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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막힌 개헌, 선거구 공론화로 풀 수 있다

중앙일보 2017.12.28 01:58 종합 34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며칠 전 서울 성북구에선 추첨 등으로 뽑힌 구민 80여 명이 모여 ‘성북 시민의회’를 열었다. 마을 문제라면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자는 동네 민주주의 실험으로, 의회 형식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아파트 경비원의 고용 문제가 의안이었다. 의회 절차를 그대로 따랐다. 구청장이 출석했고 아파트 입주자와 관리업체, 경비원 대표의 증인 진술이 이어졌다. 1일 시민 의원들은 토론 끝에 권고안을 채택했다. 법적 권한은 없었지만 정치적 상징성은 강했다.
 

국회 패싱 개헌은 현실성 없고
선거구 개혁해야 돌파구 열려

성북구 관내 1253세대의 한 아파트 단지가 사례였다. 경비원 월급이 당장 30만원 정도 올라 감원이 시작됐다고 한다. 지금 추세면 전국에서 1만 명 정도의 경비원이 해고될 거란다. 최저임금 1만원이면 상황이 커진다. 경비원 감축이냐, 고용 유지냐를 놓고 의원들은 8시간 가까이 토론에 집중했다. ‘정부가 올렸으니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대다수의 목소리가 시간이 갈수록 잦아들더니 결국 사라지는, 집단 지성이 인상적이었다.
 
시민의회는 ‘경비원 업무 조정 등으로 고용 안정을 도모하라’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임시 의장인 김의영 한국정치학회장은 권고안을 구청장에게 전달했다. 구청은 시범아파트 단지를 선정해 권고안 시행을 유도키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의정치 현장인 국회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외친 뒤 전국의 자치단체 현장에선 이런 생활자치가 급속하게 확산 중이다. 동네 축구가 많은 유럽이 결국 축구 선진국이란 걸 떠올리면 의미 있는 일이다. 오죽하면 직접 나설까 하는 생각도 곁들여서.
 
중요한 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하냐는 거다. 여권은 4대 강 보 개방, 밀양 송전탑, 부동산 보유세 도입 등 주요 현안마다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입장이다. 아예 공론화위를 국가기관으로 상설하자는 법안도 냈다. 더 나아가 연말 정국이 개헌으로 꽉 막히자 ‘개헌 공론화위’ 목소리가 다시 나오는 모양이다. 물론 현실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게다가 국회 패싱 개헌이라면 안 될 일이다. 입법과 조세야말로 입법부의 고유 권한이다.
 
어쩌면 직접민주주의가 절대선인 것만도 아니다. 전 세계 독재자들이 자기 정당화를 위해 국민을 동원하는 수단으로 삼은 경우가 많았다. 유신헌법은 국회를 해산한 뒤 국민투표로 물었다. 히틀러 이후 독일은 개헌을 국민투표에 부치지 않는다. 의회에서 결정한다. 그런데 지금은 분권 개헌이 시대적 소명인 것도 사실이다. 모든 당과 대선 후보가 약속한 문제다. 그러니 현실성을 떠나 개헌 공론화 주장은 먹혀든다. 국회에 갇혀선 백년하청이다.
 
그래서 선거구 공론화가 접점이다. 개헌이 길을 잃은 건 정치권의 밥그릇과 연결돼 있어서다. 지역당 패권다툼이 뿌리다. 국회가 유권자의 정치지형을 제대로 반영하도록 선거제도를 바꾸면 해결되는데, 실제로 국회에서 성공한 사례는 없다. 지난해 20대 총선 땐 선거구 공백 사태가 두 달 넘게 이어졌다. 이번엔 정개특위 안건으로 올리지도 못했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자기 손으론 절대로 처리하지 못하니 국회를 강제해야 한다. 묻지마 공론화도 문제지만 공론화를 들이대야 할 때도 있다. 우리 마을의 동네 민주주의처럼 말이다.
 
왜 선거구냐면 실제론 개헌의 입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권력이 제한되면 필연적으로 국회 권한이 강화된다. ‘공천=당선’인 현행 선거법을 그대로 둔 채 권력구조를 바꾼다면 어떤 식이든 거대 양당 중진들에게 힘을 몰아주는 꼴이다. 선거제도를 바꿔야 개헌의 출구인 정부 형태 논의가 현실성을 갖는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방법이다. 의원 이권기구로 전락한 당과 혐오 대상인 국회를 수술대에 올릴 해법이기도 하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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