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천 참사는 은행 탓”이라는 파산전문 변호사와 페친의 설전

중앙일보 2017.12.28 06:00

사실상의 소유자인 신한은행에 배상책임을 물리는 것이 유효 적절한 정책이다.”

지난 26일 한 파산전문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의 문제 해결 방향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제시했다. 이날 구속영장이 청구된 건물주가 지난 7월 이 건물을 법원 경매로 낙찰받은 뒤 낙찰가 27억1100만원의 94.1%인 25억5000만원을 신한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조달했다는 뉴스를 공유하면서 남긴 말이다.  
 

'매입금 94% 은행 돈' 때문에 붙은 논쟁
변호사 "사실상 소유주인 은행에 책임"
페친 "그렇게 따지면 모든 게 은행 탓"

500여 명의 페이스북 친구(이하 페친)을 보유한 이 변호사의 글에는 이내 “조금 오버하시는 거 아니예요”라는 페친 A씨의 댓글이 달렸다. 이 페친의 도발은 이어졌다.“차 사고 나도 금융기관 책임? 근저당만 설정할 게 아니고 팔아서 수익도 내도록 금융기관이 부동산업도 하나요? 금융기관으로부터 돈 받기 쉽다는 변호사의 직감은 이해하겠습니다만….”
 
이후 두 사람은 댓글과 댓글로 논리와 감정이 뒤섞인 수합을 겨뤘다. 변호사는 댓글 단 페친에 대해 “일면식이 없는 분”이라고 했다. 금성인과 화성인 사이의 대화를 방불케 하는 논쟁이지만 제천 화재 참사의 이면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준다고 판단해 김 변호사의 양해를 얻어 대화를 오려 붙여 본다.    
 
변호사 : 금융 산업은 재산의 가치를 지배하면서도 책임은 안 지지요. 그게 결정의 왜곡을 가지고 오는 것이지요. 위험을 방치하는. 세월호 사례가 그 전형이지요. 사실상 부동산 임대업을 하면서 책임을 안 지는. 레버리지가 크면 채권 채무 관계가 아니라, 이것을 벗어나서 채권자라고 쓰고 임대인이라고 읽고 채무자라고 쓰고 임차인이라고 읽어야 하지요. 금융이 일으키는 위험입니다. 금융산업 종사자들이라면 감추고 싶어 하는….
 
※레버리지 효과(leverage effect) : 차입금 등 타인 자본을 지렛대로 삼아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이는 것으로 '지렛대 효과'라고도 한다.  [출처 : 네이버 금융사전]


A씨: 글쎄요 근저당 설정이 재산의 가치를 지배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꾸어 준 돈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어쨋든 금융기관한테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지요? 
 
변호사 : 근저당이 재산을 지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저와는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이니 납득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도 당연하겠군요. 채무자는 채권자의 종이 된다는 것은 성격 책에도 나오는 말씀인데…..
 
잠시 후 논쟁에는 의사로 추정되는 페친 B씨가 가담했다. 변호사의 편이다. 그의 의견은 변호사보다 한 술 더 뜬 느낌이었다.  
논쟁이 벌어진 파산전문 김관기 변호사의 페이스북 게시글 캡처 화면.

논쟁이 벌어진 파산전문 김관기 변호사의 페이스북 게시글 캡처 화면.

 
B씨 : 의사들에게 쉽게 대출을 내주는 은행의 의도는 괜찮은 자리에 본인들 손에 피 안묻히고 병원을 운영하겠다는 의도입니다. 변호사님 말씀이 정답입니다. 앞으로 파산하는 병원들의 책임도 근본적으로 은행이 공동 부담해야 한다고 봅니다. 실재 가치도 별로 없는 병원 시설에 비해 대출이 많은 것도….
 
A씨 : 쉽게 이야기하죠. 그냥 빠지지 마시고. 금융기관은 돈 꾸어주고 이자 붙여서 받으면 끝. 혹시 못받을까봐 담보도 걸고 하지요. 돈 꾼 사람이 빚만 잘 갚으면 되요. 그런데도 빌려준 사람이 부동산의 권리까지 행사해서 시세 차익을 본다는 말입니까?
 
변호사 :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이게 네 것이다’라는 환상을 주어 열심히 일하게 하지요. 물론 열심히 일해서 은행에게 갚으면 되요. 누가 아니래요. 근데 그런 사람은 실패해도 잃을 것이 없고 은행도 잃을 것이 없으니 그 재산으로 생기는 위험에는 책임감이 없지요. 은행과 건물주의 계약이 건물을 이용하는 제3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비난받아야 합니까. 가난한 건물주?(사실은 건물 ‘종’) 부유한 은행가? 나는 은행가에 책임을 지울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쪽은 은행가는 아무 책임없다는 것입니다.  
 
A씨 : 의사들이야 밥 좀 먹고 사니까 빚 잘 갚겠지 생각하는 정도 아니겠어요.
 
다시 B씨가 나섰다.
 
B씨 : 윗분은 94%의 대출이 문제인데 핵심을 잘못 읽으신 듯합니다. 감정가도 아닌 경매 낙찰가의 94%라면 그냥 은행이 관리인 두고 부동산 장사한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B씨의 지원 사격에 기운을 낸 변호사는 말을 이었다.  
 
변호사 : 시세차익을 얻는 것은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실현되는 희귀한 상황이고, 시세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채무자는 모든 것을 잃고 은행은 투자가치를 대부분 지키지요. 레버리지 효과(Leverage effect)라고 미국인들은 이야기합니다. 불황에는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빚진 자는 망한다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몇 년 전 나온 『House of Debt』라는 책은 레버리지 효과가 부정적으로 실현돼 미국 중산층이 몰락하는 경로를 잘 그렸습니다.  
 
※『House of Debt』: 경제학자 아티프 미안(Atif Mian) 과 아미르 수피(Amir Sufi)가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과 실체를 분석한 책. 국내에서는 2014년 『빚으로 지은 집』이라는 제목으로 변역됐다. 
 
A씨 : 뭔가 비정상적인 시장 상황에서나 가능한 말씀을 하시는데 일단 그럴 수도 있다고 치죠. 능력이 안 되는 사람한테는 이자라도 많아야 하고 이런 저런 사업성을 고려해서 잘 판단해야 은행도 돈을 벌겠지요. 레버리지가 너무 높으면 이자를 더 요구할 수 있겠지요. (중략) 이 화재가 난 건물의 주인 몫은 10%도 안된다고 하니…. 즉시 은행은 경매로 땅값이라도 챙겨서 손실을 줄이려 할 겁니다.  
 
변호사 : 금도를 벗어난 대출에는 무엇인가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은행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윤리적일 것으로 가정됩니다. (이 건에서는) 사채업자식으로 영업하는 외관을 보였으니 여기에 이례적인 비난을 하는 것이 상식에 어긋나지 않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결국 서로를 설득시키지 못한 채 끝났다. 등장하는 ‘변호사’는 현재 도산법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김관기(54) 변호사다. 1990년 말 외환위기 직후부터 파산전문 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그는 최근 여러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파산법을 강의하며 『파산법 스케치』등 저서와 번역서를 내기도 했다.  
2015년에 중앙일보와 인터뷰할 때의 김관기 변호사. [중앙포토]

2015년에 중앙일보와 인터뷰할 때의 김관기 변호사. [중앙포토]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