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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보수 지도자 없어 … 홍준표는 눈에 들어오는 인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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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보수 지도자 없어 … 홍준표는 눈에 들어오는 인물 아니다

중앙일보 2017.12.16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관용(79) 전 국회의장은 자기 길을 걸어 왔다. 부산중학교 1년 선배인 고(故)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의 비서관이 됐다. 이 전 총재가 운명하기 전날 탈고했다는 자서전 『우행(牛行)』 출판기념회를 지난 9월 주관했다. 그러면서도 그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이었다. 그러나 YS의 차남 현철씨 문제를 건의하다 물러났다. 그는 보스 정치를 싫어했다. 사람들은 그를 의회민주주의자라고 평가한다. 비서관 6년, 전문위원 6년, 국회의원 6선. 국회의장을 마친 뒤 정계를 떠나는 전통을 세운 것도 그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한 국회의장이다. 국회 경위들에게 단상을 보호하게 했다. 서류와 신발까지 날아오는 가운데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그런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지켜보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도 안 돼 평가하긴 이르다”면서도 “뭔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적폐청산이 좋은 명분이지만 1년이 다 돼가도록 계속하는 건 국민에게 피로감을 줍니다. 또 적폐청산 대상을 보면 상당히 보복성 정치색을 많이 띠고 있어요. 보복은 보복을 낳고, 다음 정권에 원한을 남깁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11일 ’박근혜 대통령은 유죄 판결이 날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권을 발동하면 태극기세력도 관대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정치도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11일 ’박근혜 대통령은 유죄 판결이 날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권을 발동하면 태극기세력도 관대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정치도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그래도 국민은 70% 후반대의 지지를 보내고 있는데요.
“아직 1년이 안 됐으니까 그렇다고 봅니다. 문재인 정부가 다른 것 하나가, 지금도 선거 때처럼 아무 데나 들어가서 악수하고, 그런 게 인기몰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심성이 착한 사람입니다. 다만 얼마나 자기 소신이 있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요즘 하는 거 보면….”
 
이명박 정부 초기에도 전임 대통령 수사를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보복이 보복을 낳는다고 하는 겁니다. 앞으로 시정한다는 의미에서 표본으로 처벌할 수는 있다고 보지만 이렇게 1년이 넘도록 하는 것은 상당한 피로감을 가져옵니다.”
 
그래도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안 오릅니다.
“지지율을 기대하기 어렵죠. 그 정당의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저렇게 잘못을 저질러서 이런 일을 당했으니까…. 또 우리 당 의원 60여 명이 탄핵에 찬성해 버렸어요. 당내 갈등도 있고, 최악의 상황이죠. 빨리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수 세력이 결집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이승만·박정희·김영삼 같은 걸출한 지도자가 있어야 국민이 따릅니다. 그런데 보수세력, 야당에 지도자가 없는 거야. 홍준표 대표가 있지만, 눈에 들어오는 지도자가 아니야.”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와 관련해 반성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 입장을 정리할 수 없는 게 재판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래서 정당이 생기를 못 찾고 있습니다. 곧 판결이 나지 않겠어요? 그러면 그걸 계기로 정당을 다시 정비해야죠. 박근혜가 저질렀던 일에 대해 한국당이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 출당으로 마무리하려는 모양인데.
“출당해야겠다는 생각도 괜찮고… 재판이 끝나면 그때 다시 상황을 고려해 봐야 합니다. 나는 유죄가 된다고 봅니다. 성급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빨리 정치를 안정시키려면 그때 문 대통령이 특별담화라도 발표하고 사면권을 발동한다면 여야가 새로운 분위기로 출발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나이도 그렇고, 여성이고, 전직 대통령인데…. 문 대통령은 관대한 사람이 되고, 정치도 삽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국민 여론이 반대했고, 이번에는 찬성했습니다.
“그때도 내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3당 대표를 모을 테니 대화를 합시다’ 했어요. 그런데 노 대통령이 ‘지쳤습니다. 안 하겠습니다’ 하고 버텨서 대화를 못 했어요. 나는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하고 많이 싸웠습니다. 총선 앞두고 이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고.”
2004년 3월 12일 오전 11시56분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에서 박관용 국회의장(가운데)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의 가결을 선포한 뒤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중앙포토]

2004년 3월 12일 오전 11시56분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에서 박관용 국회의장(가운데)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의 가결을 선포한 뒤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중앙포토]

 
그 당시 경비들을 동원한 것은 무리한 것 아닌가요.
“국회의장은 국회 회의 진행을 책임지는 사람이에요. 며칠 동안 의장석을 점거했다고 방관하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다수가 찬성하면 통과되는 거고, 반대하면 부결되는 거니까. 나는 절대 통과 안 된다고 본 겁니다. 그런데 왜 통과됐느냐. 그 전날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투신하는 바람에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자민련이 가세한 겁니다.”
 
박 전 대통령에게 탄핵하기 전에 먼저 하야하라고 주장하셨죠.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건이 부각된 뒤 원로 몇 사람을 비공개로 불렀어요. 그때 내가 이야기를 충분히 했습니다. ‘사태가 얼마나 위중한지 대통령께서 아셔야 한다. 깨끗이 물러나시라.’ 그런데도 안 들어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낸 겁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감각이… 시간만 끌면 넘어가리라고 착각한 것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어요. 탄핵까지 갈 필요 없는 일이 이렇게 번진 겁니다. 너무 아쉬워요.”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름 순서가 비슷해 본회의장과 상임위원회에서 늘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과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나라당 시절 본회의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박근혜 대표(왼쪽 앞쪽) 박관용의원과 손학규 의원(오른쪽). [중앙포토]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름 순서가 비슷해 본회의장과 상임위원회에서 늘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과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나라당 시절 본회의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박근혜 대표(왼쪽 앞쪽) 박관용의원과 손학규 의원(오른쪽). [중앙포토]

 
좀 더 일찍 조언을 못 했습니까.
“그게 원망스러운데, 이게 다 박 대통령 성격 때문에 그래요. 터놓고 얘기를 잘 안 해. 아버지 밑에서 많은 사람을 본 겁니다. 배신하고, 제일 좋아하는 부하에게 총 맞아 죽고, 청와대 비서·장관이 거짓말하는 것을 보고 남자 세계에 아주 불신이 쌓였어요. 그 사람 마음에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는 1989년 YS의 러시아 방문에 수행했다. 허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회담을 준비했다. 그때 YS에게 예상 문답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내가 꼭 허담의 마음을 읽고 온 것처럼 질문이 착착 맞아들어간 거야. 마지막에 이렇게 써놨어요. ‘허담이 혹시 단둘이 만나자고 이야기하면 거절하십시오. 무슨 거짓말을 만들어낼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허담이 마지막에 그 말을 했어요. YS가 탄복한 겁니다. 저는 YS·DJ 두 사람이 전횡하는 데 굉장히 비판적이었어요. 그런데 그 일로 비서실장이 된 것 같습니다.”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업무지시를 받고 있다. 박 전 의장은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등 YS 취임 초기 중요한 일을 도왔으나 아들 문제를 거론한 뒤 물러났다. [중앙포토]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업무지시를 받고 있다. 박 전 의장은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등 YS 취임 초기 중요한 일을 도왔으나 아들 문제를 거론한 뒤 물러났다. [중앙포토]

하나회 척결을 당일 아셨다고 들었는데.
“하나회가 문제라고 해서 아는 예비역 장군에게 물어보니 ‘전쟁이 나면 나는 군에 간다. 군에서 총을 지급하면 돌아서서 하나회를 쏘고 올라가겠다’ 그러는 거야. 깜짝 놀랐지. 그래서 YS를 따로 만나 하나회를 정리해야겠다고 했더니, ‘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 두 사람만 알고 입을 닫자’고 하더라고. 어느 날 아침 권영해 국방부 장관을 부르게 하더니 전광석화같이 육군총장을 교체한 겁니다. 일주일 동안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일본 호소카와 총리가 YS랑 회담하러 왔다가 나와 잠시 차를 마셨는데 ‘60만 대군을 갖고 있고, 쿠데타를 겪은 대한민국에서 군을 숙청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비서실장을 그만둔 건 현철씨 때문이죠.
“내가 현철이 이야기가 한창 떠돌 때, 이걸 대통령에게 얘기 안 하면 먼 훗날 ‘그때 비서실장은 뭐하는 놈이냐’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홍인길 총무비서관이 ‘현철이 이야기 하면 야당 때도 목이 날아갔습니다’ 했어. 그래도 용기를 내서 소문을 다 이야기하고, 내가 먼저 선수를 쳤죠. ‘각하,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물어보셔도 저는 대답할 게 없습니다. 내 앞에 오는 그 많은 보고서에 현철이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통치에 큰 누수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대책을 세우십시오.’ ‘대책이 뭐냐.’ ‘외국으로 공부하러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안색이 안 좋더라고. 얼마 있다 성수대교 사고를 계기로 그만두겠다고 했지.”
 
그는 “국회는 각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토론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서로 절충하고, 타협해 공통점을 찾아내는 겁니다. 옛날 민주와 반민주가 싸우던 그대로 해서는 나라가 제대로 안 됩니다. 여당은 야당하고 대화할 생각을 해야 하고, 야당은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내용을 가지고 토론하고 타협해야 정치가 살아납니다.”
 
[S BOX] 1994년 YS 북폭 저지설 사실무근 … 100만 명 희생설에 논의 중단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때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전쟁위기설이 돌았다. YS가 제임스 레이니 주한미 대사를 부르고,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전화해 항의했다. 박 전 의장은 “미국이 북한 핵을 공격하려는 걸 YS가 막았다고 아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오해한 겁니다, 우리가. 94년 6월 15일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가 열렸어요. 거기서 클린턴 대통령이 ‘영변 핵시설을 공격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어요.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이 ‘북한이 장사정포를 발사하면 미군과 한국군, 민간인을 포함해 100만 명 정도의 희생자가 생길 것이란 보고가 있다’고 말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클린턴 대통령이 더는 말을 안 했습니다. 전쟁하려면 스텔스기가 동원돼야 한다는 말은 있었지만 전쟁을 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어요. YS가 클린턴 대통령과 통화할 때 옆에 서 있었던 사람인데….”
 
북폭이 없었던 건 YS의 반대 이전에 100만 명 희생설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는 문 대통령의 미국의 선제타격 걱정에 대해서도 “지나친 우려”라고 말했다.
 
“그것은 협상을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죠. 지금 협상 테이블에서 서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 노력하는 겁니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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