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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큰 일본·대만 조폭들, 강남 한복판서 마약 거래하다 체포

중앙일보 2017.12.19 17:30
지난 10월 19일 오후 4시쯤 서울 역삼역 인근. 검찰 수사관 10여 명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역 주변에 잠복해 있었다. 국가정보원 요원과 세관 직원들도 현장에 함께 있었다. 대만 폭력조직과 일본 폭력조직의 마약 거래 현장을 잡기 위해서였다.  
 

일본 야쿠자·대만 폭력조직 짜고
수납장에 숨겨 홍콩서 밀반입
낮시간 2호선 역삼역 인근서 거래
검찰·국정원·세관 공조해 검거

대만 폭력조직원 서모(42)씨가 먼저 나타났다. 곧이어 재일교포 이모(59)씨와 공범 나모(41)씨도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SNS를 통해 미리 접선 일시와 장소를 정했다.
 
거래는 인근에 주차된 차량에서 단 몇 분 동안 이뤄졌다. 서씨가 배낭에 든 필로폰 약 8kg을 이씨에게 건네자마자 이들은 곧바로 헤어졌다. 필로폰 값 약 3억원은 이씨가 나중에 지불하기로 했다. 이전에도 필로폰 2kg을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판 경험이 있어 거래는 금세 끝났다.
 
이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흐리기 위해 오히려 사람이 많은 강남 한복판을 택하는 대범함을 보였지만 정작 현장에 잠복해있던 수사팀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했다. 수사팀은 각자 주거지로 향하던 서씨 등을 현장에서 체포하고 필로폰을 압수했다. 검찰 수사는 국정원이 입수한 정보에 의해 시작됐다.
지하철 2호선 역삼역.

지하철 2호선 역삼역.

검찰 수사팀은 다음날 공범인 대만인 H(47)도 추가로 붙잡았다. 그는 중국에서 필로폰 16kg을 국내로 밀반입한 뒤 이를 서씨 등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일본 폭력조직에 팔고 남은 필로폰을 추가로 팔기 위해 서씨 등과 다시 접촉하려다 덜미를 잡혔다. H의 주거지에서는 필로폰 10g이 발견됐다.

 
H는 중국에서 수납장을 제조할 때 빈 공간에 필로폰을 넣은 뒤 화물선을 통해 한국으로 밀수했다고 한다. 수납장 등 가구류를 화물선으로 운반할 경우 세관에서 정밀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필로폰은 중국 광저우를 출발한 뒤 홍콩, 대만을 경유해 인천항에 들어왔다.
서울중앙지검이 19일 오전 서울 강남에서 288억원대 필로폰을 거래하던 재일교포 이모씨 등을 구속하고 압수한 필로폰 8.6kg과 밀수에 사용한 가구 등을 공개했다. [중앙포토]

서울중앙지검이 19일 오전 서울 강남에서 288억원대 필로폰을 거래하던 재일교포 이모씨 등을 구속하고 압수한 필로폰 8.6kg과 밀수에 사용한 가구 등을 공개했다. [중앙포토]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박재억)는 서씨와 이씨 등 4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19일 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압수한 밀수 필로폰의 양은 8.64kg이다. 통상 1회 투여량을 0.03g으로 잡을 때 약 29만 명이 동시에 한 차례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서씨와 H는 대만에 있는 공급총책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서로 얼굴을 알지 못했다. 각자 가지고 있는 1000원권 지폐의 일련번호를 비표처럼 이용해 '접선'을 했다. 대만 공급총책은 대만 현지 수사당국이 쫓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박재억 부장검사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브리핑룸에서 일본, 대만 폭력단 조직원이 개입한 필로폰 밀수 사건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박재억 부장검사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브리핑룸에서 일본, 대만 폭력단 조직원이 개입한 필로폰 밀수 사건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로폰을 사들인 이씨는 일본 3대 폭력조직의 하나인 ‘이나가와카이’(稲川會)에 속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과거 일본 야쿠자와 중국 삼합회 등 해외 폭력조직들이 국내에 필로폰을 밀수하거나 유통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있었지만, 대만 폭력조직이 일본 야쿠자에게 직접 마약을 판매하다 적발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고 설명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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