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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속에서부터 고장"···우울증 시달리는 아이돌

중앙일보 2017.12.19 11:34
태연과 함께 부른 '론리'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은 샤이니 종현. [사진 SM엔터테인먼트]

태연과 함께 부른 '론리'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은 샤이니 종현. [사진 SM엔터테인먼트]

18일 샤이니 종현(김종현ㆍ27)이 끝내 세상을 떠나면서 가요계가 침울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19일 오전 디어클라우드 나인이 종현에게 부탁받은 유서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숨겨진 속내가 드러나면서 더욱 충격을 안기고 있다. 
 

미리 써둔 유서서 "의사 참 쉽다" 답답함 토로
"성격탓" "통증일뿐" 전가에 우울증 더 깊어져
'론리' 등 자작곡서 심정 토로했지만 방치돼
"운동선수처럼 심리상담 및 모니터링 필요"

종현이 MBC FM ‘푸른밤종현입니다’ DJ 시절 게스트로 인연을 맺은 나인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얼마 전부터 종현이는 제게 어둡고 깊은 내면의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며 “불안한 생각이 들어 가족들에게도 알리고 그의 마음을 잡도록 애썼는데 결국엔 시간만 지연시킬 뿐 그 마지막을 막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그가 공개한 유서 전문을 보면 그동안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종현의 속내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난 속에서부터 고장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유서에서는 “끊기는 기억을 붙들고 아무리 정신차리라고 소리쳐봐도 답은 없었다”거나 “막히는 숨을 틔어줄 수 없다면 차라리 멈추는게 나아”라고 고백했다.  
 
종현은 지난 5~7월 서울 삼성동 SM타운 코엑스 아티움에서 세 번째 솔로 콘서트 '디 아지트 유리병 편지'를 열었다. 총 20회에 걸쳐 팬들을 만났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종현은 지난 5~7월 서울 삼성동 SM타운 코엑스 아티움에서 세 번째 솔로 콘서트 '디 아지트 유리병 편지'를 열었다. 총 20회에 걸쳐 팬들을 만났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정신과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느낀 답답함과 어려움도 토로했다. 기껏 아픔을 털어놨지만 “도망치고 싶은거라 했다” “성격 탓이란다” “통증은 통증일 뿐이다” 등 세상의 반응에 그는 “조근한 목소리로 내 성격을 탓할때 의사 참 쉽다 생각했다”며 원망스러운 심정을 드러냈다.
 
유서뿐만 아니라 태연과 함께 부른 ‘론리’, 이하이에게 선물한 ‘한숨’ 등 종현의 자작곡에서도 ‘우는 얼굴로 나 힘들다 하면 정말 나아질까’ ‘작은 한숨 내뱉기도 어려운 하루를 보냈단 걸 이제 다른 생각은 마요’ 등 우울증의 징후가 발견되면서 주변의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고생했다고 말해달라” 등 누나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와도 일치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노래뿐 아니라 작사 작곡에도 능했던 종현은 다른 가수에게도 곧잘 곡을 선물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노래뿐 아니라 작사 작곡에도 능했던 종현은 다른 가수에게도 곧잘 곡을 선물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과거 최진실ㆍ이은주·정다빈·박용하 등 유명 배우들이 잇달아 자살을 선택하면서 배우 박진희는 2009년 연세대 사회복지학 석사학위 논문 ‘연기자의 스트레스와 우울 및 자살 생각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기자 중 38.9%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40%는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당시 박진희는 과도한 사생활 노출, 악성 댓글, 불안정한 수입,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을 원인으로 꼽고 사회적 서비스와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제안했지만 별반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아이돌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연기자에 비해 활동 기간이 짧고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는 극성 팬덤으로 인해 사생활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쏟아져나오는 팀들과 함께 경쟁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다. 지난 6월에는 대마초 흡연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빅뱅의 탑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자살시도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2016년 9월 서울에서 시작해 지난 6월 방콕에서 피날레를 장식한 '샤이니 콘서트-샤이니 월드 V'.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16년 9월 서울에서 시작해 지난 6월 방콕에서 피날레를 장식한 '샤이니 콘서트-샤이니 월드 V'. [사진 SM엔터테인먼트]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연예인의 경우 최진실 사망 이후 한 달 동안 자살자가 1000명이 늘어날 정도로 베르테르 효과가 심각하다”며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친밀한 이미지를 갖고 있을뿐더러 저렇게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도 죽는데 나는 뭔가 하는 정서적 동일시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백 교수는 “아이돌 역시 외국 프로 골퍼나 운동선수처럼 정기적인 심리상담을 받거나 기획사 차원에서 정신건강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얼굴이 이미 알려진 상황에서 병원을 찾기 쉽지 않은 만큼 비밀 보장 하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단 얘기다.
 
현재 SM엔터테인먼트는 태연ㆍ강타ㆍNCT 등 소속가수들의 예정된 스케줄을 전면 취소하고 종현의 장례 절차에 집중하고 있다. 10년간 동고동락 샤이니 멤버들을 비롯 동료들도 트라우마 치료가 시급한 상태다. 19일 오후부터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층에 마련된 빈소와 별도로 지하 1층 3호실에 팬들을 위한 조문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민경원ㆍ노진호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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