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모르는 세상에 다녀오자

중앙일보 2017.12.25 01:20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호정 문화부 기자

김호정 문화부 기자

작곡가 강석희(83)와 인터뷰할 때 “작곡이 잘 안 되면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 『율리시스』를 읽는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 작곡가의 계보에 빠지지 않는 이의 얘기니만큼 조금 삐딱하게 들었다. 게다가 극도로 이성적 음악을 쓰는 작곡가였다. ‘이렇게 어려운 문학 작품 정도의 수준이 내 음악’이라는 뜻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그도 그 책들이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곡을 쓸 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러나 더 어려운 글을 그저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해소가 된다”고 했다. 나는 인터뷰를 하며 ‘정신의 모래주머니’를 떠올렸다. 아주 무거운 것을 들다가 조금 무거운 것을 들면 가볍다. 또 ‘뇌의 여행’도 떠올렸다. 우리의 뇌는 가끔 상상하지 못했던 곳까지 밀어붙여질 필요가 있다. 머리는 엉뚱한 곳에 한번 다녀오고 나면 가벼워진다.
 
요즘 공연장에서 종종 멍한 표정의 청중이 발견된다. 연말을 맞아 ‘문화 회식’ ‘문화 송년회’ 내지는 ‘문화 접대’에 참가하게 된 사람들이다. 편한 대로 먹고 마시며 보냈던 연말을 갑자기 문화와 함께 보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왜 음악인가 12/25

왜 음악인가 12/25

문화를 강제하는 것에 반대한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강제할 필요는 있다. 작곡가 강석희의 경우를 봐서라도 그렇다. 늘 하던 일 말고 생각하지 못했던 걸 한번 해볼 만하다. 공연장·전시장이 낯설 수 있지만 다녀오고 나면 삶이 좀 가벼워 보일 것이다. 전혀 새로운 장르와 분야, 상상하지 못했던 형태의 예술에까지 도달해 보기에 연말은 좋은 핑계가 된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5년 동안 기업은 45조4300억원을 접대비로 썼다. 그런데 문화 접대비로 쓴 돈은 277억원으로 0.06%다. 문화 접대비는 공연, 전시, 스포츠 경기 관람 등 넓은 범위에 쓸 수 있고 법인세 절감 효과도 있다. 김영란법과 부닥치는 부분이 없진 않지만 국가가 적극 권장한다. ‘문화로 인사합시다’라는 캠페인이 10년째고, 비용 한도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35%가 ‘방식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문화 접대비를 알고도 활용하지 않았다고 했다(한미회계법인, 522개 기업 조사). 익숙하고 편한 연말 대신 낯선 세계에서 용감한 연말을 맞이해 볼 때가 됐다.
 
김호정 문화부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