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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매혹당한 프랑스 미술

중앙일보 2017.12.18 12:56
니콜라 푸생의 '십자가에서 내림'. 1628~1629, 캔버스에 유채.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니콜라 푸생의 '십자가에서 내림'. 1628~1629, 캔버스에 유채.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18~19세기 러시아에선 프랑스 문화에 동경이 일었다. 러시아 왕실과 귀족은 프랑스 미술품을 수입했고, 프랑스 취향을 따라 했다. 그 시작은 정확히 300년 전으로 올라간다. 러시아 근대화를 추진한 러시아 표트르 1세(1672~1725)는 1717년 약 두 달간 파리에 머무르며 유럽의 문물에 푹 빠졌다. 베르사유 궁전을 두 번 방문했고, 특히 프랑스 루이 14세의 별궁이었던 마를리궁을 좋아했다. 이후 프랑스의 많은 건축가와 예술가, 과학자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고, 러시아와 프랑스의 문화교류가 본격화했다.
클로드 로랭의 '이탈리아 풍경'. 1648. 캔버스에 유채.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클로드 로랭의 '이탈리아 풍경'. 1648. 캔버스에 유채.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품 89점 특별전
고전주의부터 인상주의까지 명품 망라
푸생부터 루소까지 서양미술사 돌아봐

 양국의 문화교류는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1729~1796) 때 더욱 활발해졌다. 1762년 즉위한 예카테니라 2세는 그가 거주하던 ‘겨울 궁전’ 가까이에 ‘은자(隱者)의 집(HERMITAGE)’으로 별린 별궁을 만들고, 그간 수집해온 예술품을 보관했다. 현재 소장품 300만 점을 자랑하는 예르미타시박물관의 모체가 됐다.
프랑수아 부셰의 '다리 건너기'. 캔버스에 유채. 1730년대 말.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프랑수아 부셰의 '다리 건너기'. 캔버스에 유채. 1730년대 말.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계몽군주’를 자처했던 예카테니라 2세는 유럽 미술품을 폭넓게 사들였다. 예술에 대한 심미안보다 궁전 자체를 당대 ‘지식의 보고’로 꾸미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 중심에 프랑스 미술이 있다. 특히 프랑스 철학자 디드로 등과 사귀며 17~18세기 프랑스 회화를 대거 구입했다. 현재 예르미타시박물관에 소장된 회화 1만1000여 점 가운데 프랑스 작품이 1100여 점에 이른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을 제외하고 예르미타시박물관이 세계에게 가장 많은 프랑스 미술을 소장한 박물관이 된 배경이다.
 
위베르 로베르의 '콜로세움'. 캔버스에 유채. 1761~1763.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위베르 로베르의 '콜로세움'. 캔버스에 유채. 1761~1763.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예르미타시박물관에 있는 프랑스 회화·조각·소묘 등 미술품 89점이 한국 나들이를 한다. 19일부터 내년 4월 15일까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예르미타시박물관전, 겨울 궁전에서 온 프랑스 미술’ 특별전이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프랑스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다. 고전주의, 로코코시대, 낭만주의를 거쳐 인상주의와 20세기 미술까지 서양미술사의 큰 흐름을 돌아보는 자리다.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의 '니콜라이 구리예프 백작의 초상'. 1821. 캔버스에 유채.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의 '니콜라이 구리예프 백작의 초상'. 1821. 캔버스에 유채.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니콜라 푸생(1594~1665)의 ‘십자가에서 내림’이 있다. 예카테니라 2세가 처음으로 구입한 프랑스 회화로,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땅으로 내려온 예수를 성모 마리아 등이 부축하는 모습을 담았다. 국립중앙박물관 김승익 학예사는 “색채, 구도, 안정감 등 프랑스 고전주의의 전형적 화풍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폴 들라로슈의 '티베르 강에 빠져 죽은 기독교 순교자'. 1853. 캔버스에 유채.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폴 들라로슈의 '티베르 강에 빠져 죽은 기독교 순교자'. 1853. 캔버스에 유채.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클로드 로랭(1602~1682)의 ‘엠마우스로 가는 길의 풍경’도 명품이다. 성경 누가 복음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부활한 날에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우스 마을로 향하는 도중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장면이다. 당대 이상향으로 삼았던 자연을 배경으로 삼았고, 고대 로마의 폐허 잔해로 공간을 구성했다. 정적이고 고요한 풍경이 화면 전반에 흐른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죽은 말이 있는 풍경'. 캔버스에 유채. 1730년대 말.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귀스타브 쿠르베의 '죽은 말이 있는 풍경'. 캔버스에 유채. 1730년대 말.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고대 로마 유적은 18세기 로코코 시대 프랑스 미술의 주요 소재로 사용됐다. 당시 유럽 사회에선 로마 유적을 답사하는 ‘그랜드 투어’가 인기를 끌었다. 폼페이 발굴 등 옛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지식이 쌓이면서 고대 문명의 폐허를 다룬 풍경화도 주목 받았다. 위베르 로베르(1733~1808)의 ‘콜로세움’이 이 같은 화풍을 대변한다. 웅장한 콜로세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상상의 풍경과 인물을 배치하며 건축물 자체의 숭고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장바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소녀'. 캔버스에 유채. 1865~1870/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장바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소녀'. 캔버스에 유채. 1865~1870/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19세기 회화를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의 ‘니콜라이 구리예프 백작의 초상’을 들 수 있다. 가상의 자연을 배경으로 러시아 귀족의 오만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피다미드형 안정적 구도, 매끄러운 표면 처리, 정확한 윤곽선 등 신고전주의 표현기법을 엿볼 수 있다.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의 건초더미'. 1886. 캔버스에 유채.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의 건초더미'. 1886. 캔버스에 유채.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사실주의 화풍을 개척한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의 ‘죽은 말이 있는 풍경’도 인상적이다. 울창한 숲 속 길에 죽은 하얀 말이 누워 있는 풍경이다. 대상을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우리가 보기에 불편한 모습도 그대로 낚아채는 쿠르베의 개성이 살아 있다.
 
앙리 루소의 '방브 수문 좌측의 방어 시설 경관'. 1909. 캔버스에 유채.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앙리 루소의 '방브 수문 좌측의 방어 시설 경관'. 1909. 캔버스에 유채.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전시 마지막 코너 ‘인상주의와 그 이후’에선 클로드 모네, 폴 세잔, 모리스 드니, 앙리 마티스, 앙리 루소 등 인상주의 이후 근대 거장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 기간 중 매주 수요일 오후 7시에는 ‘큐레이터와의 대화’가 열린다.  
 
예르미타시박물관(겨울궁전) 내부에 있는 '대사의 계단' 모습.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예르미타시박물관(겨울궁전) 내부에 있는 '대사의 계단' 모습.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예르미타시박물관 외부 정경,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예르미타시박물관 외부 정경, [사진 예르미타시박물관]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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