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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젊은 창업가 아이디어 더한 제3세계 원조사업 빛 발하다

중앙일보 2017.12.19 00:02 10면 지면보기
KOICA의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 정부개발원조(ODA) 사업에 제3세계를 돕는 젊은 창업가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빛을 발하고 있다. 전력난에 시달리던 인도네시아에선 전기 공급이 늘고, 문맹률이 높은 탄자니아 아이들이 태블릿PC로 공부를 한다. 정부와 사회적 기업을 잇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CTS·Creative Technology Solution)을 통해서다. 
탄자니아 아이들이 에 누마의 교육 앱 ‘킷킷스 쿨’을 사용해 공부하고 있다.

탄자니아 아이들이 에 누마의 교육 앱 ‘킷킷스 쿨’을 사용해 공부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과 정부 연결
인도네시아 전력난 완화
탄자니아 문맹 퇴치 지원

인도네시아의 전력 보급률은 2015년 기준 86.39%다. 국토가 넓고 섬이 많다 보니 전기 보급에 한계가 있다. 이웃인 태국 99.3%, 말레이시아 99%, 베트남 98% 등에 비해 낮은 편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도서·산간 지역 주민들은 만성적 전력난에 시달려 왔다. 그런데 최근 이들 지역에 전기 불빛이 늘기 시작했다. 한국 소셜 벤처 루미르의 활약 덕이다. 박제환 루미르 대표는 “우리가 제품을 공급 중인 마을 중 한 곳은 아예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곳”이라며 “이들이 간편한 방법으로 빛을 밝히고 지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가 주목하는 기업 루미르
제윤 관계자가 모로코에서 스마트 약 상자 사용법을 설명하 고 있다.

제윤 관계자가 모로코에서 스마트 약 상자 사용법을 설명하 고 있다.

루미르가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한 시기는 2015년이다. 중앙대 전기전자공학부에 재학 중이던 박 대표는 “제3세계의 열악한 환경을 알게 되면서 이를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며 “열전도 방식을 활용한 간단한 기술로도 이들을 도울 수 있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기 없이 사는 저개발국 인구는 13억 명에 이른다. 이들에게 빛을 전하는 것이 박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다.

 
루미르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기업이다. 2017년 글로벌 미디어 포브스의 ‘30세 이하 30인 아시아(Forbes 30 Under 30 Asia)’에 선정됐고, 2016년 5월에는 일본의 최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마쿠아케에서 소개받은 지 불과 5일 만에 150만 엔이 넘는 펀딩 모금액을 달성했다.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KOICA는 2016년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CTS)’ 2기 팀으로 루미르를 선정해 총 3억원을 지원하며 제품 공급을 도왔다.
 
청년 창업은 지난 수년간 정부의 화두였다. 다양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등장했고 아이디어와 열정을 가진 창업자들도 늘었다.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창업을 시작한 이들도 나타났다. 기업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열정을 가진 사회적 기업 창업가다. 그중에서도 한 번 더 튀는 이들이 있다. 제3세계의 소외계층을 돕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사업 전선에 뛰어든 이들이다.
 
닷이 케냐에 공급 중인 스마트 기기 로 점자를 읽고 있는 현 지인들.

닷이 케냐에 공급 중인 스마트 기기 로 점자를 읽고 있는 현 지인들.

톡톡 튀는 젊은 창업가에 주목한 기관이 KOICA다. 한국은 꾸준히 정부개발원조를 늘려왔다. 하지만 풀기 어려운 문제가 여전히 많았다. 해결 방법을 찾던 KOICA는 아이디어와 열정이 넘치는 젊은 창업가 지원에 나섰다. KOICA 혁신사업실의 이남순 실장은 “열정이 넘치는 젊은 기업가들 덕에 정부 원조사업에 깊이와 다양성이 더해지고 있다”며 “이들의 아이디어를 살려 제3세계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사업을 꾸준히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12월 14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지하 1층에선 제3세계에서 활동 중인 사회적 기업 21곳의 관계자가 모였다. KOICA에서 진행하는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인 CTS에 참여하는 기업들이다. CTS는 청년 혁신가들의 창의적 혁신 아이디어 및 기술을 ODA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의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나온 프로그램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찾아 개발협력 사업의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청년 스타트업, 예비창업자, 국제보건 종사자 등의 ODA 사업 참여를 유도하는 장점이 있다. 2015년 신설돼 2015년 10개 사업, 2016년 6개 사업, 2017년에는 17개 기업을 지원했다. 2016년 7월부터는 게이츠재단의 그랜드챌린지 공식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KOICA는 CTS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스타트업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고 있다.
 

개도국을 무대로 성공 꿈꿔
이날 헤이그라운드에선 루미르 외에도 다양한 기업들이 모였다. 닷은 저개발국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가형 점자 모듈과 교육 콘텐트를 개발하고 있다. 김주윤 닷 대표는 점자 시계를 만들어 아프리카에 공급하고 있다. 아프리카에만 1160만 명의 시각장애인이 있다. 김 대표는 케냐를 중심으로 저가형 스마트 점자 시계를 제공해 생업에 도움을 주길 희망한다.

루미르는 폐 식용유로 전기를 만들어 빛을 밝히는 친환경 전등을 인도네시아에 보급하고 있다.

루미르는 폐 식용유로 전기를 만들어 빛을 밝히는 친환경 전등을 인도네시아에 보급하고 있다.

 
제윤은 모로코에서 결핵퇴치 활동을 하고 있다. 결핵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 치료다.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완치 가능하다. 하지만 모로코는 결핵 재발률이 높은 나라다. 복용률이 떨어지면 재발하고 치료가 어려워진다. 제윤이 준비한 스마트 약상자는 결핵 환자들에게 치료약 복용 시기를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2014년 처음 진출해 활동하고 있는데 현지에서 반응이 뜨겁다. 일반적인 치료율이 85%였는데, 제윤의 스마트 약상자를 사용한 이들은 97%에 달했다. 깊은 인상을 받은 모로코 탕헤르 주정부는 올해 2억원을 지원하고 나섰다. ODA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 기업이 원조 대상 국가에서 지원을 받은 첫 번째 사례다.
 
에누마도 인상적인 기업이다. 탄자니아에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언어와 수학 교육과정을 담은 태블릿 기반의 앱 ‘킷킷스쿨’을 제공 중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는 글을 읽지 못하는 2억5000만 명의 아이 중 1억9000만 명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데도 문맹률이 높은 이유는 언어를 말로 배우다 보니 글과 소리를 연결하는 능력이 개발되지 않아서다. 에누마 직원들은 최근 수시로 탄자니아를 방문해 현지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수인 에누마 대표는 “지난해 KOICA의 지원으로 굿네이버스와 손잡고 이 솔루션을 탄자니아 아이들에게 테스트한 결과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아프리카 아이들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엘살바도르에서 점자책을 보급하는 넥스트이노베이션, 라오스에서 저가형 고도 정수 처리 장치를 개발 중인 LS 테크놀로지, 베트남에서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스마트 주택 설계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스페이스워크, 미얀마에서 휴대용 AIDS 검사기를 개발한 글로리바이오텍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투자기관인 MYSC의 김정태 대표는 “자생력을 갖춰 원조 없이도 지속 성장 가능한 모델들이 늘고 있다”며 “한국뿐 아니라 제3세계에서 성장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들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희망 동력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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