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제 눈 찔러버린 '내로남불'식 통일부 적폐청산

중앙일보 2017.12.28 11:41
이전 정부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나선 통일부가 28일 '제 눈을 찔러 버리기'식 결과를 발표해 빈축을 사고 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비롯한 주요 대북조치를 '적폐'로 몰기 위해 당시 상황을 왜곡하는 등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이다. 일부 대목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해석될 소지가 있어 논란이 번질 조짐이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위원장 김종수)는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지난 9월부터 이뤄져온 위원회 활동결과를 발표했다. 전문가 9명이 참여한 위원회가 개성·금강산 분과와 교류·지원, 법·제도, 통일교육 등 분과를 구성해 이전 정부 대북정책 추진의 문제점을 파헤쳤다는 얘기다. 이른바 '적폐청산' 테스크포스(TF)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가동이 중단된 개성공단. 기업 관계자와 차량들이 오가던 남북출입사무소 차량 출입구는 차단벽이 설치된 채 막혀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가동이 중단된 개성공단. 기업 관계자와 차량들이 오가던 남북출입사무소 차량 출입구는 차단벽이 설치된 채 막혀 있다.

위원회는 먼저 개성공단 전면 중단과 5.24 대북제재 조치를 "법률에 근거한 행정행위가 아니라 통치행위로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2016년 2월1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 이틀 전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중단의 주요 근거로 내세운 개성공단 임금전용은 구체적 정보나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당시 공단 가동 중단 결정은 위험선을 넘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대남위협에 대응해 공단에 체류 중인 우리 근로자와 업주·당국자 등 국민의 신변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철수에 주안점이 두어졌다. 여기에는 국민 안전을 책임져야할 대통령의 판단이 중요했다. 이를 NSC가 구체적으로 논의해 이행조치 등을 강구한 것이다. 하지만 위원회는 이를 대통령의 독단이자 '법을 뛰어넘은 통치행위'로 간주하고, 철수 사유도 '임금 전용' 쪽으로 몰아가는 편향성을 보였다.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한 다음날인 2016년 2월11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출발한 공단관계자 차량이 파주 통일대교를 지나고 있다.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한 다음날인 2016년 2월11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출발한 공단관계자 차량이 파주 통일대교를 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5.24조치 뿐 아니라 유엔의 강력한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하고, 대북현금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정책을 계승 내지 강화하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집권 이후 수시로 "강력한 대북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대북제재 공조에 나서고 있다. 또 대북 응징용 미사일 발사 현장을 참관하는 등 안보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도발 드라이브를 되짚어보면 문재인 정부도 개성공단 폐쇄조치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

통일부 정책혁신위는 또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과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망명 발표도 문제 삼았다. 탈북 사안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아왔던 관례와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해외식당 종업원 탈북 사태는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TF가 이미 당시 상황을 담은 정보자료와 서버까지 뒤져 조사를 벌였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거론하지못한 사안이다. 또 북한 내부도 아닌 중국 식당에서 10여명의 종업원이 한꺼번에 탈북했는데 이 사안을 비공개로 처리해야 했다고 뒤늦게 주장하는 건 '비판을 위한 비판'이란 지적이다. 
해외의 북한식당에서 근무하다 집단 탈북한 북한 식당 종업원들

해외의 북한식당에서 근무하다 집단 탈북한 북한 식당 종업원들

태영호 전 공사의 경우도 언론 보도에 따라 한국 입국 사실을 확인해준 사안을 문제삼는 건 무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위원회는 북한식당 종업원 탈북 사태가 "총선을 나흘 앞둔 민감한 시점에 발표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해외에서의 집단 탈북을 두고 현지 북한 관계자들이 법썩을 떠는 등 난리가 났는데 이를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태영호 공사의 경우도 한국은 물론 유력 외신들이 보도한 뒤 정부가 브리핑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했을 뿐이다. 정책혁신위 측의 이같은 문제제기라면 지난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한군 병사 탈북사건도 문재인 정부가 철저히 숨겼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또 2000년 정상회담 개최 발표를 총선 며칠 전 청와대와 통일부가 기획한 것도 '적폐'로 문제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회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비판에 몰두하다 문재인 정부 때리기까지 해버린 결과인 셈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가 차량에서 내려 남측으로 달려가고 있다. [사진 유엔사]

지난달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가 차량에서 내려 남측으로 달려가고 있다. [사진 유엔사]

북한의 금강산관광객 피격이나 핵·미사일 도발로 인한 5.24 대북조치 등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된데 대해서도, 북한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우리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데 위원회는 주력했다. 민간교류 통제로 인해 남북 네트워크가 소멸됐고 경협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다는 것이다. 북한 관련 전문가들의 "역량이 소실됐다"는 엉뚱한 주장도 펼쳤다. 이를 두고 "북한 전문가들이 포함된 위원회가 스스로의 역량 문제를 남북관계 단절로 떠넘기려 한 것"이란 비판과 함께 근본 원인인 북한의 도발 문제는 침묵한 위원회의 인식과 태도에 문제가 많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남북대화와 관련해 위원회는 국가안보실과 북측 국방위가 회담을 주도하면서 회담 운영체계가 약화됐다고 주장했다.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당시 북한이 청와대와의 회담을 집요하게 요구해온 상황에서 북한과의 탐색적 대화를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는 게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위원회의 지적대로라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안보실이 외교부를 제쳐두고 중국과의 외교 사안을 처리하거나,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외국과의 민감한 협상에 나섰다가 구설에 오른 것도 적폐청산의 대상이 돼야한다.
위원회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 등을 지적한 통일교육도 "북한실상 알리기 명목으로 안보교육이 확대됐다"며 문제 삼았다. 북한 핵 문제나 인권상황 등이 포함된 걸 두고 "편향성이 증대됐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를 두고 "북한의 현실을 지적한 통일교육을 '편향'이라 주장하는 위원회 멤버들이야말로 편향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란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통일부

통일부

통일부 정책혁신위는 김종수 가톨릭대 교수(위원장)와 고유환 동국대 교수,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준형 한동대 교수, 김연철 인제대 교수, 임을출 경남대 교수,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최혜경 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 등 학계와 민간단체에서 위촉된 9명의 전문가가 위원을 맡고 있다. 이를두고 다양성이 결여된 편중 인선이란 지적과 함께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예고된 '적폐청산' 편향이란 비판이 나온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가 28일 오전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 보수정부에서 이뤄진 대북정책의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서울정부청사에서 김종수 위원장을 비롯한 혁신위원회가 정책혁신 의견서를 발표하고 있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가 28일 오전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 보수정부에서 이뤄진 대북정책의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서울정부청사에서 김종수 위원장을 비롯한 혁신위원회가 정책혁신 의견서를 발표하고 있다.

혁신위는 검토 결과를 발표하면서 "통일부의 깊은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무리수에 가까운 편향적 보고서를 내면서 통일부의 개혁을 주문한 걸두고 통일부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과거 정부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해왔던 간부들이 현 정부 통일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위원회가 이런 식의 '제 눈찌르기' 주장을 펼치는 건 문제란 지적이다. 누구보다 먼저 정책혁신위가 스스로의 편향과 왜곡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기자 정보
이영종 이영종 기자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트렌드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