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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방중 홀대 뒤 청와대의 ‘정의용 컵라면’ 홍보

중앙일보 2017.12.19 02:08 종합 33면 지면보기
허 진 정치부 기자

허 진 정치부 기자

“무엇보다도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외교의 본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끝난 3박4일간의 중국 국빈 방문을 준비하면서 참모진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지난 14일 오전 중국 측 인사 없이 방문해 ‘혼밥’을 한 베이징의 식당 ‘융허셴장(永和鮮漿)’에 ‘문 대통령 메뉴’가 등장했다고 한다. 중국민의 마음을 얻은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빈이라는 한국의 대통령과 그 수행단이 중국에서 연이어 혼밥을 하고, 대통령 행사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폭행당하는 일을 보고 우리 국민의 마음은 어땠을까. 일일이 열거하기 민망할 정도로 실망스러운 모습이 대륙의 한복판에서 계속됐다. 방중 성과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가 정말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인가’라는 자문을 거듭했다.
 
청와대는 혼밥·홀대 논란이 부담스러웠는지 중국 방문이 끝나자 뒤늦게 온갖 논리로 해명에 나섰다. 귀국길 비행기에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달 7~8일 방한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관련해 “트럼프도 우리와 한 번 밥을 먹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당시 청와대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당초 예정에 없었지만 문 대통령이 평택 미군기지까지 가서 트럼프와 오찬을 했다고 설명했다. 국빈 환영 만찬도 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현철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14일 국빈 만찬이 이뤄진 베이징 인민대회당 금색대청에 대해 “역대 우리 대통령은 한 번도 대접받지 못한 장소”라고 설명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청와대 기자단이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3년 6월 첫 방중 때 금색대청에서 만찬을 했다”고 하자 청와대는 뒤늦게 정정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혼밥이라고 언론이) 프레이밍 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도 했다. 프레이밍 탓할 게 아니라 반론을 펴려면 제대로 된 반론을 폈어야 했다.
 
18일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중국에서 컵라면을 먹는 사진을 공개하면서 “열심히 일한 당신, 식사하세요”라고 적었다. 곧 삭제하긴 했으나 이런 모습을 보면 청와대가 우리 국민이 왜 이번 방중에 화가 났는지 모르거나, 알더라도 외면하고 싶은 것 같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을 설명하며 ‘뚜벅이 외교’라고 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얻으려 하지 마라”는 문 대통령의 말을 전하면서였다. 청와대 참모들도 뚜벅이처럼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 해야 한다. 지나치느니 못 미치는 게 낫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허 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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