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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눈 맞는 이 작은 성당이 1차대전 ‘크리스마스의 기적’

중앙일보 2017.12.23 01:00 종합 20면 지면보기
캐럴의 고향 오스트리아를 가다 
 
오베른도르프에 있는 ‘고요한 밤 성당’. [사진 잘츠부르크주 관광청]

오베른도르프에 있는 ‘고요한 밤 성당’. [사진 잘츠부르크주 관광청]

오스트리아는 지금 겨울왕국이다. 눈부시도록 새하얀 설경과 알프스 산자락에 길게 이어진 천연 눈 슬로프, 동화 같은 크리스마스 마켓 등 볼거리·즐길거리가 가득하다. 여기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2017년 연말부터 2018년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쭉 이어지는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탄생 기념 행사들 때문이다. 200주년이 되는 2018년을 앞두고 벌써 들떠 있는 오스트리아를 다녀왔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벨기에 전장에서 맞붙은 독일군과 영국군은 12월 24일 잠시 전투를 멈췄다. 독일 병사가 부른 캐럴에 영국 병사들이 응답하면서 참호에서 총구를 내려놓은 채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된 것이다. 병사들은 노래와 함께 음식과 담배 등 작은 선물을 주고받았다. 잠깐이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찾아온 기적 같은 정전(停戰)은 감동적인 역사의 한 장면으로 전해진다.
 
이때 군인들이 불렀던 캐럴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다. 수많은 캐럴 중 하필 이 곡이었던 건 경건하고도 따뜻한 크리스마스 본래의 느낌을 이 노래가 가장 잘 담고 있기 때문일 터다.
 
캐럴의 전설로 손꼽히는 이 노래의 고향은 잘츠부르크에서 북쪽으로 20㎞ 떨어진 오베른도르프(Oberndorf)다. 잘자흐강을 끼고 독일과 국경을 접한 마을인데, 강줄기가 굽이치는 평화로운 이 마을의 성니콜라스 성당에서 1818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탄생했다.
 
당시 이 성당 신부였던 요제프 모어가 써 놓은 시에 친구이자 이웃 마을의 교사였던 프란츠 그루버가 곡을 붙였다. 그해 성니콜라스 성당의 12월 24일 미사에서 첫선을 보였다. 기타 반주만 곁들인 쉬운 멜로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독일과 러시아를 건너 1839년엔 미국에까지 닿았다. 지금까지 300여 개 언어로 번역된 이 노래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국경 마을인 오베른도르프에선 강 건너 독일 라우펜 마을이 보인다. [홍주희 기자]

국경 마을인 오베른도르프에선 강 건너 독일 라우펜 마을이 보인다. [홍주희 기자]

노래가 초연된 원래 성당은 1800년대 후반 잘자흐강 범람으로 철거됐다. 1924년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진 뒤 ‘고요한 밤 성당(Stille Nacht Kapelle)’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었다. 팔각지붕을 얹은 하얀 성당은 매우 작아서 예배당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그렇다고 초라한 건 아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정취와는 오히려 맞춘 듯 어울리고,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 노래 가사처럼 고요하고 거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침 성당을 둘러싼 가문비 나무에 눈이 살포시 내려앉아 캐럴의 고향다운 장면까지 연출했다. 특히 매년 12월 24일이면 이곳은 으리으리하고 웅장한 유럽의 어떤 성당보다도 특별해진다. 이날 오후 5시 성탄 기념미사가 열려 ‘거룩한 밤 고요한 밤’이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연주하는 듀엣. [홍주희 기자]

성당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연주하는 듀엣. [홍주희 기자]

재밌는 건 오스트리아 어디에서도 12월 24일 이전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방송에서도, 공연장에서도,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랜 관습으로, 그래서 이 성당 미사가 더욱 의미 있다. 평화를 기원하는 음악을 아끼고 아꼈다가 비로소 약속된 날에 입을 모아 부르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자신의 언어로 화음을 얹는 장면은 종교와 무관하게 누구라도 경건하게 만든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200주년 한정판 맥주.

‘고요한 밤 거룩한 밤’ 200주년 한정판 맥주.

크리스마스 시즌 성당 앞에 여는 ‘고요한 밤 우체국’도 꽤나 낭만적인 서비스다. 크리스마스 기념우표 위에 ‘고요한 밤 성당’이 새겨진 소인을 찍어 엽서나 편지를 보낼 수 있는데, 소중한 사람과 여행지의 추억을 나누고 싶다면 반드시 들러볼 곳이다. 앞으로 1년간 오스트리아에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념 행사가 계속 열린다. 전시와 공연은 물론 ‘고요한 밤’ 맥주를 내놓는 양조장도 있다.
 
오베른도르프 외에 티롤주의 아헨 호수와 푸겐도 의미 있는 여행지다.
 
아헨 호수는 겨울올림픽을 두 번이나 개최한 눈의 도시 인스브루크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달리면 닿는 휴양지로, 미국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전파한 루트비히 라이너의 고향이다. 1939년 크리스마스 이브 뉴욕에서 처음 공연을 한 뒤 투어를 다니며 노래를 알린 그는 이 노래가 전 세계로 보급되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이다.
 
알프스 산맥의 질러탈 골짜기 일대에 자리 잡은 푸겐도 노래를 전파시킨 또 다른 주역의 고향이다. 오르간 수리공이어던 카를 마우라허다. 그는 오베른도르프 성당의 오르간을 고치러 갔다가 악보를 티롤주로 가져왔다. 그 덕분에 노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게 됐지만, 한편으론 그 때문에 한동안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티롤 민요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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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른도르프(오스트리아)=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S BOX] 한국어 가사 중 ‘어둠에 묻힌 밤’ 원곡엔 없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많은 사람의 귀에 익고 입에 붙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한국어 가사 첫 소절이다. 이 중 ‘어둠에 묻힌 밤’은 원곡에 없는 가사다. 전 세계로 노래가 퍼지는 데 공헌한 영어 번역본에서 이 부분은 ‘조용하고 환한 밤(all is calm, all is bright)’이다. 예수가 탄생한 밤 별이 반짝였다는 성경의 내용을 담았다. 독일어 원 가사로도 ‘모두 잠들고 거룩한 양친만이 깨어 있다’고 돼 있다.
 
이 때문에 ‘어둠에 묻힌 밤’이라고 오역된 이유가 무엇인지 해석이 분분한데, 그 중 하나는 노래가 한국에 보급된 시대를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배재학당을 설립한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1931년 편찬한 『신정찬송가』에 실리면서다. 당시는 일본이 본격적으로 민족 말살 통치를 시작하면서 신사참배, 창씨개명, 한글 말살 등을 강요하던 때다. ‘어둠에 묻힌 밤’은 결국 우리나라의 당대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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