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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잘 듣는 게 먼저다

중앙일보 2017.12.28 01:58 종합 34면 지면보기
박신홍 중앙SUNDAY 차장

박신홍 중앙SUNDAY 차장

실력을 인정받는 합창단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잘 부르는 것보다 잘 듣는 게 먼저라는 불문율이 그것이다. 성악 전공자들이 모였다고 합창을 잘하는 게 결코 아니다. 한명 한명 멋진 목소리를 갖고 있다 해도 하모니를 이뤄낼 수 있느냐는 엄연히 별개의 문제다.
 
독창은 얼마든지 멋을 부리며 제 실력을 뽐낼 수 있지만 합창은 전혀 다른 차원의 영역이다. 서로가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지 못하면 불협화음은 이내 소음이 되고 만다. 한 명만 튀어도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만들 듯 망가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독창과 달리 합창을 할 때면 소리를 ‘둥글게’ 내야 한다는 얘길 많이 한다. 뾰족한 소리들은 모아지기가 쉽지 않은 만큼 최대한 소리를 모나지 않게 내야 한데 어우러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성탄절 단골 오라토리오인 헨델의 ‘메시아’도 마찬가지다. 바로크 음악의 특성상 네 파트가 따로따로 가다가 어느 순간 일제히 한목소리를 내곤 하는데, 이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게 잘하는 합창의 기준이 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다른 대원들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내 소리가 튀는 건 아닐까, 내가 박자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끊임없이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 귀가 트여야 노래도 잘하는 법이다.
 
문제는 정작 튀는 당사자는 자신이 튀는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소신도 확고해 옆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쇠귀에 경 읽기, 우이독경(牛耳讀經)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되레 내가 가장 잘 부르고 박자도 정확한데 왜 내가 다른 대원들에게 맞춰야 하느냐며 역정을 내기도 한다. 그러면 그 합창단은 답이 없다.
 
여의도 정치권은 또 어떤가. 여당은 야당이, 야당은 여당이 화합을 망친다고 남 탓만 한다. 당내에서도 서로 내 말이 옳다며 마이웨이만 고집한다. 국민이 잘 좀 해보라며 국회로 보내놨건만 합창단의 네 파트처럼 하모니를 이루려 노력하긴커녕 네 당이 따로 놀기 바쁘니 세상에 이런 불협화음이 없다 싶을 정도다. 주위의 조언과 지적엔 귀를 닫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그들에게 협치는 언감생심이다. “내가 정의롭다고 믿을수록, 그 믿음에 만족할수록 나는 덜 정의롭다”는 프랑스 철학자 제라르 벵수상의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새해 무술년은 개띠 해다. 개는 잘 짖기도 하지만 어느 동물 못지않게 청력이 뛰어나다. 잘 듣는 게 개의 경쟁력이다. 이젠 정치권에서도, 회사에서도, 심지어 우리 주변의 각종 송년회에서도 홀로 목소리를 높이는 독불장군은 왕따를 당하는 세상이 됐다. 진정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가. 그럼 잘 듣는 게 먼저다. 새해엔 목에 힘은 조금 빼고 귀는 좀 더 열어놓고 살자.
 
박신홍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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