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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의 달인’ 이총리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려 한강이 됐다”

중앙일보 2017.12.23 06:00
“장사익의 노래 ‘두물머리’ 에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남한강은 남을 버려서 한강에서 만났구나. 우리는 서로 만나 무엇을 버릴까.’ 이런 가사가 있다. 두 부처가 이 노래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부처간 이견 조율 위해 비유로 서로 양보 주문
비유ㆍ유머코드로 연설ㆍ회의서 품격언어 선사

연설문 기대치 높아 담당 직원들 업무량 폭증
주말엔 집무실서 자신의 경험담 녹여 퇴고 작업

행사 장소ㆍ주체에 맞춰 팔색조 연설ㆍ재담솜씨 발휘
“보편 이슈엔 참석 장관들 다 의견내야” 회의분위기 팽팽

지난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현안점검조정회의 자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간 이견 해소를 위해 서로 양보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이렇게 전했다. 노래 가사에 담긴 비유를 통해 부처 입장만 고집하지 말라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참석자들이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는 전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처음 열린 국가관광전략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처음 열린 국가관광전략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 총리는 연설 자리나 회의를 이끄는 모두 발언을 통해 비유를 쏟아낸다. 무거운 회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거나 메시지의 전달력을 높이는 데 비유나 유머만한 게 없다고 보는 듯하다.  
  
취임 이후 지난 6개월간 이 총리의 비유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평지에서 산을 보면 길이 안 보이지만 가보면 다 길이 있다.”(6월22일 제1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젊은 세대가 안정된 직장만 구하는 건 아쉽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게 가장 안정적이나 배는 정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항해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6월23일 수출 우수중소기업 방문 연설)
  
“규제는 중년 남자의 허리 같은 것, 내버려두면 반드시 늘어나게 돼 있다. 그리고 비상한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줄어들지 않는다.”(9월28일 제1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대화)
  
“21세기 인류가 아직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딱 두 개 남았다. 바닷속은 겨우 3%를 인간이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은 어떨까.(12월20일 제6차 양성평등위원회 회의).”  
 
이낙연 국무총리가 같은 날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같은 날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순발력이 가미된 유머도 이 총리의 ‘전매특허’다. 이 총리는 국회의 대정부질문 자리에서 유연한 대응과 매끄러운 말솜씨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외빈과 단독 환담 자리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아델 파키흐 경제기획부 장관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이 총리는 “우리는 자주 만나고 싶고 그래야 한다. 다만 축구장에서만 만나지 말자”며 파키흐 장관의 웃음을 끌어냈다.  
  
또 밀란 슈테흐 체코 상원의장을 만나선 “다시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간다면 프라하 밖에 없다”며 추켜세우기도 했다.   
 
이 총리의 연설이나 회의 발언은 즉석에서 나오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시간을 들여 준비된 것들이라고 한다. 
 
이 총리는 연설비서관에게 연설문을 쓰기 전 세 가지 주문을 한다고 한다. 우선 행사의 헤드테이블에 앉는 귀빈들과 충실히 교감할 수 있는 콘텐트가 담겨 있어야 한다. 둘째, 현안 중심이다. 신문기자 출신답게 뉴스성이 담기는 게 연설문의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일 행사장 분위기와 동떨어지지 않도록 글에 생동감을 가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승희 관훈클럽 편집담당 운영위원. 우상조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승희 관훈클럽 편집담당 운영위원. 우상조 기자

 
이 총리의 꼼꼼한 업무 스타일 때문에 총리실 직원들의 일이 늘었다들 말하지만 대표적인 곳이 연설문 관련 담당 직원들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보통 일정이 없는 토요일 또는 공휴일 오후에 집무실에 나와 최종 퇴고를 하는 모습을 종종 접하곤 했다”며 “이 때 유머나 비유 코드를 넣고 글을 단문 위주로 재편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퇴고 과정에서 이 총리는 자신의 경험을 녹이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지난달 23일 한국교총 회관에서 열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창립 70주년 기념식 자리에서 이 총리가 한 연설의 일부다.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고 읊으셨습니다. 남루한 저를 키운 건 팔 할이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으로 일하던 시절에 후원회장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모신 일이 있습니다. 그 선생님이 돈을 많이 가지셨거나 돈을 많이 모으실 수 있어서가 아니라, 제 인생의 원점이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선생님을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제자들은 늘 있다는 사실을 선생님들께서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행사 주체와 장소에 맞춰 절묘하게 경험과 경력을 녹여내는 이 총리의 얘기 솜씨가 팔색조의 화려한 날개를 보는 듯 할 때도 있다.  
 
지난 6월 한국신문협회 창립 60주년 기념 축하 자리에서 이 총리는 자신의 신문기자 시절 기억을 끄집어냈다.  
 
“개인적으로 신문은 저의 정신의 집이입니다. 모든 판단을 정확한 사실에서 출발하려는 버릇, 어떤 사안이든 균형 있게 보려하는 습성, 정확하되 야비하지 않게 표현하려는 노력, 바지 뒷주머니에 지금도 취재수첩을 넣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메모하는 생활. 이 모든 것이 신문기자 경험이 제게 남긴 귀중한 선물입니다. 저는 그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맛깔스런 연설에 가려 있지만 정부 살림을 총괄하며 공직 사회에 기강을 불어넣는 군기반장 역할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총리는 지난 8월 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 “공직자의 의무는 다섯 가지”라며 “국민의 4대 의무 외에 설명의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다. 사회적 감수성을 갖고 사안을 잘 파악해 예상 질문에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당부였다.     
 
지난 21일 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 총리는 초등학교 유휴 교실을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회의 참석자 전원에게 의견을 밝히도록 했다. 이미 청와대에 청원이 들어가 공론화됐기 때문에 토론 자체를 미룰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총리실 관계자는 “사회적 공론화가 된 사안들은 주무 부처가 아니더라도 국무위원이면 의견을 밝힐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을 쌓고 유지해야 한다는 게 총리의 지론”이라며 “총리가 주재하는 회의에서 교육 관련 보편 이슈 등은 국방장관이나 환경장관에게도 의견을 묻곤 한다”고 전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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