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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 듯 영상인 듯 조각인 듯

중앙일보 2017.12.19 11:26
오용석 작가의 작품이 바닥에 투사되고 있는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오용석 작가의 작품이 바닥에 투사되고 있는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금민정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금민정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같은 곳에서 다른 시기에 찍은 여러 이미지를 한 장의 사진에 겹쳐 놓은 것 같다. 아니, 사진만은 아니다. 겹쳐진 이미지 중 일부에선 사람이나 사물이 움직인다. 사진과 영상을 콜라주 한 듯한 오용석 작가의 작품 '크로스'(2002)는 광화문·덕수궁·제주도 등을 배경으로 정지된 과거와 움직이는 최근을 하나의 풍경으로 교차해 묘한 향수를 부른다. 옆에 설치된 금민정 작가의 'Abstract Breathing RTO Ⅱ’(2013)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중첩한다. 낡은 모습을 간직한 지금의 옛 서울역, 현재 '문화역 서울 284'로 불리는 건물의 공연장 RTO에서 창밖을 향해 찍은 영상이 마치 정지된 과거와 움직이는 현재를 합성이라도 한 듯 보인다. 그림자의 움직임까지 더해 한층 아슴프레한 분위기다.   
후지필름X 갤러리 '피시보' 전시장 모습. 왼쪽에 보이는 것은 금민정 작가의 작품 '숨쉬는 문'(2014). 사진=이후남 기자

후지필름X 갤러리 '피시보' 전시장 모습. 왼쪽에 보이는 것은 금민정 작가의 작품 '숨쉬는 문'(2014). 사진=이후남 기자

 이같은 작품을 소개하는 서울 청담동 후지필름X 갤러리의 ‘피시보(P-15)’는 여러모로 재미있는 시도다. 사전전문 기업으로 출발, 현재에도 이름에 '필름'이 들어간 회사가 마련한 전시이지만 통상적인 사진전이 아니다. '인터미디어 사진전'을 내걸고 사진인 듯 아닌 듯 장르 융합적 성격이 강한 작품을 보여준다. 기획자 김용민 학예연구사(뮤지엄 SAN)의 표현을 빌면 "사진의 바깥에서 사진을 응시”하는 전시다. 

서울 청담동 후지필름X 갤러리
백남준 육근병 등 6인 작품으로
장르 융합된 인터미디어 사진전

육근병 작가의 '생존은 역사다'(2017)가 설치된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육근병 작가의 '생존은 역사다'(2017)가 설치된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백남준의 작품 '맥루한의 초상'(1978)이 벽에 걸린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백남준의 작품 '맥루한의 초상'(1978)이 벽에 걸린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참여작가는 모두 6명. 특히 전시장 가운데 자리한 백남준, 육근병 작가의 작품은 이번 전시에 담긴 메시지를 각각 미디어 기술의 함의, '본다'는 것의 의미로도 확장한다. 육근병 작가의 '생존은 역사다'(2017)는 고통스러운 현대사를 비롯, 다양한 영상을 묵직한 원통 안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과거 프랑스 리옹 비엔날레에 초대형 크기로 선보였던 작품을 이번 전시에 맞춰 작게 새로 만든 것이다. 작가는 "생물학적인 것이 사라지는 것과 달리 생각은 기억이 되고 기억을 매체화시킨 것이 기록"이라며 '생존'의 의미를 기억의 생존, 기록의 생존으로도 풀이했다. 백남준 작품으로는 ‘미디어는 메세지’라고 설파했던 마샬 맥루한의 초상(1978), 쌓아올린 브라운관을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1989) 등을 선보인다.  
베른트 할프헤르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베른트 할프헤르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이번 전시는 이처럼 공간마다 두 명씩 작가를 짝지웠다. 앞서 전시장 초입에 자리한 오용석, 금민정 작가의 작품이 사진과 영상의 중첩, 시간의 중첩을 떠올리게 한다면 가장 안쪽에 자리한 이소영, 베른트 할프헤르 작가의 작품은 사진 한 컷에 담기는 앵글을 넘어 공간과 시선을 확장하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특히 할프헬르의 '바로크 라이브러리'(2006)는 평면 사진인 동시에 조각처럼 입체적인 성격을 띤다. 독일 쾰른 성당 내부를 360도로 촬영한 사진을 지구본처럼 구형으로 보여준다. 작가에 따르면 지구본 형태는 카메라 앵글의 바깥이 잘려나가는 대신 "전체를 보여주려는”의도에서 나왔다. 요즘이야 디지털 기술을 쓰지만 1990년대 중반 이런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사진을 일일이 자르고 합하는 아날로그 방식, 500여년 전 지구본을 만들던 것과 같은 방법"을 썼단다. '비상계단'(2012) 등 이소영 작가의 작품은 실제 공간을 축소모형으로 만들어 다양하게 사진을 찍고 골라 하나로 합한 것이 특징이다. 함께 전시하는 ‘Same Dilemma’(2013)는 양쪽에서 내려오는 계단이 충돌하는 듯한 가상의 공간을 모형으로만 만든 작품이다.    
이소영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이소영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후지필름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전문 작가들과 협업하는 전시, 신인 발굴 프로그램 등 국내 사진문화 발전을 위한 메세나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겠다고 밝혔다. 80여년의 역사를 지닌 이 기업은 일찌감치 2000년대 중반부터 광학기기·사진이미징·헬스케어·고기능소재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진 코닥과 대비되는 사례로 꼽혀왔다. 이제는 전세계 매출에서 필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1% 정도"(임훈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 부사장)란다. 전시 제목 ‘피시보’는 빛을 내는 물질인 인의 원소기호가 ‘P’, 원자번호가 ‘15’이라는데 착안했다. 내년 2월 11일까지. 무료 관람.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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