게 사회공헌 일자리를 연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오은 시인=198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2007년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02학번)하고 2009년에 KAIST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부터 4년간 다음소프트에서 빅데이터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현재 ‘파스텔 뮤직’ 수석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2002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해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등의 시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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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내 어머니를 보고 '58년 개띠'라는 시를 썼다. 어릴 때 정읍에서 어머니가 경양식집을 운영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가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한테 이렇게 말하고 계셨다. "이모님, 고기 한 근을 내가 썰면 스물 몇 덩이가 나오는데, 이모님이 썰면 스무 덩이만 나온다. 더 얇게 썰어야 한다." 생존을 향한 강인한 생활력이 느껴졌다.
58년 개띠 - 오은 시인
앞만 보며 달려왔어요
뒤를 볼 겨를이 없었어요
누가 쫓아오고 있는 것처럼
그림자를 볼 여유가 없었어요
뒷바라지하느라 이렇게 늙었어요
앞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누가 달아나고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니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어요
위를 떠받들며 살아왔어요
아래를 보살피며 살아왔어요
위아래가 있는 삶이었어요
옆에 누가 있는지
어떤 풍경이 흘러가고 있는지
이 거대한 풍경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담당하고 있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어요
(중략)
앞을 보면
개떼처럼 몰려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뒤에 있어서
어디로 가는 길인지 모를 때가 많았어요
(중략)
뒤를 돌아다보니 거울이 있었어요
내가 있었어요
잊고 있었던 얼굴에는 물굽이가 가득했어요
어디로 흘러도 이상할 게 없는 표정이
정권수=그게 저절로 형성됐을 거다. 어렸을 때 화장실에 앉아서 쫙쫙 비비면 보들보들해진 신문지, 그게 용변 처리하는 휴지였다. 사는 형편이 좀 나은 사람도 그랬다. 대학에 가 보니 누런 두루마리 화장지가 있어서 와 이런 게 다 있나 했다.
 
=같은 58년생도 사람마다 취향, 삶의 궤적, 형편이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57년 닭띠나 59년 돼지띠와 달리 '58년 개띠'는 키워드로 묶여 있다는 게 특이하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과 우리가 동갑이다. 정치적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교 입학시험이 갑자기 없어졌다. 중3 초까지도 학원 다니면서 입시 공부 했는데…. 명문고 서열 벗어나서 공부 못하는 놈이 경기고 가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기가 안 죽었지 싶다. 직업을 구할 때도 고교 서열 같은 것 상관없이 덤빌 수 있었다. 이런 점이 57년생과의 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민주화 등 역사적인 사건을 관통한 세대이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가 또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나는 당시 군대에 있었는데 부마항쟁이 나니까 군대에 비상이 걸렸다. 철모 쓰고 칼 차고 다녔다. 12·12 때는 우리 군인들끼리 총 들고 싸우게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광주 민주항쟁이 터졌다. 나처럼 군대에 있던 애들도 있고, 밖에서 데모하는 애들도 있었다. 어느 쪽이었든 사회 현상을 남 일 보듯 넘어갈 수 없게 됐다. 이후 80년대 학번들은 득세를 했는데 77~79학번은 피해를 많이 봤다.
 
=취직이 쉬웠다고 들었다.
 
=좋은 직장에 대한 경쟁은 있었지만 대개 취직만 하면 회사가 금방 팽창하고 성장했다. 회사 그만두고 사업해도 70~80%는 성공했다. 큰 어려움 없이 살던 개띠들의 인생은 IMF 사태를 겪으면서 많이 바뀌었다. 열심히 일하면 큰 보상은 못 받아도 위험한 일은 없을 거란 믿음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일본 가는 게 유행이었다. 그런데 IMF 터지고 어려워져 우리는 '부곡 하와이'로 갔다. 요즘처럼 청년실업이 심해지기 전이었지만 대학교 다닐 때 공무원 시험 보려고 아등바등하는 친구가 많았다. 평생직장 보장 안 해준다니까,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 시작했다. 친구들 보면 한 3분의 1쯤이 자의든 타의든 결혼을 안 했다. 걱정이 되는 거다. 부모님처럼 나도 치열하게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여가 시간, 개인의 행복 다 포기하면서 결혼·육아를 할 수 있을까? 지금 30대는 그런 고민을 품은 세대다.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던 걸 알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젊었을 때 아이와 나란히 누울 공간도 없어서 아이를 머리 맡에 두고 같이 잤다. 4대가 함께 사는데 방 3개짜리 전셋집에 살았다. 그래도 과감하게 결혼했다. 우리는 워낙 없이 커서 사는 데 비용이 별로 안 든다. 벌어진 칫솔 쓰는 것도 아무렇지 않다. 요즘 젊은 세대는 본인이 자라면서 경험한 환경보다 나쁜 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지도 모르겠다.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한다. 
 
=저도 사실 단칸방에서 자랐는데 불편함을 별로 못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편의'들을 많이 알아버려서 다시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있을까 싶다. 또 그때야 똑같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철수는 100점 맞았다는데 너는 몇 점이니, 옆집 애는 대학 어디 갔다는데, 이런 비교도 많이 당하며 컸다. 그렇다 보니 겁도 난다. 도전·모험과 좀 멀어져 버린 게 82년 개띠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정 선생님은 어떻게 직장생활을 끝내게 됐는지 궁금하다.
 
='서든 데스'였다. 갑자기 그룹 임원이 면담하자고 했다. "이거 지금 통보받는 겁니까"라고 웃으면서 물으니 "그런 셈이죠"라고 했다. 31년 다닌 회사를 통보 뒤 일주일 만에 나왔다. 퇴직하고 보니까 다들 뭔 자격증이 이렇게 많은지…. 일에 매달려 살아온 내겐 운전면허증 하나밖에 없었다. 그때 부모님이 교대로 입원해 정신 없이 지냈다. 아내는 '저 양반이 집에 왔으면 이제 나하고 놀아줘야 하는데'라는 마음에 서운해했지만 많이 이해를 해줬다.
 
=50년대생들이 '마지막 효도 세대'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 부모님들, 우리 아니면 대책 없는 세대지 않나. 
정씨는 "58년생은 워낙 가진게 없어서 결혼도 사업도 용감하게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은은 "82년생은 이미 '편의'를 알아버려 모험과 멀어졌다"고 했다. 박종근 기자

정씨는 "58년생은 워낙 가진게 없어서 결혼도 사업도 용감하게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은은 "82년생은 이미 '편의'를 알아버려 모험과 멀어졌다"고 했다. 박종근 기자

=일을 그만두기에는 너무 젊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아침의 커피 한 잔'이 그리웠다. 컴퓨터 켜면서 또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마시는 커피가 자꾸 생각났다. 그걸 할 수 있는 데가 지금의 일자리다. 4년 정도 부모님과 시간 보내다 지난 2월 '서울시50플러스' 재단 서부캠퍼스의 보람일자리 매니저로 왔다.
 
=생소한데,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경력은 있는데 뭘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사회공헌 일자리를 소개해 준다. 뜻은 좋은데 사람 채용할 돈이 없는 비영리단체(NPO)가 많다. 회계·법무 등 전문인력이 부족한 NPO에 전문가를 보내 아는 것 좀 전해 주는 일, 취약계층에 도시락 배달하는 일 등 다양하다. 사실 빵 만드는 걸 좋아해 올 초에 제과점을 열 준비를 했는데 아내가 말려 중단했다. "당신 말 한 번 들었으니까 당신 동의 않는 일 해도 한 번 용인해 달라"고 해 지금 일을 하게 됐다. 일주일에 두 번 일하는 '보람일자리'용 교육에 갔다가 일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싶어 주 5일 근무하는 전담 매니저 자리에 지원했다. 지원서 보고 내부에서 반대 의견이 꽤 있었다고 한다. 나이가 많고 경력을 보니까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다고. 내 뒤로는 나이 든 사람을 많이 뽑았다.
 
=박수를 드리고 싶다.
 
=고맙다. 내 일이 기본적으로 남을 관리하는 일이 아니다. 회사로 치면 위계사슬 맨 밑이다. 실무자들이 다 한 세대 밑, 자식 나이다. 그래도 "서무는 내가 다 할 테니까 던져 두시고, 전략이나 의사결정, 네트워크 등 큰일들을 당신들이 하시오" 한다. 나랑 일하면 진급이 빨라진다는 말이 나올 수 있게 하는 게 내 값어치 하는 거다.
정권수씨는 요즘 성과만 보고 일할 때 느끼지 못했던 동료애를 느낀다고 했다. 오은 시인은 정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CEO로 계실 때 그 회사에 다녔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종근 기자

정권수씨는 요즘 성과만 보고 일할 때 느끼지 못했던 동료애를 느낀다고 했다. 오은 시인은 정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CEO로 계실 때 그 회사에 다녔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종근 기자

=다시 출근하면서 느낀 점은.
 
=제일 좋은 게 동료애다. 성과를 노리고 할 때는 사람이 안 보였다. 동료애를 느껴보지 못했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이제는 진급할 이유도 없고 승진할 일도 없으니 도와 가면서 일하는 걸 즐긴다. 또 여성들과 일하는 게 처음이다. 50플러스재단 들어올 때 건물 전체에 남자가 나 포함해 셋뿐이었다. 아침 풍경이 크게 달라졌다. 송혜교가 누구랑 결혼한다 어쩐다 아침마다 요란하다. 활기가 느껴진다.
 
=내년에 환갑을 맞는 58년생 개띠 친구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은가.
 
=젊어서 즐기던 걸 규모만 줄여서 계속하겠다는 친구들이 있다. 술 두 병 먹던 사람이 한 병만 먹으면서 노후 보내겠다, 골프 자주 쳤는데 이젠 한 달에 한 번 치며 살겠다 그런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은퇴 후의 새로운 삶을 적극적으로 찾았으면 좋겠다. "인생 뭐 있어"라는 말, 남을 위로할 때 쓰기도 하지만 올바르지 않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쓸 때가 있다. "인생 정말 뭐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이현·최규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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