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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들, 내년부터 방통위에 프로그램 제작비 공개한다

중앙일보 2017.12.19 16:33
지난달 15일 남아공에서 EBS 다큐멘터리 ‘야수의 방주’ 촬영 중 교통사고로 박환성·김광일 두 독립PD가 사망했다. 사고 현장 근처에서 동료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독립PD협회]

지난달 15일 남아공에서 EBS 다큐멘터리 ‘야수의 방주’ 촬영 중 교통사고로 박환성·김광일 두 독립PD가 사망했다. 사고 현장 근처에서 동료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독립PD협회]

내년부터 방송사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 제작비 단가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하고, 외주 인력의 상해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등 외주 인력에 대해 안전 대책을 적용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방송사는 재허가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정부,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 발표
방송사 제작단가 제출, 저작권 양도 유도
내년부터 따르지 않으면 재허가 심사 때 불이익
"젊은이들이 마음껏 꿈 펼치게 하겠다"

정부는 19일 오전 서울 정부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 마련에는 방통위,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5개 부처가 합동으로 참여했다. 외주 제도는 방송 콘텐트의 질적 경쟁력 향상을 위해 1991년 외주제작 의무편성 비율을 정하면서 도입됐다.
 
이후 외주 제작사는 1991년 44개에서 2015년 532개로 늘고 매출 또한 2008년 7000억원에서 2015년 1조 1435억원으로 증가하는 등 질적, 양적 성장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방송사가 갑을 관계를 바탕으로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외주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특히 지난 7월 박환성ㆍ김광일 PD가 남아공에서 EBS 다큐 촬영을 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불합리한 방송사 외주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19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방통위]

19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방통위]

방송사, 내년부터 프로그램 제작비 공개해야 
이날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외주 시장의 성장 이면에는 외주 제작사에 대한 불충분한 제작비 지급, 저작권과 수익의 자의적 배분, 과도한 노동시간, 인권침해 등 불공정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에 5개 정부 부처가 합동대책반을 구성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합동 대책에 따르면 방송사는 내년부터 자체 제작 프로그램의 단가를 방통위에 제출해야 한다. 방송사의 자체 프로그램 제작비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외주 프로그램 제작비가 논란을 만들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방통위에 자체 제작 프로그램의 단가를 제출하지 않는 방송사의 경우 재허가 심사 때 불이익을 받게 된다.
 
또 정부는 외주 프로그램의 저작권이 방송사가 아닌 외주 제작자에게 가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방송사의 순수 외주 제작물의 의무편성 비율 계산 시 외주 제작자에게 프로그램 양도권을 주기로 합의한 프로그램의 경우 가중치를 둬 계산한다. 즉, 방송사별로 채워야 하는 순수 외주 프로그램의 의무 편성비율이 있는데, 저작권을 외주사에 양도하면 의무편성비율 계산 시 방송사 측에 유리하게 계산하겠다는 얘기다. 반대로 방송사가 저작권을 양도하지 않을 경우 의무편성 인정비율 계산 시 이를 축소한다. 기존 외주 제작 프로그램들의 경우 방송사가 대부분 저작권을 가져갔다. 이 때문에 독립제작자들 사이에서는 “활용도 못 할 거면서 저작권만 가져가 놓고 방송국 캐비넷에 그냥 썩히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특히 방통위는 독립제작자들이 꾸준히 필요성을 주장해왔던 '외주 제작 가이드라인' 도입을 위해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즉 방송사가 ▶제작시간 계획표 ▶저작권 귀속 ▶제작비 산정 및 지급방식 등을 포함한 규약을 의무적으로 작성하고, 이를 외주 제작사와 계약시 의무적으로 준수하도록 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독립제작자 안전 보장하도록 유도
정부는 독립제작자들(독립PD 및 외주제작사)의 안전강화 방안도 마련했다. 대책에 따르면 방송사는 내년부터 외주제작사와 계약 시 방송제작 인력에 대해 상해보험 및 여행자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등 안전 대책을 적용해야 한다. 또 독립제작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방송사 및 관련 협회가 참여해 ‘방송업계 독립창작자 인권선언문(인권조례)’을 제정하도록 할 계획이다. “불충분한 제작비로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기본적인 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해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제작 과정에서 방송사 PD 등 관계자들이 외주제작진에게 폭언, 멸시 등 비인격적 대우를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게 정부의 합동 조사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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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난 9월 한국 독립PD협회와 한국방송영상제작협회가 공개한 MBC 본사 담당자의 녹취 파일에 따르면 MBC 본사 담당자는 외주 인력들에게  “네가 값어치를 설명해 XX, 빼라는데 XX놈”, “무식한 새끼들의 자위행위라 하지 마스터베이션 들고 흔드는 거 너 혼자 해” 등 폭언을 내뱉었다. 정부는 외주 인력에 대해 안전대책을 적용하지 않거나, 인권선언문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역시 재허가 심사 때 불이익을 줄 예정이다.
MBC '리얼스토리 눈' 본사 담당자의 폭언 영상 캡처본

MBC '리얼스토리 눈' 본사 담당자의 폭언 영상 캡처본

 
정부는 또 무리한 촬영 일정과 과도한 근무시간 등 열악한 외주제작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외주제작사를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내년 상반기 외주제작사를 대상으로 집중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또 정부는 '특례업종'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방송업 등은 특례업종으로 지정돼 그동안 연장근로한도(주 12시간)가 적용되지 않았다. 
 
불합리한 관행 신고하도록 센터 설치
이외에도 방송사는 방송사의 외주제작사에 대한 불합리한 협찬 배분, 계약서 작성 거부 등 불합리한 관행을 금지하는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며, 계약서 미작성, 구두계약 및 인권침해 문제 등을 신고할 수 있는 콘텐트 공정상생 센터도 설치한다. 또 방송사·작가 간 원고료, 저작권 등을 명확히 하는 방송작가 집필표준계약서를 제정하고, 특히 문체부와 공정위에서 제정·시행 중인 방송분야 표준계약서를 방송사가 활용할 경우 방송진흥기금 융자금리를 현행 연 2.05%에서 1.8%로 인하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정부 5개 부처는 이날 발표한 대책 이행 상황을 분기별로 점검해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개선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20여년 경력의 한 독립PD는 "정부 차원에서 외주 문제가 이렇게 논의된 적이 없어 합동대책이 나온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면서도 "다만 정부가 강제력이 떨어지는 재허가 심사 외에는 다른 제재 수단이 없어 실효성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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