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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보다 더 중요한 정상회담 성과가 있다

중앙일보 2017.12.18 13:48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有得必有失). 중국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세상사를 균형과 조화의 눈으로 보려는 그들의 생활 철학이다. 외교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간 정상 회담에도 득실이 있다는 얘기다.  
 
그럼 한국은 무엇을 얻었나. 국내외 언론은 하나같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 갈등 봉합과 양국 관계의 복원이라고 분석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직 미덥지는 않지만, 중국이 단계적으로 한중 관계 복원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게 하나 있다. 대통령의 중국 4차 산업혁명 현장 경험이다.  
 
문 대통령 일행은 14일 베이징의 한 식당에 들러 간단한 아침 식사를 했다. 친서민 공공 외교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음식값은 모두 68위안(약 1만 1200원). 그리고 결제는 대사관 직원의 도움으로 휴대 전화로 이뤄졌다. 대통령은 휴대 전화로 식탁 위 바코드를 찍으면서 결제가 끝나는 모바일 시스템에 놀랐을 것이다. 필자는 그 ‘놀란 반응’에 한국의 미래가 있다고 본다. 대통령은 모바일 결제를 통해 중국 4차 산업 혁명의 현장을 본 것이고 귀국 후 관련 정책의 혁신이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IT(정보통신 기술)만은 아직도 한국이 중국에 앞선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 스마트 폰으로 결제했어요." [사진 중앙포토]

"아침 식사 스마트 폰으로 결제했어요." [사진 중앙포토]

지난해 중국 모바일 결제 규모는 60조 위안(약 1경원)으로 미국의 50배에 이른다. 알리바바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지난 11월 11일 광군제(光棍節·솔로들의 날) 행사에서 하루 만에 1682억 위안(약 28조 원)어치의 판매고를 올렸을 정도다. 중국은 이미 노점상은 물론 거지까지 모바일 결제가 일반화된 사회다. 이런 천문학적 시장이 형성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위조화폐가 많고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은 것도 신용 카드 사회를 넘어 모바일로 가는 추동력인 것 맞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4차 산업 혁명에서는 선진국에 질 수 없다는 중국 정부의 결기와 혁신이다. 여기에 비즈니스 생태계 변화에 민감한 중국 소비자들의 상업적 DNA까지 한몫했다.  
 
모바일 결제만이 아니다. 인공지능(AI)은 이미 미국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성장했다. 빅데이터 역시 세계 1, 2위를 다툰다. 최근 시진핑 주석이 정치국 회의에서 ‘빅데이터 중국’을 선언했을 정도로 정부의 의지도 확고하다. 문 대통령은 그날 아침 식사를 통해 이런 중국의 용틀임을 봤을 것이다. 만약 못 봤다면 그건 국가적 재앙이다. 사드 문제야 지나가는 소나기 같아서 언제든 반복될 것이다. 중국은 이미 사드 보복을 통해 그 점을 분명하게 한국에 알리지 않았던가. 한데 산업 혁명에서 뒤처지면 한 국가의 100년이 암울해진다. 한국의 근대사가 이미 이를 증명하지 않았나.
중국은 모바일 결제가 일반화 돼 있다 [사진 신화망]

중국은 모바일 결제가 일반화 돼 있다 [사진 신화망]

대통령은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고 했다. 잘한 일이다. 한데 일대일로 참여가 경제 협력으로만 끝나서는 곤란하다. 북한 개방과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행동이 수반돼야 한다. 당장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동북 3성과 한반도를 아우르는 제7의 경제 회랑 건설이다. 이 회랑 건설에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북한이라는 ‘육지 섬’의 개방이다. 중국과 함께 북한을 일대일로라는 협력과 상생의 플랫폼으로 유도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추진하면서 주변국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몽골~러시아 △신 유라시아 대륙 교량 △중국~중앙아시아~서아시아 △중국~인도차이나반도 △중국~파키스탄 △방글라데시~중국~인도~미얀마(BCIM) 등이 경제 회랑을 추진 중이다. 경제회랑은 주요 경제권을 철도ㆍ도로 등 물류망을 중심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사진 바이두 백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사진 바이두 백과]

양국 정상 회담 이후 경제적인 성과도 부인하기 어렵다. 필자는 문 대통령 중국 방문 기간 중 중국의 대형 투자 회사 간부로부터 이런 위챗 메시지를 받았다.  
 
“장쑤 성, 산둥 성, 광둥 성 정부가 중한 산업원(中韓産業園) 건설을 위해 관련 조직을 강화하고 상급 기관에 비준을 요청하기로 했다. 중한 산업원 건설은 각 도시의 토지이용계획 및 전체 개발 계획과 부합한다.” 메시지에 이어 첨부 자료가 날아왔다. 정상 회담 다음 날인 15일 중국 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장쑤 성 옌청(鹽城) 중한 산업원, 산둥 성 옌타이(煙臺) 중한 산업원, 광둥 성 후이저우(惠州) 중한 산업원 건설에 대한 국무원(중국의 행정부)의 비준 문건이었다. 비준 날짜는 양국 정상 회담 3일 전인 12월 11일. 중국 정부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중 관계 복원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한중 양국 기업이 가장 바라는 성과일 것이다.  
 
경제·통상·문화·인적교류 중심의 양국 간 협력을 정치·외교·안보·정당 간 협력 분야로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 역시 사드 이후 전방위적인 한중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한 기반 다지기로 평가할 만하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15일 리커창 총리와 회동을 하고 양국 간 경제·무역 부처 간 채널 재가동에 전격 합의했다. 리 총리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큰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점도 소득이라 할 수 있겠다.
악수하는 한중 정상 [사진 앙광망]

악수하는 한중 정상 [사진 앙광망]

성과는 한반도 문제에서도 있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4대 원칙, 즉 ▲ 한반도에서 전쟁 절대 불가 ▲ 한반도 비핵화 원칙 확고한 견지 ▲ 대화·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 남북 관계 개선은 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에 대한 합의다. 물론 이는 평화와 안정, 비핵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중국의 오랜 대한반도 외교 3원칙에 대한 한국 측의 추인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 전쟁을 막기 위해 중국의 대외 정책에 대한 공감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실리, 실용 외교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합의가 미국의 대북한 군사 옵션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는 없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한중 합의가 대북 군사적 옵션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미국과 척을 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길 수 있어서다.  
 
문 대통령이 베이징에 도착한 13일은 난징 대학살 80주년 추모일이었다. 한중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중국 측의 생각이 읽히는 대목이다. 정상회담과 난징 대학살을 묶어 일본 제국주의 만행에 대한 한국의 공감을 유도하려는 전술이 보인다. 한국은 노영민 주중 한국 대사를 현장에 보내 중국 측의 공감을 샀다. 이후 중국 언론이 한국의 이런 외교적 노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긍정적 평가를 했는데 사드 이후 한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심리적 거부감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선 한국의 대일 접근을 경계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미일 외교적, 군사적 동맹을 차단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었다.
문재인 대통령 방중 기사를 1면에 보도한 환구시보 [사진 환구시보]

문재인 대통령 방중 기사를 1면에 보도한 환구시보 [사진 환구시보]

사드 문제에  대해 시진핑 주석은 “한국이 적절히 처리하기를 희망한다”는 원칙적인 선에서 언급했다. 물론 시 주석의 말을 액면대로 해석해 수위를 낮췄다고 해석하는 건 무리다. 중국은 이미 사드 철수라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수차례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으로부터 ‘3불’이라는 횡재까지 했다. ‘3불’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 제2, 제3의 사드 보복을 들고나올 게 뻔하다.  
‘3불’은 한국은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계에 편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한국은 입장 표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외교적 약속’’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향후 한국의 안보 외교에 중국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 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성과가 있었으면 잃은 것도 있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이번 방문으로 국격이 훼손됐다는 비판을 무시해선 안 된다. 심지어 중국에 굴복했고 미국과 일본, 그리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었다는 극단적 비판도 나온다. 사실 국빈 방문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초라한 대접을 받은 건 맞다. 대통령 중국 도착 당일 시진핑 주석은 난징 대학살 추도식 참석차 베이징을 떠났고 양국 공동 성명도, 공동 기자회견도 없었다. 외국 국가 원수의 국빈 방문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여기에 중국 경호원들의 한국 사진 기자 폭행에 이르면 중국이 과연 한국을 나라로 생각하는지 의심스럽다. 조공 외교 시절에도 없던 야만이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이런 불상사는 정상 회담을 너무 서두른 데에 기인한다. 사드와 북핵 문제 등으로 한국의 경제적, 외교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도 너무 서둘렀다. 사실 중국도 사드 보복에 따른 후유증이 커 내부에서도 한중 관계 회복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던 터였다. 한국이 10을 피해 보면 중국은 8을 보고 있다는 말이 중국 언론에 보도됐을 정도다. 따라서 좀 더 시간을 갖고 정상회담을 추진했더라면 보다 품격 있는 회담 과정과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국가의 품격보다는 정권의 실적에 조급해하는 한국 정치 문화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베이징= 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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