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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죽은 자와 산 자 사이, 시인이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2017.12.23 01:00 종합 26면 지면보기
오늘은 잘 모르겠어

오늘은 잘 모르겠어

오늘은 잘 모르겠어
심보선 지음
문학과지성사 
 
[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심보선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의 첫 시 ‘소리’는 “들어라/배 속의 아기에게 시를 읽어주는 어머니여”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다정한 고백체의 문장을 기대한 독자는 당혹해 할지 모르겠지만, 이 시는 이 시집의 어떤 기조를 암시한다. ‘어머니여’, ‘아버지여’, ‘장자여’, ‘인생이여’, ‘늙은 어부여’, ‘처녀여’, ‘무덤이여’, ‘허공이여’, ‘첨단의 도시여’는 모두, ‘들어라’라는 청유형의 대상이 되는 ‘청자(聽者)’들이다. 청자들에 대한 호명만으로 시를 구성하는 사례는 예외적이다. 세상의 모든 ‘청자들’을 불러 모아 청자들의 지위를 복권하려는 이 시는, 현대시에서 ‘소리’의 위상과 현장성을 되살리려 한다.
 
시 ‘당나귀’와 시집 뒤에 수록된 ‘당나귀 문학론’도 문학에 대한 시인의 태도를 짐작하는데 도움을 준다. ‘당나귀 문학론’에 등장하는 “문학을 창조한 이는 바로 당나귀다. 당나귀야말로 이것이자 저것이자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엇인 존재이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은, 시 ‘당나귀’에 등장하는 “당나귀는 인생에 단 한 번 종착지도 모른 채 짐 없이 먼길을 떠난다”라는 이미지와 만난다.
 
당나귀는 인내와 해방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도 춤출 수 있는, 규정될 수 없는 존재이다. 당나귀는 불확정성을 견디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이것 또는 저것’의 논리 속에 갇힌 자들과 다른 길을 간다. 그 길이 시의 길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은 심보선 시의 예기치 않은 ‘소리들’을 통해서이다.
 
가령 ‘브라운이 브라운에’ 같은 소설에 가까운 글들 역시 그 소리들의 일부가 됨으로써 이 시집은 ‘시의 집’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든다. 이 시집에는 예언자의 진지하고 치열한 사자후와, 소년의 천진스러운 고백과, 시적인 것의 기묘한 가능성들이 동거한다.
 
‘오늘은 잘 모르겠어’에 나오는 “지지난밤에는 사랑을 나눴고/지난밤에는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볼 때/어제까지 나는 인간이 확실했었으나//오늘은 잘 모르겠어”와 같은 언어들은 어떤 지혜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불확정성을 견디는 당나귀의 언어를 들려준다. 그 언어들은 난폭하게 진실 되다. 이때 ‘진실됨’은 정직성과 진정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지점, 시와 삶이 서로를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추동하고 변화시키는 그 지점을 가리킨다.
 
“시를 쓰며 나는 필사적으로 죽음을 건너 뛰어왔다(‘축복은 무엇일까’)”와 같은 뜨거운 문장은 아포리즘이 아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이행’으로서의 시 쓰기의 자세 그 자체이다. 심보선 시가 급진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가 진보적인 사회학자이어서가 아니라, 저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서 시인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기 때문이다. 그 물음은 얼마나 과격한가? 시는 ‘시를 쓰지 않는 사람들’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묻고, 가장 격렬하게 ‘모른다’라고 말한다.
 
이광호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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