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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방향 안 보이는 ‘정부 산업정책방향’ … 장밋빛 전망만 가득

중앙일보 2017.12.19 01:00 경제 2면 지면보기
장원석 경제부 기자

장원석 경제부 기자

“2022년까지 일자리 30만 개를 창출한다는데 근거가 뭔가?”
 

‘규제 풀고 R&D 활성화’ 재탕 대책
일자리 30만개 창출 근거도 없어
혁신 이끌려면 정부부터 달라져야

“에너지 신산업 분야에서 절반, 5대 신산업 프로젝트에서 절반가량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근거가 무엇인가?”
 
“에너지 신산업 말고는 산업연구원을 통해 추산했다. 5대 신산업은 성장에 따라 여러 서비스업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아직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자리가 만들어질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서비스가 생기고, 없어질지 모르는데 30만 개는 어떻게 나왔나?”
 
“거기까지는…”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국장과 기자들이 나눈 대화다. 이날 산업부가 내놓은 ‘새 정부 산업정책방향’에 관해 브리핑하는 자리였다. 보통 정부가 중요한 정책을 발표하면 상세한 내용을 설명하는 브리핑이 뒤따른다. 이 자리에서 기자들은 자료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질문하거나, 정확한 사실관계를 따진다. 그런데 이날은 좀 달랐다. 기자들의 질문은 대부분은 이랬다. ‘이전 신산업 육성책과 뭐가 달라요?’ ‘이전 규제 완화 대책과 뭐가 달라요?’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과 어떻게 다르죠?’
 
그럴 만했다. 별다른 게 없는 것 같은데 ‘정책 방향’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여 내놨으니 ‘혹시나’ 하고 물어본 것이다. ‘역시나’였다. 핵심이라는 ‘5대 신산업 선도 프로젝트’부터 부실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동력을 키우기 위해 전기차·자율주행 차, 사물인터넷(IoT) 가전, 바이오·헬스,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에너지 신산업을 제외하면 전 정부의 창조경제 활성화 대책 때 전부 언급된 내용이다. 지원 방식도 똑같다.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인재를 육성하고, 규제를 과감히 풀어 사업화를 돕는다는 내용이다.
 
그나마 중견기업을 새로운 성장 주체로 육성한다는 게 눈길을 끌었다. 매출 1조원 이상인 월드 챔프 중견기업을 현재 34개에서 2022년까지 80개로 늘린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역시 숫자만 좀 달라졌을 뿐 전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였던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과 다르지 않다. 산업부는 왜 80개냐는 질문에도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날 보도자료에 산업부는 ‘함께 하는 산업혁신, 다 함께 혁신성장’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산업은 주력산업과 신산업이 함께, 기업은 대·중견·중소기업이 함께, 지역은 수도권과 비(非)수도권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3개 분야에서 혁신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모두 다 잘 하겠다는 것이다. 애초에 방향이랄 게 없었다.
 
이번 산업정책 방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8개월 만에 나왔다. 그간 탈(脫)원전 등 에너지 전환에만 힘을 쏟다 보니 산업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산업부가 아니라 에너지부’라는 말을 들었던 이유다. 산업부가 각종 육성책과 연구개발 예산을 틀어쥐고 호령하던 건 이미 옛말이다. 이번 정부에서도 혁신성장은 기재부가, 제4차 산업혁명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사실상 산업부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부처가 내놓는 정책 방향은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어떻게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지 답을 찾는 작업이다. 또한 내용이 있든 없든, 판단이 옳든 그르든 시장 참여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무게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정부가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것 자체가 ‘올드하다’는 지적은 차치하자. 다만 민간을 이끌겠다고 나서려면 적어도 민간보다 앞서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장원석 경제부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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