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대훈의 시시각각] 국빈의 ‘혼밥’과 구겨진 체면

중앙일보 2017.12.16 01:41 종합 30면 지면보기
고대훈 논설위원

고대훈 논설위원

한국인은 체면을 따진다. 몸(體)과 얼굴(面)을 합친 체면은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이다. 체면 안에는 인격, 능력, 권위 등이 담겨 있다. 체면을 세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존재가 되길 원하고, 체면을 잃으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기도 한다. 한(恨)과 정(情) 못지않게 한국인을 관통하는 정서다. 나라에도 체면이 있고, 그것이 국격(國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나라의 체면과 관련된 일이다. 형식은 국빈(國賓)인데 체면이 크게 구겨졌다. 방문 기간 중 벌어진 ‘사건’들을 보면 외교적 결례와 홀대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중국의 의도 의심되는 결례와 홀대
“홀대론 동의 못한다” 인식이 더 문제

우선 밥 문제다. 먹는 걸 하늘처럼 받든다는 게 중국이다. 식사 접대는 환대와 우정의 메시지다. 열 번의 만남보다 단 한 끼의 식사가 인간적 신뢰를 쌓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정상들이 ‘식탁외교’에 매달리는 까닭이다. 한데 문 대통령은 3박4일의 방중 기간에 예정된 열 끼의 식사 중 중국 정부의 고위 인사와 식사는 딱 두 번이다. 14일 시진핑 주석과의 만찬, 16일 충칭시 당서기와의 오찬이 전부다. 서열 2위인 리커창 총리를 오찬에 초대했으나 무산됐다.
 
문 대통령은 13일 저녁, 14일 아침과 점심을 숙소에서 따로 해결했다. ‘국빈 혼밥(혼자 먹는 밥)’ 신세가 됐다. 청와대는 서민식당에서 ‘깜짝 조찬’을 했다고 홍보했다. “중국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며 “(혼밥은) 우리가 기획한 일정”이라고 했다. 국빈으로 모셨으면 최고의 대접을 해주겠다는 뜻이다. 현지의 실력자들이 앞다퉈 식사에 초대하며 눈도장을 찍으려고 북적대는 게 정상일 게다. 국빈이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 혼밥을 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둘째, 택일(擇日)의 문제다. 왜 하필 난징(南京) 대학살 80주년 추모일과 겹치는 날 방중을 감행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13일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시 주석은 난징의 추모식으로 향했다. ‘나라의 손님’을 초대해 놓고 정작 주인은 집을 비웠다. 리커창 총리는 베이징에 있었지만 외면했다. 남의 집 기일(忌日)에 찾아가 잔치를 해달라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문 대통령은 베이징에 도착한 지 무려 약 30시간을 기다린 끝에 시 주석을 만날 수 있었다. 사대(事大)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셋째, 의전은 체면을 살려주는 행사다. 영접하는 사람의 신분은 많은 걸 시사한다. 지난 11월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를 찾아 최고의 예의를 표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영접 나온 사람은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로, 우리로 따지면 차관보급이었다. 부총리급 양제츠 국무위원이 영접한 트럼프 대통령까지 갈 것도 없이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도 왕이(王毅) 부장, 즉 장관급이 맞이했다. 국빈이란 명칭이 무색해진다.
 
힘 센 자에게는 융숭한 대접을 하고, 호구로 얕보인 상대에게는 홀대하는 걸 중국의 역사는 보여준다. 자금성을 통째로 비우는 ‘황제의전’을 넘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 대통령이 푸대접을 받을 만큼 만만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물론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저자세 외교, 연내 방중과 시 주석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석 등에 집착하다 보니 일이 크게 꼬였다.
 
대통령의 체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체면이 상처를 입었다. 국격이 추락했다. ‘찬밥 방문’을 강행한 책임자들을 반드시 문책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는 “홀대론에 동의 못한다”고 했다. 굴욕에 가까운 홀대를 홀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인식 격차’가 더 걱정이다. 동화 속 ‘벌거숭이 임금님’으로 만들어 더 욕되게 하려는 것인가. 
 
고대훈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