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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기-승-전-평창 외교의 함정

중앙일보 2017.12.22 01:51 종합 36면 지면보기
김수정 외교안보 선임기자

김수정 외교안보 선임기자

초불확실성의 해로 전망됐던 2017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지난 1년 국제정세는 전망대로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절대 권력을 장악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팽창적 대외정책, 유럽의 분열 등으로 요동쳤다. 그 한가운데에 북한이 있었다. 2월 12일 북극성-2형 발사를 시작으로 미사일 도발만 17차례. 9월 3일 히로시마 투하 핵폭탄 위력의 17배 규모 수소탄 실험 성공(6차 핵실험), 11월 29일 미 본토 타격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로 세계의 안보 지형을 흔들었다.
 

북핵·미사일체계 완성 내년 1·2월이 고비
평창·평양 묶어 북핵보유 시간 벌어줄 수도

문제는 앞으로 2~3개월, 북한이 핵탄두 생산에 들어가 명실상부한 핵·미사일체계를 완성할 수 있는 기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은 고갈되고 있다”며 군사적 옵션까지 거론하는 배경이다. 대한민국이 어깨에 핵을 지고 사는 운명이 내년 봄에 달렸다는 얘기다. 얄궂게도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이다.
 
취임 두 달째인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은 베를린선언을 통해 평창을 한반도 문제 해결의 고리로 엮었다. 북한 선수단을 평창에 초청하면서다. 대북 메시지는 8·15 광복절에도 이어졌다. “잠꼬대 같은 궤변”이라는 북한의 냉대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안보 콘셉트는 ‘기- 승-전-평창’으로 일관됐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는다’ 등의 이른바 ‘3불(不)’을 중국에 내준 배경에도 시 주석의 평창 올림픽 참석과 이를 통한 한반도 정세 변화 시도가 있었다. 지난 14일 굴욕 외교 논란 속에 시 주석과 나란히 서서 동맹인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을 선언적으로 차단한 데 이어 문 대통령은 19일 평창 올림픽 기간 한·미 키리졸브(KR) 연습과 독수리(FE) 훈련의 연기까지 제안했다.
 
문 대통령이 평창으로 가는 기차 속에서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언급할 때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캐나다에서 ‘북한이 핵 포기할 준비가 안 돼 있으면 대화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내년 1월 16일 밴쿠버에서 6·25 참전국으로 구성된 북한위기대응회의를 주재한다고 밝혔다. 전날 백악관이 국가안보전략(NSS)과 허버트 맥매스터 안보보좌관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강제하는 옵션도 향상시킬 것”이라며 군사옵션 가능성을 강조하고 북한을 ‘워너크라이’ 사이버 공격 배후로 지목하며 압박하는 모습과도 대비됐다.
 
1978년 이후 한·미가 지속해온 군사훈련은 유사시, 즉 북한의 도발 또는 급변사태에 대응하는 방어 훈련이다. 한·미 연합군이 북한을 먼저 공격한 적은 없었다. 아웅산 테러, KAL기 납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모두 북한의 도발이었다.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과 축소는 북한과 중국·러시아가 미국을 한반도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 추진하는 전략적인 카드다. 중·러가 손잡고 ‘쌍중단’(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북핵·미사일 도발 중단)을 지난해부터 요구하는 까닭이다.
 
한·미 동맹에 이견이 불거지는 것을 꺼리는 미국이 연합훈련 중단안을 들어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3불’ 공약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 요구 등 중국에 치우친 한국의 외교 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 기류에 밝은 인사는 “미국이 향후 전략적인 문제를 한국과 논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며 “니키 헤일리 미 유엔대사의 미 선수단 올림픽 불참 가능성 언급도 이런 불편한 심기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가 내민 손을 잡고 핵포기에 나서면 좋겠지만 국내외 전문가 가운데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북한이 올림픽에 나와 대화 분위기가 조성된다 해도 결국은 ‘가면무도회’가 되기 십상이다. 자칫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올림픽’이 한반도의 안보체계를 흔들고, 북한의 핵 개발 완료 때까지 시간을 붙잡아주는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시간을 벌어준 정부가 될 것인가.
 
김수정 외교안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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