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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정신’으로, 배구 명가 재건 꿈꾸는 캡틴 사위

중앙일보 2017.12.28 01:00 경제 11면 지면보기
삼성화재를 떠나는 신치용 단장은 ’내가 없으면 (박)철우가 욕을 더 먹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팬들은 박철우가 부진하면 ‘박사위’라고 비꼰다. 박철우는 ’아무렇지 않다. 못했을 때 질책받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지난 3일 현대캐피탈전에서 스파이크하는 박철우. [연합뉴스]

삼성화재를 떠나는 신치용 단장은 ’내가 없으면 (박)철우가 욕을 더 먹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팬들은 박철우가 부진하면 ‘박사위’라고 비꼰다. 박철우는 ’아무렇지 않다. 못했을 때 질책받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지난 3일 현대캐피탈전에서 스파이크하는 박철우. [연합뉴스]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62) 운영담당 부사장이 최근 팀을 떠났다. 창단 감독으로 20년, 단장으로 2년 간 팀을 이끌었던 삼성화재 배구단의 산증인이다.
 

신치용 단장 물러난 삼성화재
지난 시즌 창단 첫 ‘봄배구’ 좌절
올 시즌 11연승 올리며 1위 질주

전역 뒤 돌아와 주장 맡은 박철우
공격 1위 맹활약, 팀 부활 이끌어

신 “단장으로 우승 못해 아쉬움”
박 “정상 탈환해 단장님께 보답”

신 단장의 공백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건 주장이자 사위인 박철우(32)다. 우승 트로피를 장인이자 스승이었던 신 단장에게 바치겠다는 각오다.
 
삼성화재는 ‘신치용 단장이 상임 고문을 맡게 돼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삼성화재는 올시즌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룹 정기 인사 차원에서 신 단장도 물러나게 됐다. 신치용 단장은 “조금 놀랐다. 팀이 좋을 때 떠나 다행이지만 단장으로서 우승하지 못한 건 아쉽다”고 말했다.
 
신치용 단장. [뉴스1]

신치용 단장. [뉴스1]

신 단장의 퇴진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건 박철우였다. 박철우는 “단장직을 맡으실 때 임기가 3년쯤 될 거란 얘기를 들었다. 인사철이지만 시즌이 끝난 뒤에나 그만두실 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신 단장은 “철우가 ‘경기장엔 오실 거죠’라고 물어보길래 ‘안 간다. 우승하는 자리엔 가겠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박철우는 “선수들 모두 ‘더 잘하자’며 의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삼성화재는 2005년 프로 출범 이후 13시즌 연속 챔프전에 올라 8차례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2014~15시즌엔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지난 시즌엔 4위에 그쳐 사상 처음으로 ‘봄 배구’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14승4패(승점 38)를 기록, 맞수 현대캐피탈(11승7패·승점 36)을 제치고 1위로 반환점을 돌았다.
 
명가 재건의 중심엔 최고참 공격수 박철우가 있다. 박철우는 공격종합(58.17%)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의 전유물인 ‘큰 공격’을 맡아주고 있다. 오픈공격(54.22%)과 백어택(59.71%) 1위다. 군에서 전역한 뒤 복귀한 지난 시즌보다 훨씬 좋은 성적이다. 박철우는 삼성화재의 11연승을 이끌어 2라운드 MVP에도 뽑혔다. 박철우는 “선수 모두가 잘 했는데 내가 상을 받아서 미안했다”며 쑥스러워했다.
 
현역 시절 여자프로농구 신세계에서 활약했던 신혜인과 신치용 단장. [중앙포토]

현역 시절 여자프로농구 신세계에서 활약했던 신혜인과 신치용 단장. [중앙포토]

박철우는 군복무를 마친 뒤 ‘변했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첫 번째 변화는 커진 목소리다. 경기 때마다 후배들을 독려하느라 항상 목이 쉰다. 박철우는 “연습 때도 소리를 지르다 보니 늘 목이 상한 상태다. 큰 딸 소율(5)이가 ‘아빠, 목소리가 왜 그래’라고 물어볼 정도”라며 “이길 수만 있다면 성대 결절이 되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의 ‘몸’도 달라졌다. 박철우는 양쪽 무릎과 발목 등 성한 데가 없다. 경기 때 마다도 수백 번씩 점프를 하다보니 생긴 부상이다. 그래서 지난해 전역 후엔 무릎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체지방률을 4~5%까지 끌어내렸다. 장기 레이스를 위한 체력 관리를 위해 올해는 체중을 조금 늘렸지만 그래도 90㎏ 초반을 유지한다. 박철우는 “통증은 쉽게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진통제를 달고 산다. 하지만 근력은 지난해와 똑같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 관리를 더욱 철저하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지난 11일 삼성화재 연고지인 대전에서 성황봉송 주자로 나선 신치용-박철우. [사진 삼성화재 배구단]

지난 11일 삼성화재 연고지인 대전에서 성황봉송 주자로 나선 신치용-박철우. [사진 삼성화재 배구단]

그의 장인인 신치용 단장은 2010년 농구선수였던 딸 신혜인(32)씨가 박철우와 사귈 때 탐탁해 하지 않았다. 2004년 고교생 유망주였던 박철우를 스카웃하려 했지만 그는 삼성화재가 아닌 라이벌 현대캐피탈을 택했기 때문이다. 2010년 FA 박철우가 현대캐피탈을 떠나 삼성화재로 옮긴 것은 감독이었던 그의 뜻이 아닌 구단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딸보다 사위가 먼저다. 신 단장은 “1순위가 큰 손녀, 2순위가 작은 손녀, 3순위가 사위, 4순위가 딸”이라고 말했다. 박철우는 “감독으로 활동하실 때는 집에서도 ‘감독님’이라고 불렀는데 단장이 된 뒤부턴 ‘장인 어른’이란 호칭을 사용한다”며 “꼭 우승을 차지해서 단장님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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