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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휴식처 청계천, 왠지 불편한 건 '소리풍경' 안 좋은 탓

중앙선데이 2017.12.17 02:02 562호 26면 지면보기
[CRITICISM] 소리풍경
 도심 속 고궁 안은 고요하다. 돌담 바깥과 완전히 다른 청각적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덕수궁 석어당 사운드 채집 장면. [사진 서울소리보관프로젝트]

도심 속 고궁 안은 고요하다. 돌담 바깥과 완전히 다른 청각적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덕수궁 석어당 사운드 채집 장면. [사진 서울소리보관프로젝트]

‘소리풍경’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가. 아직은 좀 생소한 느낌이 드는 낱말인데, 그도 그럴 것이 이 말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소리풍경, 영어로는 ‘사운드스케이프 (soundscape)’라는 말을 처음 본격적으로 제안한 이는 머레이 쉐이퍼(Murray Schafer)라는 캐나다의 작곡가이자 사상가, 사운드 아티스트다. ‘랜드스케이프 (landscape)’가 보이는 풍경이라면 ‘사운드스케이프’는 들리는 풍경이다. 쉐이퍼는 1960년대 말 캐나다 뱅쿠버의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공항이 도심에 가까워 늘 소음공해에 시달리는 뱅쿠버의 소리환경을 개선하고자 ‘뱅쿠버 사운드스케이프’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엔에서 지원을 받은 ‘세계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 (World Soundscape Project)’를 꾸리면서 조화로운 소리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한 그의 노력을 본격화시켰다.
 

청계천 녹음하면 차·모터 소리뿐
보이는 건 공원, 듣기엔 그냥 도심

세계는 들리는 것이기도 해
새 방식으로 감각하면 결 넓어져
일상 담는 사운드 아티스트 주목

‘소리풍경’이라는 말은 1960년대 말 정도부터 쓰이기 시작하여 아직 50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젊은 낱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가지는 울림은 점점 더 커가고 있는 느낌이다. 필자는 6년 전인 2011년에 구 서울역을 고쳐서 만든 ‘문화역 서울 284’를 개관하면서 열린 전시에 참여하면서부터 ‘소리보관’ 작업을 본격적으로 알리려고 노력했다. 나는 ‘서울 소리보관 프로젝트’를 만들어 주변의 소리자료들을 보관하고 그 소리들을 통해 우리 일상을 다시 바라보는 일을 하고 있던 터라 그 연장선상에서 ‘서울역 소리보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자 했다.
 
 
‘서소문에서 녹음한 문산행 열차소리’
그 과정에서, 당시 서울역 관계자에게 서울역에서 보관하고 있는 소리 자료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충격적인 답변을 들었다.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수만 장의 사진자료와 여러 동영상 자료들이 있었으나 서울역의 소리를 녹음한 소리 자료가 하나도 없다니! 동영상에 들어 있는 소리들은 사운드 효과를 더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덧붙여진 것들일 수가 있어서 정직성이 떨어졌다. 우리는 서울역 주변을 샅샅이 다니면서 제대로 된 녹음기와 마이크로 서울역의 소리풍경을 기록했다. 그 결과 41개의 서울역을 대표할 만한 소리들을 최종적으로 마스터링하여 서울역 측에 전달했다. 사실은 지금도 그 자료를 서울역에서 잘 보관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너무 바쁘고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워낙 일상적인 것들의 아카이빙, 다시 말해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음미하면서 그 안에서 조용히 뭔가를 발견해내려는 노력 자체가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되는 문화가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다. 그런 면에서도 ‘소리풍경’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그 소리들을 들어보니 2011년 여름의 서울역에 내가 다시 와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파일명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서소문에서 녹음한 문산행 열차소리’ ‘서울역 근처 금형 프레스 공장(숙대입구)’ ‘염천교 위에서 녹음한 KTX 지나가는 소리’ 등등. 이 소리들은 2011년 여름 서울역 주변을 채우고 있던 공기들의 됨됨이를 기록하고 있다. 소리는 사물로 존재하지 않는다. 소리는 있으면서도 없다. 그저 공기의 결, 공기의 됨됨이 아니던가. 우리가 단 한 순간도 쉼 없이 들이마시고 내뱉는 그 공기의 결이 바로 소리니까, 우리는 소리를 호흡하는 셈이다. 2011년 여름의 소리를 들으며, 후텁지근했던 그 여름의 도심 공기가 다시금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런 면에서 소리풍경은 보이는 풍경보다 더 직접적이다. 직접 몸으로 다가온다. 가상적인 것들이 주인이 되는 시대에 소리는 보다 육체적이고 생생한 체험과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감각적 요소로 재부각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들이 예술가들에게도 점차 공유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젊은 사운드 아티스트 윤수희의 전시도 이런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윤수희는 서울 신림동의 작은 미술관 산수문화에서 ‘소리도축자’라는 전시를 선보였는데, 그 작업 노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리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며 그것은 시간 위에 머문다. 이는 모든 살아있는 것의 성질이다. 소리가, 도처에, 살아있다. 소리를 채집(녹음)하는 것은 살아있는 소리를 포획하는 것과 같다.”(출처: 윤수희 개인전 ‘소리도축자 Sonic-slaughterman’)
 
사운드 아티스트 권병준은 지난 11월 7일부터 12월 3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교동도 소리풍경’이라는 전시를 올렸다. 권병준은 강화도 끝자락에 있는 섬인 교동도의 소리풍경을 이른바 ‘앰비소닉’ 시스템을 통해 입체음향으로 들려주었다. 교동도는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고요한 일상성과 정치적 긴장감이 교차하는 특별한 소리풍경을 머금고 있다.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이 섬의 일상성 자체가 소리풍경을 아카이빙한 그의 작업을 통해 더 미시적이고 실감나게 드러난다.
 
또한 현재 서울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서는 ‘혁명은 TV에 방송되지 않는다: 사운드 이펙트 서울 2017’이라는 소리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국내외의 여러 이름난 사운드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하여 만든 이 합동전시는 소리를 재료로 한 표현법이 ‘음악’의 개념을 확장시킬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새로운 예술창작의 지평을 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소리풍경’이라는 말의 울림이 왜 더 커지는 걸 걸까? 그것은 이 개념이 단순한 청각적 호소를 넘어 세계를 지각하는 대안적인 태도를 촉구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보이는 것이기도 하고, 들리는 것이기도 하며 냄새 맡아지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는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감각할수록 점점 더 결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넓어진다.
 
소리풍경을 기록하는 일을 ‘소리의 문서화’라고 생각해 보자. 소리의 문서화는 소리의 일상적 고고학을 가능하게 해준다. 고고학(Archeology)은 오래된 물적 흔적들을 통하여 인류의 역사와 행동의 구조를 추적하는 학문이지만 소리보관은 일상적 층위에서 당대의 고고학적 흔적들을 발견해내고 그것들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읽는 새로운 지적활동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가짜 문화창조 판치는 시대라 더 소중
개발과 침략으로 지구를 훼손시키고 남의 땅을 빼앗아 영토를 확장하던 시대는 끝났다. 그렇게 해봐야 제살깎기인 것을 사람들은 알았다. ‘지속가능’이라는 말은 삶을 다른 방식으로 풍요롭게 만들어야만 한다는 절박함을 숨기고 있다. 우리의 일상을 보다 깊이 있게, 다양한 방식으로 지각하고 그 안에서 더 큰 넓이들을 발견해야만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가 없는 헛것을 만들어 놓고 결과보고서나 작성해서 나랏돈 타먹으면 그만인 가짜 문화창조 사업들이 판을 치는 시대에 ‘소리풍경’이라는 말은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진다.
 
예를 들어 청계천을 한 번 가보자. 복개되었던 개울이 다시 드러나니 참 보기가 좋다. 많은 사람들의 도심속 휴식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딘지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청계천 공원의 소리풍경을 조사해 보면 금방 드러난다. 보이는 것들은 신경 써서 만져놨지만 청계천의 소리풍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녹음을 해보면 자동차 소리나 모터 돌아가는 소리 같은 것만 들린다. 보이는 풍경으로서는 공원이지만 들리는 풍경은 그냥 시끄러운 도심일 뿐이다. 이런 점을 이제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머레이 쉐이퍼는 자신의 여러 저작들을 모은 주저라 할 『사운드스케이프; 세계의 조율』(1978)에서 “사운드스케이프의 리듬이 흐트러지거나 불규칙해지면 사회는 어수선해지고 위험한 상태로 빠져든다”(361쪽)고 경고한다. 보이는 것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이런 말을 음미해 보기 바란다.
 
 
덕수궁 가면 아늑한 건 음향적 특징 덕분
도심 속 고궁 안은 돌담 바깥과 완전히 다른 청각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돌담과 돌담 지붕이 덕수궁의 소리환경을 아늑하게 만든다고 한다. [사진 서울소리보관프로젝트]

도심 속 고궁 안은 돌담 바깥과 완전히 다른 청각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돌담과 돌담 지붕이 덕수궁의 소리환경을 아늑하게 만든다고 한다. [사진 서울소리보관프로젝트]

저는 소리 산책을 좋아합니다. 산책하며 소리듣기 즐기는 거죠. 저는 5년 전인 2012년에 서울 도심의 덕수궁을 중심으로 ‘고궁의 소리풍경’을 조사한 일이 있어요. 그때의 경험을 잠깐 이야기해도 될까요?
 
가령 덕수궁 안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그 바깥의 대로와 비슷하다면 아무도 덕수궁을 방문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드러내놓고 깨닫지 못하지만, 도심 속 고궁은 그 바깥의 현대적 지역과 완전히 다른 청각적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궁에는 아늑하고 조용하고 고즈넉한 기운이 서려 있는데 구체적으로 그 바탕에는 고궁의 음향적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고궁 내부는 그 바깥보다 조용합니다. 왜일까요? 우선 그 조용함을 보장해주는 것은 ‘돌담’입니다. 적절한 회절효과로 인해 저음은 담을 타고 들어와 은은하게 울리고 고음은 돌담의 기와지붕 때문에 필터링 되어 덕수궁 내부로 들어오기 힘듭니다. 또한 덕수궁 내부의 소리는 안쪽의 기와지붕을 타고 궁내부로 반사됩니다. 그 과정에서 울림이 없는 건조한 소리에서 중음 대역이 살짝 증폭된 울림이 있는 촉촉한 소리로 바뀝니다. 그 소리의 질이 우리에게는 안정감과 평온함을 주게 됩니다. 도심 속 고궁이 어떤 면에서 위로와 안정감을 주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은 도시의 공간적 조건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주제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도심 속 고궁은 그 바깥의 밀집지역과 확연히 구분되는 음향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
시인, 뮤지션. 아프로-아시안 퓨전 록 밴드 ‘아싸(AASSA)’ 멤버. 인디 록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전 멤버. 최근 아싸의 신보 ‘트레봉봉’을 발표했고,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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