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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서 골프, 홀 크기 냉면 그릇만 하고 가끔 북극곰 출현

중앙일보 2017.12.19 01:00 경제 11면 지면보기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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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얼어붙고 눈이 쏟아져도 골프는 한다.
 

공 닦을 수 있고 한 클럽 이동 가능
『정글북』저자 키플링이 룰 만들어

그린란드선 아이스골프 챔피언십
빙하 움직여 매년 코스 전장 달라

미국은 스키 슬로프에서 경기
테니스 공 쓰고 클럽 하나로 샷

엄동설한에도 세계 곳곳에서 스노(snow) 골프 혹은 아이스(ice) 골프가 열린다. 러시아 바이칼 호에서, 북극 인근 그린란드에서, 스위스 알프스 산 속에서, 미국 로키산맥의 스키장에서 골프를 친다.
 
사실 골프의 유력한 기원 중 하나가 농한기인 겨울, 얼음 위에서 하던 공놀이라는 설도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아르트 판 데르 네이르(1603~1677)는 겨울철 얼어붙은 운하에 구멍을 뚫고 클럽으로 공을 치는 모습을 그렸다. 콜벤(kolven), 또는 콜프(kolf)로 불린 이 놀이가 골프의 유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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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눈 골프’의 기틀을 만든 사람은 『정글북』의 작가인 러디야드 키플링(1865~1936)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영국인이지만, 인도에서 태어나 19세기 말 미국에서 살아 골프를 잘 몰랐다. 그랬던 그는 영국에서 찾아온 친구, 추리 소설가 아서 코난 도일로부터 스윙을 배웠고 열혈 골퍼가 됐다. 그는 1889년 눈 쌓인 미국 동북부 버몬트주에서 눈 골프의 규칙을 만들었는데, 겨울 그린을 ‘화이트’로 불렀고, 페어웨이에서는 공을 집어 닦을 수 있게 했다. 또 한 클럽 이내에는 공을 옮기는 것을 허용했다. 볼을 잃어버린 경우, 그 부근에서 1벌타를 받고 친다는 룰도 만들었다. 키플링은 훗날 골프의 고향인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에서 총장도 지냈다.
 
스노 골프는 지구 곳곳에서 열리며, 매년 다양한 세계 대회가 열린다. 북극권(북위 66.33도) 북쪽으로 580㎞에 위치한 세계 최북단 골프 코스인 그린란드 우마네크에서는 세계 아이스 골프 챔피언십이 1999년부터 열리고 있다. 한때는 상금이 100만 달러였다. 그래파이트 샤프트는 혹한으로 인해 깨질 수 있어 사용할 수 없다. 코스는 9홀에 파 35 또는 36이다. 전장이 일정치 않은데, 매년 빙하가 움직여 코스가 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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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스위스의 휴양도시 생모리츠에서는 눈 골프 챔피언십이 열린다. 이 대회에 참가했던 골프 마니아 유호성(사업)씨는 “페어웨이 부분만 눈을 다지고 나머지는 그대로 놔둔다. 쌓인 눈이 깊어 러프에 들어가면 볼을 찾기가 아주 힘들기 때문에, 체력이 매우 중요하다. 홀컵은 냉면 대접만큼 컸다”고 말했다.
 
알래스카 베링해에서는 얼음 클래식이 열리고, 세계 최대 민물 호수인 바이칼 호에서는 3월 마지막 주 바이칼 프라이즈 오픈 아이스 골프 대회가 열린다. 봄이라 날씨가 영상으로 올라가기도 하지만 워낙 두껍게 얼어붙어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 이 밖에도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캐나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에서 규모는 작지만, 유사 대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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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스노골프가 독특하게 발전했다. 스키 시즌이 끝날 무렵, 레이크 타호 등 여러 리조트에서 스노 골프 대회를 연다. 눈이 남은 슬로프 꼭대기에서 출발하고, 슬로프 중간 평평한 곳에 그린(혹은 화이트)을 만든다. 참가자들은 스키나 스노보드를 신고 슬로프를 내려오며 경기한다. 공은 대개 테니스공을 쓴다. 캐디백을 가지고 다니기 어려워 클럽을 하나만 쓰는 게 일반적이다.  
 
굳이 대회가 아니라도 추운 겨울 조용히 스노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스노 골프의 가장 큰 적은 태양빛(자외선)이다. 눈이나 얼음이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선글라스와 선크림이 필수다. 북극권 골프 대회의 경우 간혹 북극곰 등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스노(아이스) 골프에는 봄, 여름, 가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고요와 정적, 그리고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맛볼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경험자들은 전한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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