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홍도 스승' 강세황 집안 초상화 5대 드라마처럼 모여

중앙일보 2017.12.19 12:40
미국 경메에서 구입해 19일 공개한 강노 초상화. [사진 문화재청]

미국 경메에서 구입해 19일 공개한 강노 초상화. [사진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김동현 차장은 지난 10월 초 미국의 한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초상화 한 점을 보고 흥분에 휩싸였다. 초상화 오른쪽 묵서(墨書)에 있는 ‘강판부사정은 기사생칠십일세을묘구월진상(姜判府事貞隱 己巳生七十一歲乙卯九月眞像)’ 글자를 주목했다. ‘판부사’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의 준말로, 조선시대 특정 관직에 보임되지 않은 고급관리가 모인 중추부의 종1품 관직을 말한다. ‘정은’은 조선 말기 문신 강노(姜㳣·1809~1886)의 호다. 1879년 강노의 나이 71세 때 9월에 그린 초상화란 뜻이다.
'진주 강씨' 시조인 고려시대 강민첨 초상. [사진 문화재청]

'진주 강씨' 시조인 고려시대 강민첨 초상. [사진 문화재청]

 

강세황 증손자 강노 초상 미국 경매서 사들여
조선시대 명문가 계보 5대째 확인한 건 처음
외국서도 유례 거의 없어 미술사적 의미 커

 김 차장은 단박에 ‘물건’임을 직감했다. 강노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화가 표암(豹菴) 강세황(1713~1791)의 증손자다. 표암을 중심으로 4대에 걸친 강씨 집안 초상화가 내려오는 터라 강노의 초상까지 더하면 5대에 걸친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초상화 계보가 완성되는 진기록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강세황 부친인 강현 초상. [사진 문화재청]

강세황 부친인 강현 초상. [사진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세 차례 내부 평가위원회를 열었다. 그리고 10월 말 미국 조지아주 서내버시에 있는 에버러드 경매·감정소로 날아갔다. 경매 현장에서 강노 초상화를 확인하고, 31만 달러(약 3억4000만원)에 낙찰받았다. 현장 실사에 참여한 초상화 전문가 조선미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한 집안의 5대 초상화를 확인한 건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경우다. 한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마치 5부작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홍도의 스승으로 유명한 조선 문인화가 강세황 초상. [사진 문화재청]

김홍도의 스승으로 유명한 조선 문인화가 강세황 초상. [사진 문화재청]

 한국에 돌아온 강노 초상이 19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개됐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그의 4대 조상들 초상화 사진과 함께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집안의 초상이, 그것도 두 세기에 걸친 한 집안 인물이 한번에 소개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강세황·강노는 진주 강씨 은열공파(殷列公派)다. 고려 현종 때 공신인 강민첨(963~1021)이 시조로, 강민첨의 초상화(보물 제588호)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강민첨 초상 사진을 합하면 6대에 걸친 초상화가 한 곳에 모인 셈이다.
 
강세황의 아들인 강인 초상. [사진 문화재청]

강세황의 아들인 강인 초상. [사진 문화재청]

 풍속화가 김홍도의 스승으로 유명한 강세황 집안은 조선시대 명문가로 꼽힌다. 할아버지 강백년(1603~1681), 아버지 강현(1650-1733)에 이어 강세황까지 3대 연속 기로소(耆老所·정2품 이상, 70세 이상 문신을 예우하기 위한 노인당. 요즘으로 치면 예술원이나 학술원)에 들어간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 영예를 누렸다. 병조판서와 좌의정을 지낸 강노 역시 나중에 기로서에 들어가, 이를 포함하면 ‘사세기영지가’에 해당한다.
 
강세황의 손자인 강이오 초상. [사진 문화재청]

강세황의 손자인 강이오 초상. [사진 문화재청]

 이번 초상화는 예술사적 의미가 크다. 강현과 강세황, 그리고 강세황의 손자인 강이오(1788~1857)의 초상화 모두 각각 보물 제589호, 제590호, 제1458호로 지정돼 있다. 강세황의 아들 강인(1729~1791)의 초상화는 지난 9월 서울 옥션경매에 출품됐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억5000만원에 구입했다. 올해에만 4대, 5대 초상화 계보가 확인된 셈이다.
 
 초상화는 조선시대 미술의 대표적 장르 가운데 하나다. 임금이나 사대부 얼굴의 반점·주름수염 등을 낱낱이 그려내는 동시에 해당 인물의 성품·기질 등 내면을 드러냈다. 전문용어로 전신사의(傳神寫意)라고 한다. 강노의 초상 역시 71세 노인의 피부, 수염, 마마자국, 사마귀 등이 정밀화처럼 묘사됐고, 선비의 완고한 기품이 잘 표현돼 있다. 기존의 4대 초상화가 비단에 그린 반면 강인의 초상은 얇은 한지로 제작됐다.
 
 조선미 교수는 “조선시대 초상의 명품으로 꼽히는 강세황 초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강노의 초상 역시 수작에 해당한다”며 “강노의 초상은 아직 표구가 안 돼 있어 초상화 뒷면에 바탕색을 칠해 작품 분위기를 돋우는 조선시대 배채(背彩) 기법을 확인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평가했다.
 
 강노 초상이 미국에 건너간 경위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가톨릭 교회가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던 것을 서배너시에 거주하는 미국의 한 개인이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 8월께 진주 강씨 초상화 전체를 공개하는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