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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제천 화재와 꼬리 무는 참사 … 세월호 교훈 어디 갔나

중앙일보 2017.12.23 01:24 종합 30면 지면보기
안전 문제에 있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큰 희생을 치러야 정신을 차릴 수 있나. 29명의 사망자와 31명의 부상자(22일 오후 6시 현재)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의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안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학습 능력’에 회의감이 들 정도다. 대형참사 때마다 지적됐던 부실이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듭되는 참사에도 변화는 없어
우왕좌왕 대응에 '골든타임' 놓쳐
'제대로 된 나라'다운 대책 나와야

이번 사건은 130여 명의 사상자를 냈던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의 판박이다. 필로티 주차장의 오토바이에서 시작된 불이 가연성 외장재를 타고 전층으로 옮겨 붙은 것이 의정부 화재다. 제천 화재도 필로티 주차장의 천장 열선 작업 중 불똥이 튀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필로티 구조는 1층에서 불이 나면 대형화재로 번지기 쉽다. 닫힌 공간에서는 저절로 잦아들 불도 외벽이 없다 보니 산소가 계속 공급되면서 커진다는 것이다. 필로티 구조가 ‘풀무’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필로티 건물 1층은 옥내 구역이 아니어서 방화문 설치가 어려운 것도 문제다.
 
여기에 화재 시 불쏘시개로 변해 버리는 가연성 외장재 ‘드라이비트’ 공법도 화를 키웠다. 비단 의정부 화재뿐만 아니라 2010년 부산 주상복합 건물 화재 때도 이 문제가 지적됐지만 참사가 되풀이됐다. 정부는 2015년 말 이후 신축건물에는 불연성 외장재를 쓰도록 했지만, 그 전의 가연성 외장재 건물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또 필로티 구조의 취약성에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루빨리 이들 취약 건물에 대한 안전 강화에 나서야 한다.
 
구조 과정 역시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목격자와 생존자에 따르면 소방차가 신고접수 7분 만에 도착했지만 우왕좌왕하면서 초기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다. 특히 20명의 사망자를 낸 2층 여자 사우나의 유리벽을 재빨리 깨기만 했어도 희생자들을 크게 줄였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에 갇힌 희생자들은 물만 뿌려대는 소방차를 보면서 통유리를 깨려 안간힘을 쓰다 스러졌다. 이들의 절망감을 생각하면 안타까움과 함께 분노가 치민다. 세월호 참사 당시 출동한 해경이 가라앉는 선체 주위만 빙빙 돌다 골든타임을 놓친 것과 뭐가 다른가. 27m 높이의 굴절차도 현장에 도착했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근처의 외벽 청소업체 사다리차가 달려와 세 명을 구했다니 이 역시 해경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민간 어선들이 먼저 구조에 나섰던 세월호 상황과 다르지 않다. 비상 경보만 울렸을 뿐 대피 방송이 이뤄지지 않았고, 스플링클러가 작동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증언도 쏟아지고 있다.
 
이번에도 참사 현장에는 대통령과 장관, 정치인들이 달려갔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은 이런 게 아니다. 정말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진단과 책임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세월호 이후 ‘이게 나라냐’며 대대적 안전 대책을 세웠지만 달라진 게 없다. ‘제대로 된 나라’다운 대책이 나와야 한다. 되풀이되는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회는 안전을 누릴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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