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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택일 유감

중앙일보 2017.12.19 02:04 종합 34면 지면보기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난징 대학살 80주년 기념일을 모르고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일정을 잡았다면 무식한 것이고, 알고 잡았다면 미·일 관계를 다 깨고 중국 품으로 들어가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중국학 원로인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13일 난징 80주년 기념식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할 것이란 얘기를 처음 들은 건 11월 하순이었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난징 학살과 무관한 제3국 외교관과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문 대통령의 방중 일정과 겹치겠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에 지나갔다. 주중 대사관 관계자가 “역대 가장 성대한 국빈 방문으로 만들기 위해 12월 중순 4박5일 일정으로 조정 중”이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역대 가장 성대한 방문과, 국가 공식 추모일에 시 주석이 자리를 비운 베이징에 도착하는 건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현충일에 국빈 방문을 하는 격이니 환영 꽃다발인들 변변하게 받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당연히 일정 조정이 이뤄지겠거니 생각했는데 방중은 13~16일로 굳어지고 말았다.
 
알고 보니 13일 도착은 한국이 정한 것이었다. 시 주석 일정상 14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선 하루 일찍 도착하는 것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주중 대사관과 외교부, 청와대는 13일이 난징 추모식과 겹치고 시 주석이 베이징을 비운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나중에 문제가 제기된 건 세부 일정을 짜고 변경하기 어렵게 된 다음이었다.
 
문 대통령은 부랴부랴 노영민 주중 대사를 난징 추모식에 보내고 직접 난징 희생자에 대한 추모 발언을 했다. 정작 시 주석은 입을 꾹 다문 판에 문 대통령이 세 차례나 그런 말을 한 게 과도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중국 측으로부터 감사의 말을 듣기도 했으니 임기응변을 잘한 것일 수도 있다.
 
필자가 묻고 싶은 건 따로 있다. 13일이 난징 80주년이고 시 주석의 참석을 예상하는 건 대단한 정보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보다 대사관 규모도 작은 제3국 외교관이 알고 있던 일을 우리는 왜 놓쳤느냐는 점이다.
 
문 대통령의 방중엔 아쉬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관광지로 변한 베이징의 인사동 격인 류리창 방문은 대다수 중국 매체의 주목을 받지 못해 효과가 반감됐다. 만약 4년 뒤 겨울올림픽 개최지인 베이징 교외의 장자커우(張家口)를 방문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을 그토록 중시한다면서도 장자커우는 사전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홀대’ 논란은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이처럼 치밀하지 못한, 혹은 서두르다 보니 치밀해질 수 없었던 준비 단계에서부터 자초한 일이었다.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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