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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며느리에 영상통화 건 나, 제대로 '꼰대'되다

중앙일보 2017.12.25 04:00 경제 8면 지면보기
예뻐 죽겠다. 당연히 아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30년 넘게 살 부비며 살았는데 이제 와서 그런 감정이 들 리 있겠는가. 맞은 지 100일도 안 된 며느리가 그렇다는 얘기다. 아무리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지만 하는 짓마다 예쁘니 어쩌랴.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25)
아내의 만류에도 밤 10시 넘어 영상통화 시도
아들 메시지 "손주 안 볼테면 밤늦게 전화하세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훈훈한 정을 그리워한 김호석씨의 수묵화 '바람 목욕'. [사진제공=김호석]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훈훈한 정을 그리워한 김호석씨의 수묵화 '바람 목욕'. [사진제공=김호석]

 
며칠 전엔 내가 할 강연을 위해 PPT 만드는 걸 도와달라며 집으로 불렀다. 아들은 출근한 후니 며느리 혼자 와야 했다. 아무래도 컴퓨터 다루는 게 익숙할 테니 부르긴 했지만 조금 안쓰럽긴 했다. 어쨌거나 그간 몇 번 오지 않은, 낯선 ‘시댁’에 단기필마로 왔으니 말이다.  
 
해서 “어려워 말고 편히 있으라”했더니만 ‘정답’이 돌아왔다. “왜 그런지 올 때마다 시집에 온 것 같지 않아요”라고. 그러더니만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엔 한술 더 떴다. 아예 아내의 팔짱을 끼고는 착 붙어서 가는 게 아닌가. 가히 토끼 얼굴을 한 여우라 할 만했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며느리는 내가 했던 특강을 들은 ‘제자’였는데 우연찮게 아들과 인연이 되어 한 식구가 되었으니 남다른 배경이 있는 셈이었다. 진작부터 품성을 눈여겨보던 처지였으니 여느 며느리와는 달리 영판 남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쪽이야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딸 같이 여겼던 탓일까. 관심이 지나쳐 아내며 아들에게 두루 면박 받을 짓을 저질렀다. 며칠 전 밤에 아내와 산책하러 나갔다가 동네 카페에 들렀던 길에 며느리에게 영상통화를 시도했다. 특별한 용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카페 분위기도 좋고, 우리 부부가 이렇게 다정히 지낸다는 ‘모범’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지 싶다.
 
 
영상통화. [사진 apple.com]

영상통화. [사진 apple.com]

 
 
아들 부부, 내 영상통화 안 받아 
 
그때 시간이 정확히 오후 10시 7분. 아내는 그 시간에 신혼부부에게 전화를, 그것도 영상통화를 시도하는 건 결례라며 말렸다. 주책없다고도 했다. 내 생각에 10시면 그리 늦은 것도 아니다 싶었던 데다가 불과 두어 시간 전에 아내가 아들 부부와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이 부러웠던 터였다. 난생처음으로 영상통화를 거느라 이것저것 누른 끝에 신호가 갔다.
 
하지만 역시 아내 말이 맞았던지 아들 부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내의 지청구를 들으며 몇 분 지난 뒤 며느리에게 영상전화가 와서 카페 내부를 배경으로 허튼 소리를 몇 마디 하다 끝냈다.
 
한데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아들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는 게 아닌가. “손주 보기 싫으시면 10시 넘어서 전화해도 괜찮아요”라고.
 
뜨끔했다. 그리고 반성했다. 사랑은 상대가 바랄 때 원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아내가 옆에서 한마디 해서 불을 질렀다. “어쩌다 꼰대가 아니라 제대로 꼰대 됐수!”라고.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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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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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필진

[김성희의 천일서화] 책생책사(冊生冊死). 책을 읽고 기자를 꿈꿨고, 출판팀장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핵심은 ‘재미’였다. 공연히 무게 잡는 책은 싫기도 하고 읽어낼 깜냥도 못 되었으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책’ 이야기 또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식 책 이야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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