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진격의 BTS, 짠돌이 김생민, 82년생 김지영 …

중앙일보 2017.12.25 01:00 종합 20면 지면보기
올 한 해 문화계를 수놓은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천만 영화가 한 편밖에 탄생하지 않았다고 가뭄을 논하기엔 ‘범죄도시’, ‘청년경찰’ 등 의외의 복병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공영방송 장기 파업으로 인해 국민 드라마가 없었다 말하기엔 ‘품위있는 그녀’, ‘비밀의 숲’ 등 웰메이드 드라마가 그 아쉬움을 달랬다. 장수 예능의 공백을 틈타 새로운 프로그램이 대거 등장했고, 가요계 역시 SM·YG·JYP 등 기존 3강 구조가 깨지면서 중소 기획사들의 선전이 이어졌다. 그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언더독의 반란이 계속된 것이다. 한 해 동안 우리 곁에서 대중과 함께 울고 웃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2017 대중문화를 돌아본다.
 

가요계 큰손 아이돌 오디션 인기
페미니즘 열풍에 여성 예능 부상
과소비 경종 울린 절약 코드 주목

① 빌보드 타고 날아오른 방탄소년단
 
K팝 역사 새로 쓴 방탄소년단. [중앙포토]

K팝 역사 새로 쓴 방탄소년단. [중앙포토]

‘올해의 인물’은 단연 7인조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다. 지난 5월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하며 글로벌 팬덤의 위력을 보여준 데 이어 11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DNA’ 무대를 선보이며 K팝의 위상을 드높였다. 한국 음악방송을 방불케 하는 현지 팬들의 열띤 응원 모습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중소기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출신으로 ‘흙수저’ 아이돌로 불렸던 이들이 ‘금수저’가 됐음을 만천하에 공표한 셈이다. ‘러브 유어셀프 승 허’ 앨범은 ‘빌보드 200’ 7위, ‘마이크 드롭’으로 ‘핫 100’ 28위 등 빌보드 양대 차트를 정복했고, 국내에서도 142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가온차트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② 뉴스 볼 때마다 ‘82년생 김지영’
 
페미니즘 열풍 불러온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중앙포토]

페미니즘 열풍 불러온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중앙포토]

미국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페미니즘’을 선정했다.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범죄가 드러나고 ‘나도 피해자’라는 뜻의 해시태그를 다는 ‘미투(#MeToo)’ 캠페인이 확산되면서 페미니즘을 검색한 사람 숫자가 전년보다 70%가량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동시대 여성의 수난기를 그린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이를 촉발했다. 엄밀히 말하면 지난해 10월 출간된 소설이지만 14개월 동안 50만 부가 팔려나가면서 대중문화 각 영역으로 페미니즘 열기를 확산시켰다. EBS는 14년 만에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를 론칭했고,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 등으로 이어지면서 여성 예능 부활의 신호탄을 알렸다. 웹툰 ‘며느라기’도 인기였다.
 
③ 과소비는 “스튜핏” 외치는 김생민
 
‘절약코드’로 전성기 김생민. [중앙포토]

‘절약코드’로 전성기 김생민. [중앙포토]

개그맨 김생민은 ‘한 번뿐인 인생, 오늘에 집중하라’는 욜로(YOLO)가 “원하는 것을 당장 쓰고 소비하라”는 소비 위주의 가치로 변질된 트렌드에 경종을 울리면서 떠올랐다.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을 통해 다른 사람의 과소비를 보면서 ‘스튜핏(Stupid)’을 외치고, 알뜰한 습관에 ‘그뤠잇(Great)’을 선사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절약하고 또 절약하는 ‘짠테크’도 다시금 주목받았다. KBS2에서 파일럿으로 시작한 ‘김생민의 영수증’은 정규 편성됐고, tvN에서는 제한된 예산으로 가성비 높은 여행을 기획하는 ‘짠내투어’를 신규 론칭했다.
 
④ 광고 모델 휩쓴 ‘괴물 신인’ 워너원
 
괴물신인 워너원. [중앙포토]

괴물신인 워너원. [중앙포토]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가 처음부터 기대주는 아니었다. “남자 101명이 나오는 프로를 누가 보냐”는 우려에 연습생 숫자도 부족해 이미 데뷔한 아이돌까지 참가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박주였다.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라고 외치던 소년들은 11인조 보이그룹 워너원이 되어 날아올랐고, 이 프로로 재기에 성공한 6년 차 아이돌 뉴이스트W는 차트를 역주행하며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157만 표로 1위를 차지한 갓다니엘(갓+강다니엘)을 중심으로 누나팬을 확장해나간 워너원은 데뷔 앨범으로 밀리언셀러에 오른 것도 모자라 15개 브랜드 광고모델을 휩쓸었다.
 
⑤ “볼수록 반짝인다” 힐링 여신 이효리
 
JTBC ‘효리네 민박’의 이효리. [중앙포토]

JTBC ‘효리네 민박’의 이효리. [중앙포토]

‘센 언니’ 이효리가 4년 만에 컴백하자 방송가가 들썩였다. 6집 ‘블랙’을 내놓고 각 방송사 톱 예능 프로그램을 순회한 이효리는 JTBC ‘효리네 민박’에 안착했다. “젊었을 땐 나밖에 몰랐다”던 화려했던 그녀가 민박 손님으로 자신의 집을 찾은 사람들과 소탈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알바생 아이유에게도 먼저 정상을 경험한 선배로서 귀감이 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내려놓음과 비움의 미학을 설파했다. 톱스타일 때나 소길댁일 때나 그녀가 계속 반짝일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⑥ 삥땅 전문 경리과장 남궁민
 
KBS ‘김과장’의 남궁민. [중앙포토]

KBS ‘김과장’의 남궁민. [중앙포토]

KBS2 ‘김과장’에서 경리과장으로 변신한 남궁민은 고구마 같은 일상에 내리는 한 줄기 사이다 같았다. 삥땅을 일삼던 김과장이 자신보다 수백 배 부도덕한 회사를 향해 “회사 높은 인간들, 누구 하나 개기는 사람이 없으니까 사람을 무슨 무료 아이템으로 알아요”라고 속사포처럼 내뱉는 모습만 봐도 묵은 체증이 씻기는 기분이랄까. 덕분에 갑을(甲乙)은커녕 병(丙)과 정(丁)으로 굽신대던 회사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얻었다.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의 양경수 작가의 일러스트가 통쾌함을 더했다. 그러니 어디서든 “보고서가 개판이네”라는 같은 말은 조심해야 한다. 어디서 “개처럼 일만 시키니까요, 확 물어버릴라”라는 대답이 튀어나올지 모르므로.
 
⑦ “모든 날이 좋았다” 불멸의 도깨비 공유
 
tvN‘도깨비’의 공유. [중앙포토]

tvN‘도깨비’의 공유. [중앙포토]

현실계에 김과장이 있었다면 판타지계에는 도깨비가 있었다. 공유는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9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불멸의 삶을 살아온 도깨비가 되어 전생과 환생을 오갔다. 인간 신부 김고은과는 알콩달콩한 로맨스를 보여주고, 누이 유인나와는 애틋한 가족애를 선보였다. 동거인 저승사자 이동욱과는 찰떡궁합 브로맨스를 과시하면서 자타공인 ‘로코킹’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태양의 후예’로 호흡을 맞춘 이응복 PD와 김은숙 작가 콤비는 ‘도깨비’에 희로애락을 고루 담아내면서 믿고 보는 조합으로 자리를 굳혔다.
 
⑧ “돈 워리, 아임 베스트 드라이버” 송강호
 
1000만영화 ‘택시운전사’ 송강호. [중앙포토]

1000만영화 ‘택시운전사’ 송강호. [중앙포토]

지난해 누적 관객 1억 배우 반열에 오른 송강호는 올해는 영화 ‘택시운전사’로 선전했다. 서울에서 온 택시운전사의 시선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그린 영화로, 1218만명을 동원해 올해 유일한 1000만 영화가 됐다. 송강호는 소시민이 항쟁에 뛰어들게 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는 “정치·역사를 떠나 가슴에 갖고 있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미안한 마음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차기작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봉감독의 페르소나답게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에 이어지는 네 번째 영화다.
 
⑨ ‘옥자’ 타고 세계로 향한 봉준호
 
‘옥자’의 봉준호 감독. [중앙포토]

‘옥자’의 봉준호 감독. [중앙포토]

‘옥자’는 올 한 해 영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이자, 넷플릭스가 투자 배급을 맡았기 때문이다. 개봉 전부터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눈길을 끌었지만, 국내 멀티플렉스 개봉이 불발에 그치며 32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하나 ‘옥자’를 실패작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가상동물 옥자와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의 우정은 따뜻했고, 동시에 유전자조작 식품과 동물 보호 등 다양한 문제를 곱씹어보게 했다. 새로운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이 한국에 정착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옥자’가 내년 미국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예비 후보에 오르면서 봉 감독의 차기작 ‘기생충’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⑩ 역사의 증인 역할 76세 나문희
 
‘아이캔 스피크’ 나문희. [중앙포토]

‘아이캔 스피크’ 나문희. [중앙포토]

올해로 76살이 된 나문희는 여배우의 새 지평을 열었다. 김현석 감독의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나옥분 역할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 그로서는 데뷔 56년 만에 처음 받는 주연상이자 한국 영화계로서는 역대 최고령 수상자였다. 위안부 피해 여성의 삶을 가혹하게 그리는 대신 우리와 함께 곁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극에 생동감과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영어 연설까지 완벽하게 마스터한 나문희는 ‘도전의 명수’이기도 하다. 욕쟁이 할매로 분한 ‘수상한 그녀’(2014)로 865만명을 동원했고,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2016)에서는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역할을 소화한 그녀를 어찌 ‘할머니’란 틀 안에 가둘 수 있으랴.
 
⑪ 외국인 예능 히트시킨 알베르토
 
알베르토 몬디. [중앙포토]

알베르토 몬디. [중앙포토]

올해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는 외국인 출연 예능이었다. 외국인이 더이상 한국사회의 ‘타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선두에 선 이는 이탈리아 출신인 알베르토 몬디. 2014년 JTBC ‘비정상회담’에서 유려한 한국말을 구사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실제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면서 익힌 한국 사회생활은 그가 ‘알차장’ 캐릭터로 거듭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합류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어서와~’는 독일 편, 핀란드 편으로 연신 채널 최고 시청률(5%)을 기록하고, 외국 친구들의 눈에서 바라본 한국을 풀어내는 가교 역할을 했다. 알베르토는 2018 대한민국 퍼스트 브랜드 대상 외국인 예능인 부문을 수상하고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주자가 됐다. 이쯤 되면 한국인 아닌가요. 
 
민경원·노진호 기자 storymi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