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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 소방점검 때 여탕 생략, 건물주 ‘셀프 체크’

중앙일보 2017.12.25 01:00 종합 5면 지면보기
21일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숨지고 37명이 부상한 제천 복합상가 건물은 2010년 8월 9일 7층으로 사용 승인이 났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8층과 9층이 증축됐다. 이 중 9층 53㎡는 불법 증축된 것으로 확인됐다. 붉은 색 원 안이 증축된 8~9층이다. [뉴스1]

21일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숨지고 37명이 부상한 제천 복합상가 건물은 2010년 8월 9일 7층으로 사용 승인이 났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8층과 9층이 증축됐다. 이 중 9층 53㎡는 불법 증축된 것으로 확인됐다. 붉은 색 원 안이 증축된 8~9층이다. [뉴스1]

지난 21일 화재로 29명의 사망자를 낸 충북 제천 복합상가 건물 소방안전점검 때 2층 여탕에 대한 점검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층은 사망자 중 가장 많은 여성 20명이 숨진 곳이다.
 

영업 중이라 점검 요원 못 들어가
비상구 앞 불법 적치물 시정 안 돼
“1~2시간 손님 안 받고 점검했어야”

소화기·스프링클러 다 작동 불능
3~8층에 둬야 할 완강기도 2대뿐
소방관 1명 600곳 관리 … 역부족

24일 소방청과 경찰수사본부 등에 따르면 강원도 춘천에 소재한 소방안전점검 전문업체 J사는 지난달 30일 하루 동안 복합상가 전 층을 돌며 안전점검을 했다. 점검은 건물주 이모(53)씨가 업체에 직접 의뢰했다. 점검에는 J사 직원 3명이 참여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점검업체 직원이 여탕이 있는 2층에 들어가 내부를 점검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2층 여탕은 아예 점검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비상구로 이어지는 공간에 불법 적치물이 쌓여 있었는데 이런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는 “영업 중이라 남성 안전점검 요원들이 여탕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사전에 양해를 구하거나 휴무일에 정확한 점검이 이뤄졌어야 했다”며 “현장에서 비상구 문제가 발견됐다면 곧바로 시정 조치가 돼 대형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3년 전에도 비상구 통로 막혀 있었다”
 
증축된 8~9층과 테라스. [인터넷 캡처]

증축된 8~9층과 테라스.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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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을 자주 이용했던 제천 시민들은 “3년 전에도 비상구로 가는 통로가 목욕 바구니 등으로 항상 막혀 있었다”고 진술했다. 2층 여탕에 대한 소방 안전점검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달 30일 진행된 외부 업체의 점검 때는 1층 출입구와 지하기계실 스프링클러 보수, 일부 층의 피난 유도등 작동 여부 등만 지적 사항으로 적발됐다. 2층 비상구 문제는 점검표에 나와 있지 않았다. 수기로 작성된 이 자료는 현재 경찰에서 분석작업 중이다. 경찰은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제천소방서와 J사가 소방점검을 제대로 했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해당 건물을 점검했던 J업체 측은 “2층을 점검하려고 들어갔는데 여자 목욕탕이라 사람들이 쳐다보면서 나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며 “목욕탕을 점검하다 아주머니들에게 쫓겨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7월에는 건물주가 직접 소방안전 점검을 한 뒤 점검표를 제천소방서에 제출했다. 당시 점검표에는 소화기 충압(압력을 보충하는 기능) 불량, 2층 휴대용 비상조명 2개 교체 명령 등이 있었지만 비상구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소방서 측은 “시정 명령을 내린 뒤 해당 건물에 나가 소화기 충압 확인을 마쳤다”고 설명했다.
 
증축된 8~9층과 테라스. [인터넷 캡처]

증축된 8~9층과 테라스. [인터넷 캡처]

하지만 화재 당시 건물에 비치된 소화기는 작동 불능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화기는 출고된 지 10년 지난 제품이었다. 건물주 이씨는 “불이 나서 소화기를 찾으려고 했는데 작동되는 소화기가 없었다. 그래서 나가보니 불이 크게 번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동하는 소화기를 못 찾았다. 소화기 3개를 다 써서 안에 내용물이 없었다”고 했다.
 
해당 건물은 소방법에 따라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지만 정작 불이 났을 때는 무용지물이었다. 소방 당국은 1층 로비에 있는 스프링클러 알람 밸브가 폐쇄돼 건물에 설치된 356개의 스프링클러가 모두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 소방청이 사고 직후 요원을 투입해 직접 확인한 결과다. 알람 밸브를 잠그면 물이 공급되지 않고 스프링클러도 작동하지 않는다.
 
증축된 8~9층과 테라스. [인터넷 캡처]

증축된 8~9층과 테라스. [인터넷 캡처]

현행 소방법(소방시설관리법)상 소방안전 점검은 매년 한 차례(사용 승인이 이뤄진 달) 실시하면 된다. 건물주가 자격증을 소지한 직원을 통해 직접 점검해도 되고 전문업체를 선정, 점검을 대행해도 된다. 점검 결과는 30일 이내에 관할 소방서에 제출해야 한다. 사실상 ‘셀프 점검’이다.
 
이번에 불이 난 건물처럼 전문업체가 비상구 통로 등에서 불법 적치물을 발견한 뒤 이를 점검표에 표기하더라도 소방서에 공식 문서로 전달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구조다. 업체의 지적을 받아도 건물주가 적치물을 치우지 않으면 한 달가량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점검표를 받은 소방서는 해당 건물을 상대로 현장조사를 나가기 어렵다고 한다. 제천소방서의 경우 소방관 2명이 소방점검 대상 건물 1200여 개를 담당하고 있다. 매년 점검에서는 절반인 600개가량의 건물에서 지적사항이 적발된다고 한다.
 
셀프 점검사항 시정되기까지 차일피일
 
하지만 이들 건물에 대한 소방관의 현장점검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건물주와 전문업체가 제출한 점검표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게 소방점검의 현실이다.
 
불이 난 건물은 비상용 피난기구인 완강기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현행법상 화재 건물에는 3층부터 8층까지 완강기가 6대 설치돼야 하지만 실제론 2대만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완강기는 건물에서 불이 났을 때 높은 층에서 땅으로 천천히 내려올 수 있게 만든 ‘비상용 피난기구’다. 현행법상 완강기는 지상 1층과 2층을 제외한 3층부터 모든 층에 설치해야 하고 바닥 면적 1000㎡마다 1개 이상 설치해야 한다.
 
박충화 대전대 안전방재학부 교수는 “점검 일정은 사전에 건물주와 업체가 조율하는데 여탕도 한두 시간만 손님을 받지 말고 점검했어야 한다”며 “정부와 소방청은 외부 전문업체 관리·감독과 건물주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천=신진호·박진호·송우영·여성국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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