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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세상읽기] 야권통합 걸림돌, 박지원·한국당 아니라 비전이다

중앙일보 2017.12.20 01:40 종합 32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요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사람들은 ‘천·정·박’과 ‘자유한국당’을 입에 달고 산다. 바른정당은 국민의당에 “안철수 대표가 박지원·천정배·정동영만 ‘처리’(출당)해 주면 그날로 통합하겠다”고 한다. 반면에 국민의당은 바른정당에 “제발 우리랑 합친 다음 한국당(비박)과도 통합하겠다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한다.
 

통합 논의,인물청산·선거공학에 치우쳐
지역·이념 초월한 가치·능력부터 보여라

‘천·정·박 처리’는 바른정당 중에서도 대표 유승민의 핵심 관심사다. 햇볕정책과 지역주의를 상징하는 3인이 남아 있으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란 자신의 원칙이 무너지고, 보수표를 끌어올 동력이 사라진다는 이유다. 안철수도 이런 입장을 이해한다. 본인도 바른정당과 합쳐 중도 노선을 걸으려면 3인과의 결별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3인이 당을 나갈 생각이 없다는 거다. 3인 가운데서도 핵심은 박지원이다. 그 한 명이라도 ‘처리’한다면 통합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완강하게 버티며 통합 움직임에 철퇴를 꽂는 이가 또 박지원이다. 박지원의 핵심 관심사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전남지사에 당선되는 거다. 지방선거의 꽃인 17개 광역 지자체장 선거에서 국민의당이 이길 만한 곳은 전남 정도인데, 바른정당과 통합하면 여기마저 민심이 돌아서며 지게 돼 당이 뿌리째 흔들릴 것이란 게 박지원의 주장이다. 그러나 국민의당 통합파들은 “통합하면 호남에서조차 당 지지율이 오르는 걸로 나온다. 박지원이 말하는 호남 민심은 허구”라고 반박한다. 다른 분석도 있다. 같은 당 주승용 의원도 전남지사에 도전할 공산이 큰데, 그는 통합파로 안철수와 사이가 좋다. 따라서 박지원은 경선에서 그와 붙으면 패배할 우려가 크다고 봐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고 명분 쌓기용으로 통합 반대에 올인하고 있다는 추측이다.
 
바른정당에서도 ‘3인 문제’로 통합 진도가 너무 느려지면 안 된다는 우려 아래 절충안이 거론된다. 안철수가 “전당대회에서 통합안이 통과되면 3인이, 부결되면 본인이 응분의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선언하면 유승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에선 “너무 나간 요구”라면서도 “당심이 전대에서 통합을 선택하면 반대파는 당을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덧붙여 타협이 도출될 여지가 엿보인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반면에 국민의당은 바른정당 원외 위원장들 일부가 한국당과의 ‘2단계 통합’을 거론하는 데 경기를 일으킨다. 통합파인 김관영 의원조차 “그럴 경우 나부터 앞장서 통합에 반대하겠다”고 선을 긋는다. 한국당에서 비박계가 뛰쳐나와 입당하는 건 몰라도 ‘신판 3당 합당’ 논란에 휘말릴 당 대 당 통합은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이견들로 통합 논의가 주춤하자 신경이 날카로워진 사람들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양당 간판을 달고 출마하려는 예비후보들이다. 이들은 이미 통합을 기정사실로 간주하며 뛰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한 자리 숫자인 바른정당이나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하면 당선 가능성은 제로다. 그러나 두당이 통합하면 지지율이 20%로 치솟을 것이란 조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또 통합 시 자유한국당은 10% 선인 현 지지율에 전혀 변화가 없고, 더불어민주당은 40%대 중반인 현 지지율이 30%대 후반까지 빠지는 걸로 나온다. 이런 추세가 지방선거까지 이어지면 통합정당 후보들은 한국당 후보를 주저앉히고 민주당 후보와 맞짱을 떠 볼 여지가 생긴다. 특히 중선거구제로 치러지는 기초의회 선거에선 통합정당 후보들이 대거 2등으로 당선할 공산이 커진다. 20%란 수치는 돈 문제도 해결해 준다. 선거에서 득표율이 15%를 넘으면 국고에서 비용을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는 양당이 깔끔하게 통합을 이뤄내고, 중도 개혁 정당의 비전을 제대로 보여줄 때만 가능하다. 영호남 화합이니, 보수·진보의 통합이니 떠드는 것부터 민심의 요구를 헛짚은 것이다. 안철수와 유승민은 두 당이 합치면 지지율이 몇 % 오른다는 정치공학에 앞서 지역과 이념을 초월한 가치와 콘텐트부터 제시해야 통합이 역사적 정당성과 국민의 공감을 얻을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도 중요하다. 사심을 버리고 나라가 당면한 과제들을 함께 풀어간다면 지지율이 더욱 상승해 ‘3인 문제’ 같은 건 저절로 소멸될 것이다. 그러나 서로 사욕을 앞세우며 반목한다면 통합으로 얻은 지지율을 삽시간에 까먹고 통합정당은 공중분해될 것이다. 아직 두 사람은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유승민은 사석에서 “나는 사람 눈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아는데, 안철수는 잘 모르겠더라”고 했다. 둘은 이런 틈을 어떻게든 좁혀 가야 한다. 둘이 하나가 될 수 없다면 뿌리가 다른 두 정당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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