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속으로] 꿈 되찾은 검정고시 특공대, 문제아라고 보는 편견 깼죠

중앙일보 2017.12.23 01:00 종합 22면 지면보기
노원구 ‘학교 밖 청소년’ 특별한 종업식
 

98명 중 81명 합격 ‘꿈&락 축제’
영상편지 땐 곳곳서 웃음·눈물

자서전 써보고 학교 밖 수학여행
상처받아 낮아진 자존감 되찾아

바리스타 카페, 미용·재봉 인턴
공부만 아니라 적성 맞는 진로도

지난 15일 서울 중계동의 한 카페에서 노원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검정고시반 청소년과 강사들이 종업식을 했다. [최정동 기자]

지난 15일 서울 중계동의 한 카페에서 노원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검정고시반 청소년과 강사들이 종업식을 했다. [최정동 기자]

“학교를 그만뒀다고 꿈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지난 15일 오후 서울 중계동의 한 카페. 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이색’ 종업식이 열렸다. 주지혜(18)양은 선글라스를 쓰고 종업식에 참석했다. 주양은 “여기 있는 친구, 강사 선생님과 함께한 올 한 해는 제 삶에서 가장 밝게 빛났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주양은 자기 인생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선글라스를 쓴 채 소감을 발표했다.
 
이 자리는 서울 노원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함께 검정고시를 공부한 청소년들이 올 한 해를 기념하는 행사였다. 종업식 행사 이름은 ‘꿈&락 페스티벌’이었다. 꿈을 가지고 내년도 즐겁게(樂) 살자는 취지다.
 
이날 종업식에 온 청소년은 이른바 ‘학교 밖 청소년’들이다. 주양도 1년여 전인 지난해 11월 고교 1학년 때 개인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뒀다. 공부까지 아예 그만둘 생각은 없어 집에서 독학했다. 하지만 ‘작심삼일’이었다. 맞벌이인 부모님이 출근하고 나면 집에서 혼자 스마트폰을 쥐는 시간만 늘어났다. 스스로 해야 하는 시간 관리가 감당하기 버거웠다. 책상에 하루 한 시간 이상 앉아 있기도 어려웠다. 고교 자퇴를 허락해 준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학생들이 만든 자서전. [최정동 기자]

학생들이 만든 자서전. [최정동 기자]

이런 주양에게 큰 힘이 된 것이 노원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였다. 센터의 학교밖청소년지원팀은 2015년 5월부터 주양 같은 청소년을 위해 검정고시 준비반을 운영하고 있었다. 1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수업을 맡아 주양 같은 청소년의 검정고시 대비를 도와줬다.
 
주양은 올봄 센터를 다니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4월 고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응시해 한 번에 합격했다. 주양은 “혼자였다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양은 “대학에 가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다.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대학교 이름이 박힌 야구점퍼를 입고 미팅도 하고 엠티(MT)도 갈 것”이라고 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박지혜(20)씨도 주양과 함께 지난 4월 고교 학력 검정고시에 붙었다. 박씨는 특성화고등학교에서 회계를 공부하다 2학년 1학기이던 2015년 6월 학교를 그만뒀다. 고교생이 되기 전의 꿈은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취업이 잘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자기 꿈과 다른 전공을 택해 특성화고에 진학했다. 회계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박씨는 “꿈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 매일 후회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던 박씨는 센터의 검정고시반에 대해 알게 됐다. 검정고시 합격 이후엔 센터 추천을 받아 두 달간 헤어숍에서 인턴으로도 일해 봤다. 이후 박씨는 제품디자이너가 자기에게 더 맞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재봉 기술을 배운 뒤 센터의 주선으로 한 사회적 기업에 들어갔다. 지금은 카드지갑·파우치 등 자신만의 상품을 직접 만들고 있다. 박씨는 “센터 선생님들이 제가 만든 에코백이나 파우치도 사 줬다. 센터 선생님들 덕분에 인턴십 등 체험 기회를 얻었고 결국 내 꿈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종업식에선 주양·박씨 등의 사연이 담긴 ‘영상편지’도 상영됐다.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곳곳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주양·박씨처럼 올해 센터를 통해 검정고시를 준비한 학교 밖 청소년은 모두 98명. 이 중 81명이 붙어 합격률이 82.6%나 됐다. 서울시 전체 응시자의 평균 합격률(79.26%)보다 성과가 좋다.
 
센터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덕분이다. 센터의 조혜진 학교밖청소년지원팀장은 “학교 밖 청소년은 문제아가 아니다. 학교의 교육 내용이 자기 진로와 맞지 않거나 건강이 일시적으로 나빠져서, 혹은 친구나 선생님과의 불화로, 더러는 가정 사정이 안 좋아져 학교를 그만둔다”고 말했다.
 
조 팀장을 포함한 학교밖청소년지원팀 직원 5명은 학교 밖 청소년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맞춤형으로 찾아 준다. 공부가 필요한 학생에겐 검정고시반을 열어 준다. 검정고시는 매해 4월과 8월에 있는데 시험 3개월 전 청소년을 모집해 주 3회 수업을 연다. 강의는 노원구에 사는 대학생, 학원 원장, 정년퇴직한 교사 등 자원봉사자가 맡는다.
 
공부만 가르치는 건 아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청소년을 위해선 카페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도록 지역 카페를 돌며 인턴 자리를 찾아 준다.
 
센터에선 학교 밖 청소년들과 수학여행도 떠난다. 올해는 경북 경주와 전남 목포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 밖에 노원구 도서관과 연계해 학교 밖 청소년 스스로 자서전을 써 보는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지난 8월 자서전을 만들어 본 주양은 “내 인생이 힘들기만 한 줄 알았는데 자서전을 쓰며 돌아보니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 분명 있었다. 이 기억을 바탕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종업식에 참석한 부모·자원봉사자들은 학교 밖 청소년이 겪는 편견에 대해 안타까움도 표시했다. 지난 2월부터 자원봉사로 검정고시반 강사를 하는 고려대생 고상현(23)씨는 “마음을 터놓고 보면 또래보다 더 여리고 순한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조 팀장도 “만나 보면 상처받고 자존감이 낮아진 아이들일 뿐 나쁜 아이가 아니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검정고시는 끝이 아니라 아이들이 꿈으로 가는 방법의 하나거나 시작”이라며 “아이들이 속에 품을 가능성의 씨앗에 물을 주고 기다려 주면 결국 꿈을 찾아간다”고 덧붙였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