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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공직 '카톡 보고' 관행···미국에서는 파면감

중앙일보 2017.12.19 01:41 종합 1면 지면보기
암호화폐 대책 유출 그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김모(32) 사무관은 주요 업무 현안을 카카오톡(카톡)으로 상사에게 보고한다. 그러다 김 사무관은 최근 아찔한 경험을 했다. 상사에게 보내려던 공문서를 개인적으로 가입한 단톡방에 실수로 올렸다. 김 사무관은 지인들에게 해당 내용을 퍼뜨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기밀 보고하다 친구 카톡방 유출도
법규 위반이지만 징계 규정도 없어
공무원 “카톡 규제 땐 업무 큰 지장”
정부선 사용하기 편하다고 안 막아
전문가 “공직사회, 보안에 무신경”

 
최근 정부의 암호화폐 대책 문서가 발표 4시간 전에 유출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공무원이 공문서를 카톡으로 보고하거나, 공적 회의를 카톡방에서 하는 ‘카톡 회의·보고’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카톡이 공문서가 새 나가는 통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카톡 활용에 따른 비밀 유출 우려는 계속 제기돼 왔다. 국가 현안이나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내용이 민간이 운영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쉽게 오가서다. 공무원의 실수나 부주의로 주요 국가 정책이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걸 이번 유출 사건이 보여줬다. 만약에 카카오 서버가 해킹된다면 정부의 대외비 자료 등 중요한 정보가 새 나갈 수 있다. 관가에서도 “카톡 업무 관행이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올 것이 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용식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이 15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가상통화 대책회의 보도자료' 사전유출 조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

'민용식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이 15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가상통화 대책회의 보도자료' 사전유출 조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

 
카톡 등을 통해 공문서를 주고받는 건 정부 지침에 위반된다. 정부의 정보보안기본지침은 공무원이 민간 메신저를 통해 업무자료를 유통하는 걸 금지한다. 민용식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도 지난 15일 암호화폐 대책 유출 사건 관련 브리핑에서 “공무원이 업무자료를 카톡으로 전송하는 건 국가사이버안전관리규정(대통령훈령) 위반”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침 및 훈령 위반에 대한 징계 규정이 없다. 공무원의 카톡 사용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사적인 e메일, SNS에서 주요 기밀을 유통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파면 등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장관 재직 당시 중요 기밀을 개인 e메일로 처리한 혐의로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암호화폐 대책의 사전 유출 사건을 계기로 공무원들의 '카톡 업무'가 도마위에 올랐다. 늦은 시간까지 환하게 불켜진 정부세종청사의 모습. [중앙포토]

암호화폐 대책의 사전 유출 사건을 계기로 공무원들의 '카톡 업무'가 도마위에 올랐다. 늦은 시간까지 환하게 불켜진 정부세종청사의 모습. [중앙포토]

 
공무원들도 할 말은 있다. 민철기 기획재정부 감사담당관은 “부처 내부적으로 업무에 카톡을 쓰지 말라고 몇 차례 권고했지만 세종시로 정부 부처가 이전한 후 대면 회의나 보고가 어려워지면서 카톡을 업무에 사용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민 담당관은 “(암호화폐 대책 유출 관련) 국조실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카톡 업무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살펴보겠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과장급 직원은 “업무상 카톡 사용이 지침 위반인 건 알고 있다”며 “하지만 세종시 이전 이후 휴대전화로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부쩍 잦아지다 보니 카톡 사용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공무원용 메신저 ‘바로톡’ 유명무실 … “문서 등 저장 안돼 불편” 38%만 사용
 
이 공무원은 “만약 업무상 카톡 사용이 금지되면 업무 효율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카톡을 대신할 공무원용 모바일 메신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실제 활용이 되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2014년 공무원 전용 메신저 ‘바로톡’을 도입했다. 현재 바로톡을 등록해 활용 중인 공무원은 15만3000명 정도다. 전체 사용 대상자 약 40만 명(교육공무원 제외)의 38%에 불과하다. 카톡보다 불편해서다. 예컨대 바로톡은 카톡과 달리 대화창에서 공유한 문서·사진을 사용자 휴대전화에 저장할 수 없다. 여러 보안기술을 적용해 기능을 제한했다는 게 행안부의 설명이다. 기재부의 한 직원은 “바로톡에 가입했지만 카톡보다 불편해 사용하지 않다 보니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이 그만큼 보안에 대한 공직사회의 낮은 수준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예민한 사안을 카톡으로 공유하는 행위는 공직사회가 얼마나 보안에 무신경한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일상화된 카톡 보고 및 회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 모습. [중앙포토]

공무원의 일상화된 카톡 보고 및 회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 모습. [중앙포토]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직자의 보안 관련 실수는 민간의 보안 유출 사고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공무원이 누설한 비밀이 자칫 전 세계로 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공무원용 모바일 메신저 성능 강화 등 대책이 필요하다”며 “궁극적으로 이번 사건이 공직자의 보안 의식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도록 국조실을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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