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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지적이거나 고상하거나 … ‘알쓸신잡’ 라틴어

중앙일보 2017.12.23 01:00 종합 24면 지면보기
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2017 올해의 책 10'
 
라틴어 수업

라틴어 수업

라틴어 수업
한동일 지음
흐름출판
 
[인문] 라틴어는 ‘죽은 언어(死語)’다. 로마제국의 공용어였지만 이제는 어느 나라에서도 공용어로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청나라를 세웠던 만주족의 만주어 신세와 비슷하다. 그러나 만주어와 달리 라틴어는 지금도 생명력을 가졌다. 라틴어에 뿌리를 둔 학술용어나 신조어가 수두룩하고, 아우디(Audi)나 에쿠스(EQUUS) 등 국내외 유명 브랜드 중에도 라틴어 흔적이 뚜렷하다. 서울대의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나 서강대의 ‘진리에 복종하라(Obedire veritati)’처럼 라틴어 모토를 내세운 대학이나 기업도 많다. 이는 “라틴어로 말한 것은 무엇이든 고상해 보인다”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이 10만 부 이상 팔린 것은 문화적 기현상이라 할 만하다. 라틴어를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손에 든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이란 작은 글자의 부제목에 끌린 이들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은 이 책, 제목 그대로 ‘강의록’이다. 지은이가 2010년부터 5년간 서강대에서 했던 라틴어 강의 내용을 추려낸 것이니 말이다. 때문에 곳곳에 예시된 160여 개에 이른다는 동사의 변화, 명사와 형용사의 격 변화 등이 툭툭 걸리기도 한다.
 
지은이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이런 언어를 훈련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암기하는 방법, 공부에 대한 접근법이 자기 나름대로 생깁니다”하고 일러주지만 공부법을 익히기 위해 이 책을 든 독자 또한 매우 드물 것이라 여겨진다.
 
오히려 라틴어 격언을 화두로 삼은 삶의 교훈, 세상살이 공부가 이 책의 매력이라 하겠다. ‘숨마 쿰 라우데(Summa cum laude· 최우등)’이란 라틴어의 성적평가 표현을 소개하면서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식이다. 생존경쟁에 쫓겨 갈수록 사위어가는 이 시대, 이 땅의 독자들에게 이만한 격려가 있을까.
 
신은 언제나 인간의 계획보다 더 오랜 시간을 두고 미래를 보기에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Dum vita est, spes est)’고 한 구절이나, “우리는 죽은 자가 간절히 바란 내일이었을 오늘에 살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것들에 매이지 마세요”라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Hoc quoque transibit)’라고 한 구절은 쉬 만나기 힘든 위로라 하겠다.
 
여기에 로마인의 욕설이나 음식, 놀이 설명 같은 ‘양념’과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라는 ‘간판’을 내려놓기라도 한 듯 감추고 싶을 만한 어릴 적 경험이 더해져 책은 그저 그런 처세술을 담은 자기계발서를 훌쩍 뛰어넘는다.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지만 인문학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데 도움을 주는 학문이다. 그렇게 여기는 이에게 이 책은 어엿한 인문서로 읽힐 것이다. 아니면 지은이의 ‘낮은 목소리’에 솔깃해 마음밭을 가꾸는 에세이로 읽어도 좋을 책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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