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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피해자 중심주의’ 딜레마에 빠진 외교부

중앙일보 2017.12.28 17:56
한ㆍ일 위안부 합의 태스크포스(TF)의 조사 결과와 관련해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는 피해자 중심 해결과 국민이 함께 하는 외교라는 원칙 아래 빠른 시일 안에 후속조치를 마련해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TF가 전날 보고서에서 가장 중요한 결론으로 내놓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에 대한 문 대통령의 주문이었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의 향후 운명을 결정할 피해자 중심적 접근의 정의와 관련해 어느 누구도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오태규 위안부 합의 검토 TF 위원장이 27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에서 보고서를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실로 향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오태규 위안부 합의 검토 TF 위원장이 27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에서 보고서를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실로 향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①피해자 아닌 단체만 만난 TF=TF 발표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말을 종합해보면 ‘피해자 중심적 접근’을 위한 방법은 ‘피해자 의견 수렴’이다. 이때 피해자는 생존 할머니와 관련 단체가 해당한다. 전날 오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피해자 개념에 대해서는 각자 다를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볼 때 피해자와 피해자 단체들을 같이 많이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TF가 할머니 전원을 면담했는지에 대해선 “(출범 회견에서) 제가 할머니들을 전부 면담하겠다는 말은 안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TF는 피해자 중심 접근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활동 과정에서는 합의에 반대해온 단체 관계자들 위주로만 만났다.   
 
반면 TF는 보고서에서 외교부가 2015년에만 피해자와 관련 단체를 15차례 이상 접촉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접촉 내용은 보고서에 담지 않았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이들의 이해와 동의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고 결론내렸다.  
 
②피해자ㆍ단체 의견 수렴하겠다는 강경화, 어떻게?=이날 강 장관은 출근길에 일부 기자와 만나 “이제부터 (피해자 면담) 일정을 조절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피해자 한 분 한 분 다 의견을 들을 계획이냐’는 질문에도 “가능하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피해자가 생존 할머니와 관련 단체라면 이 분들의 의견 수렴을 ▶다수결로 판단할지 ▶한 분이라도 반대하면 그에 따를 것인지 ▶단순 참고만 할 지와, ▶지원금을 이미 받거나 받지 않은 사망 유족들의 의견은 들을지 등 변수가 많다. 
 
이날 외교부 노규덕 대변인은 이날 피해자 중심주의의 정의와 의견 수렴의 기준에 대해서 “후속조치를 강구함에 있어서 피해자, 유관단체, 또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두 반영해서 신중히 결정해 나가겠다”고만 했다. 또 다시 ‘모두 반영’이라는 모호한 답변을 추가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측의 위로금을 수령한 피해자는 47명 중 36명이다. 현재 생존 할머니 32명 중엔 24명이 해당한다. 지원금을 받은 것이 합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오 위원장은 “돈을 받은 것이 그 합의를 수용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TF는 사실상 할머니들을 일일이 만나보지 않은 채로 의문만 던진 셈이다.  
 
③또 다시 유예된 대일정책 수립=문 대통령은 이날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면서 “역사 문제 해결과는 별도로 한ㆍ일 간의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위해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회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對)일 정책에 대해서 과거사와 경제·안보 협력 분리한다는 투트랙 접근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향이나 내용이 나온 것은 없다. 그동안은 중요한 문제는 ‘TF 결과 나올 때까지’로 유예했는데 정부 판단이 ‘피해자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 결정을 할 때까지’로 다시 유예된 셈이다.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상은 전날 TF 발표에 대해 “기존 합의를 뒤집는다면 한ㆍ일 관계가 관리 불능으로 치달을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이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평창올림픽 참석 여부를 두고 과거사 문제와 양국의 협력을 연결짓는 ‘원 트랙’ 조짐까지 일본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핵 위협으로 한ㆍ일 공조가 중요한 상황에서 출구가 되었어야 하는 TF 발표가 또 다른 갈등의 입구로 들어가게 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피해자의 의견 수렴은 중요하지만, 피해자 중심주의를 넘어 한 명이라도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합의를 유지할 수 없다는 식의 피해자 환원주의적 접근은 적절치 않다”며 “정부가 출구 전략까지 염두에 두고 향후 정책 수립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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