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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도와준 동료 징계로 인한 성희롱 피해자 고통도 배상"

중앙일보 2017.12.27 14:04
사내 성희롱에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와 피해자를 돕던 동료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상급자들의 행위에 대해선 회사가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성희롱 피해자·조력자 징계한 르노삼성차 사용자책임 인정
부서장 성희롱에 고통받던 A씨 4년 법정투쟁서 이겨
여성계 "성 평등 문화에 기여하는 판결" 평가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는 팀장의 지속적 성희롱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가 대기발령 등의 불이익을 받은 A씨가 르노삼성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회사가 폭넓은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성희롱 피해를 표현한 이미지 [중앙포토]

성희롱 피해를 표현한 이미지 [중앙포토]

성희롱 문제 제기의 대가로 돌아온 인사 불이익
2005년 8월 르노삼성차에 입사해 2012년 3월 중앙연구소로 발령난 A씨는 다음 달부터 부서장 최모씨의 성희롱에 시달렸다. 유부남인 최씨가 ‘둘이 술을 마시자’‘강릉에 놀러 가자’‘차를 태워달라’는 등 사적인 접촉이 계속하자 A씨는 “사적인 대화와 자리가 싫고 불편하다”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A씨의 언행은 갈수록 노골적이 됐다. 야근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A씨에게 “온몸에 아로마 오일을 쫙 발라서 마사지를 해줄 수 있다”“사랑한다”는 등의 말을 서슴지 않았고 회식 자리에선 신체 접촉도 있었다.   
 
성희롱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응급실 신세를 지고 심리상담까지 받아야 했던 A씨는 부서 배치 1년 만에 담당 이사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며 성희롱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이사는 “공식화하면 나까지 다친다”며 두 사람이 모두 회사를 그만두는 방식으로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다. A씨는 팀원들과 사내 성희롱 담당자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사태는 A씨에게 더 불리하게 돌아갔다. 인사팀원 등 일부 남자 직원들은 'A씨가 최씨를 유혹했다''피해자가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등의 여론을 조성했다. 가해자 최씨에게 정직 2주의 징계를 내린 회사는 본격적으로 피해자 A씨와 A씨를 돕던 B씨에게 불이익을 주기 시작했다.   
 
문제를 제기한 그해 9월 A씨는 견책의 징계를 받았고 10월에 2012년 1월부터 해오던 전문 업무에서 배제됐다. 연말에는 B씨와 함께 직무정지 및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다. B씨는 이후 정직 1주일의 징계를 받았다. 회사가 A씨가 성희롱 사건에 관한 증거 수집 과정에서 한 남자 직원에게 “호적에 빨간 줄 긋기 싫으면 지금 당장 와라. 명예훼손과 허위소문을 유포한 것이 사실이면 고소하겠다”는 과격한 발언을 했다는 게 견책 이유였다. 두 사람에 대한 대기발령과 B씨에 대한 정직 처분에는 B씨가 회사의 보안 서류를 밀반출하려 했고 A씨가 이를 방조했다는 이유를 달았다. 회사가 두 사람에게 덮어씌우려던 혐의는 모두 무혐의로 결론 났다.  
 
4년간의 법정 투쟁…하급심의 소극적 판결
2013년 8월부터 최씨와 회사 등을 상대로 시작한 A씨의 법정투쟁은 4년여 동안 엎치락뒤치락했다. 최씨의 행위가 남녀고용평등법상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데는 1심부터 이론이 없었다. 사회통념상 일상적으로 허용되는 농담 등의 수준을 넘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회사의 책임이었다. A씨는 1심부터 최씨의 행위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과 자신과 B씨에 대한 회사의 인사조치의 위법성을 주장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성희롱 발생을 확인한 사업주는 지체 없이 행위자를 징계하고 피해자나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해고 등의 ‘불리한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부장 이정호)는 2014년 12월의 판결에서 회사의 모든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는 성희롱 예방 교육을 했고 최씨가 성희롱을 할지 알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 성희롱 자체 대한 연대책임을 부정했다. 또 두 사람에 대한 징계는 성희롱에 대한 문제 제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만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봤다. 그러면서 최씨가 위자료 1000만원을 주는 것으로 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심인 서울고법 민사 10부(부장 김인욱)는 조금 달랐다. A씨가 속한 부서의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한 장본인이 가해자 최씨라는 점을 발견한 항소심은 성희롱에 대한 회사의 연대책임을 인정했다. 회사에 피해사실을 알리고 피해를 예방할 책임이 있는 부서장이 가해자인 경우 회사는 ‘피해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봐야 하고, 가해자가 한 성희롱 예방 교육이 충분한 예방조치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또 A씨가 받은 인사 불이익 중 전문 업무에서 배제된 2013년 10월의 조치에 대한 피해도 인정했다. 이 조치를 한 책임자의 불법행위가 인정되고 이에 대해서는 사용주가 연대책임을 지라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이로 인한 피해를 1억2000만원으로 계산했다
.  
그러나 나머지 인사 조치에 대해선 A씨의 폭언 등이 징계사유로 인정된다는 취지에서 인사담당자나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력자 B씨에 대한 위법한 불이익 조치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는 A씨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남녀고용평등법상 금지된 ‘불리한 조치’의 대상은 성희롱 피해자 본인만을 의미하고 조력자에 대한 조치까지 여기에 포함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 주심을 맡았던 김재형 대법관이 지난해 8월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답변하는 모습. 서울대 법학전문학원 교수 출신인 김 대법관은 민법의 대가다. 불법행위나 계약 불이행과 관련한 손해배상책임과 관한 다수 논문을 집필했다. [중앙포토]

이 사건 주심을 맡았던 김재형 대법관이 지난해 8월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답변하는 모습. 서울대 법학전문학원 교수 출신인 김 대법관은 민법의 대가다. 불법행위나 계약 불이행과 관련한 손해배상책임과 관한 다수 논문을 집필했다. [중앙포토]

대법원에서 벌어진 대반전…"회사 책임 폭넓게 인정"
대법원 3부의 선고는 대반전이었다. 피해자 A씨에게 내려진 업무 변경-견책 처분-대기발령과 직무정지 등 모든 인사 조치를 업무집행자들의 불법행위로 볼 수 있으므로 회사도 연대해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그뿐만 아니라 조력자 B씨에 대한 정직 처분으로 인해 A씨가 입은 정신적 피해도 회사가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동료에 대한 A씨의 과격한 발언이 자신에 대한 악소문에 대한 증거수집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이를 문제삼은 징계처분은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조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절도 혐의를 앞세운 인사조치를 정당한 인사 재량권 행사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조력자에 대한 불리한 조치로 인해 A씨가 받은 정신적 피해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사업주가 (성희롱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는 근로자에게 적극적으로 차별적 대우를 하거나 부당한 징계 처분을 한다면 피해 근로자도 인격적 이익을 침해받거나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앞서 항소심이 인정한 회사의 손해배상책임에 대한 르노삼성차 측의 상고는 모두 기각했다.  
 
조현욱 한국여성변호사회 수석부회장은 "법령의 문구 해석에 치중하기보다 회사 내 성 평등 문화를 개선하고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피해자를 돕더라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거란 믿음을 심어줘 피해자의 동료들이 피해 회복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임장혁·유길용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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