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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EU, 우버를 택시로 판정 … 역풍 맞은 ‘긱 이코노미’

중앙일보 2017.12.22 01:00 경제 2면 지면보기
“우버는 택시가 아니다.” 미국의 차량 공유업체 우버는 2009년 설립 이후 줄곧 이같이 주장해왔다. 비용을 받고 승객을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시켜주는 것은 맞지만, 그게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버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차량과 승객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핵심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이를 “정보 사회(information society) 서비스”라고 주장했다.
 

유럽사법재판소 판결 파장
“디지털 서비스 아닌 교통 서비스”
면허 등 우버 영업방식 규제 불가피

일각선 “혁신 경쟁에 찬물 끼얹어”
앱 기반 에어비앤비·딜리버루 등
다른 공유경제 기업에 영향 줄 듯
국내서도 택시·차량공유업계 갈등

“우버는 교통 서비스다.” 유럽연합(EU) 최고법원의 의견은 달랐다.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우버가 제공하는 중개 서비스는 디지털 서비스가 아닌 운송 서비스”라고 판결했다. ECJ는 판결문에서 “개인(승객)과 비전문 운전사를 연결하는 기능은 우버가 제공하는 교통 서비스를 구성하는 핵심·필수 요소에 해당하므로 우버는 ‘정보 사회 서비스’가 아닌 ‘교통 분야의 한 서비스’로 분류해야 한다”고 밝혔다.
 
ECJ는 “따라서 EU 회원국은 우버 서비스가 EU 법령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 조건을 규제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EU 회원국이 우버를 일반 택시 회사처럼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줬다는 의미가 있다.
 
우버 유럽사법재판소 판결 파장

우버 유럽사법재판소 판결 파장

EU는 2015년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을 발표했다.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는 기업들이 장벽 없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회원국은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 반(反)경쟁적인 규제를 부과하는 것이 금지된다.
 
하지만 운송 서비스는 EU 단일시장 원칙을 적용받지 않는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교통에 관한 규제는 회원국의 자유 재량에 맡기고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우버가 디지털 서비스이냐 교통 서비스이냐에 따라 규제의 정도가 달라진다. 만약 우버가 디지털 서비스로 분류됐다면 우버를 불허한 도시들이 경쟁법 위반 혐의를 받게 되는 식이다. 하지만 교통 서비스로 규정됨에 따라 운송업으로 규제받을 수 있게 됐다.
 
소송의 뿌리는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의 택시기사협회는 우버 스페인법인을 상대로 바르셀로나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협회는 “우버가 허가받지 않은 운전기사를 고용해 승객에게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기존 택시업계에는 불공정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탈리아·독일·벨기에·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우버를 택시 회사로 간주해 유럽 운송 법규를 준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우버가 교통운송업체라는 ECJ의 판단이 나오면서 우버의 영업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우버의 운전사들은 단기 계약을 맺고 일하는 프리랜서 형태가 대부분이다. 장기 근로계약을 맺은 근로자들에 해당하는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 우버가 일반 운송사업자로 규제를 받게 되면 당국으로부터 면허를 받고, 근로자에게 복지 혜택을 줘야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까지 단기 계약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은 업무 중 다쳐도 보상받을 길이 마땅치 않았다. 휴가나 병가도 없어서 노동력 착취라는 비판도 받았다.
 
이번 판결은 다른 ‘긱 이코노미’ 업체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긱 이코노미는 우버, 에어비앤비(숙박 공유업체), 딜리버루(음식 배달업체) 등과 같이 앱을 통해 단기 계약으로 노동력을 중개하는 방식을 말한다. 정보기술(IT) 스타트업들이 앱을 매개로 소비자와 노동력을 연결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폭넓게 확산 중이다. 맥킨지컨설팅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생산가능인구의 약 30%가 긱 이코노미에 종사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판결은 EU 이외의 시장에도, 우버 이외의 다른 공유경제 기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ECJ 판결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나온다. 혁신을 억누르고 IT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텔레그래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혁신하는 기업에 제동을 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쟁에 찬물을 끼얹는 이 같은 결정은 경쟁을 없애버림으로써 발전을 후퇴시킨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런던에서 개발 중인 앱 ‘시티매퍼’를 예로 들었다. 승객 수요와 버스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연계해 승객은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타고 버스는 빈 채로 돌아다니지 않도록 하는 게 서비스의 골자다. 신문은 “소프트웨어와 전통적인 교통산업을 접목해 교통체증과 공해는 줄이면서 이동은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혁신을 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했다.
 
바르셀로나 택시기사협회는 트위터를 통해 “택시 운전사가 골리앗을 이겼다”며 ECJ 판결을 환영했다. 우버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이미 대부분의 EU국가에서 수송 관련 법에 따라 운영되고 있어 이번 판결이 운영방식을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차량 공유업체와 택시업계가 갈등을 겪고 있다. 우버는 2013년 국내에 진출했지만, 곧 서비스를 중단했다. 택시업계의 반발이 워낙 거센데다 국토교통부가 “허가받지 않은 일반인이 유료 운송을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도 잇따라 벽에 가로막혔다. 서울시는 지난달 카풀 앱인 ‘풀러스’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출·퇴근 시간에만 운영하던 서비스를 24시간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에 한시적으로 카풀을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카풀 앱 럭시를 통해 승객을 태운 일부 운전사도 출퇴근 시간이 아닐 때 영업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긱 이코노미
스마트폰 앱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행태를 일컫는 신조어. 긱(gig)은 ‘임시적인 일’ 또는 ‘공연’이란 뜻이 있다.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서 단기로 섭외한 연주자들이 ‘긱(공연)’을 하고 사례비를 받은 데서 유래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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