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별별 마켓 랭킹]유해 생리대 파동 그 이후의 순위는?

중앙일보 2017.12.16 00:01
지난 9월 여성 생리대 ‘릴리안’ 제조사인 ‘깨끗한나라’ 사무실 입구 모습.          [중앙포토]

지난 9월 여성 생리대 ‘릴리안’ 제조사인 ‘깨끗한나라’ 사무실 입구 모습. [중앙포토]

과장 보태지 않고, 자궁을 떼어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여성은 한 달(21~38일 사이)에 한 번 반복되는 월경에 따라오는 고통에 시달립니다. 통증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숨 쉬는 것도 불편해집니다. 특히 컨디션 난조와 겹치면 최악이죠. 여성이 생리대 혹은 탐폰 등 생리 관련 용품 이슈에 각별히 민감한 이유가 다 있습니다. 이 기간 그냥 가만히 있어도 미칠 것 같을 때가 많아서입니다.  
여성들이 생리용품 관련 이슈에 민감한 이유는 생리기간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여성들이 생리용품 관련 이슈에 민감한 이유는 생리기간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한국 여성의 절대다수는 일회용 생리대를 씁니다. 한국은 삽입식 생리용품인 탐폰 사용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서구에선 10명 중 7명은 탐폰을 쓴다고 하는데, 우린 10명 중 1~2명 정도입니다. 최근 피부가 민감하거나 신념에 따라 세탁 가능한 면 생리대 사용자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만, 아직은 소수입니다. 결국 상당수의 여성이 반강제적으로 써야 하는 제품이 바로 종이로 만들어진 일회용 생리대입니다. 여성은 폐경까지 총 1만1000개의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게 된다고 하네요.  
올해 생리대 논란은 무엇을 남겼을까 한 대형마트 생리대 매장. [사진 중앙포토]

올해 생리대 논란은 무엇을 남겼을까 한 대형마트 생리대 매장. [사진 중앙포토]

 
일회용 생리대는 전쟁통에 태어났습니다. 세계 1차대전 중 면 붕대 대용으로 개발된 셀로 코튼이 등장했고 전쟁터 야전 병원 간호사들이 이를 생리대로 활용하면서 만들어진 제품이지요. 셀로 코튼의 개발자인 킴벌리 클라크는 1차대전 이후 1920년 세계 최초의 일회용 생리대인 코텍스를 출시했습니다. 1971년 유한킴벌리가 한국에서 처음 출시한 일회용 생리대 '코텍스'의 할아버지쯤 되겠습니다. 이후 한국 일회용 생리대 시장은 성장을 거듭하다 인구 감소로 살짝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난해 기준 연간 4000억원대 규모의 큰 시장입니다.  
생리대 점유율 1위 유한킴벌리의 장수 브랜드 '화이트'

생리대 점유율 1위 유한킴벌리의 장수 브랜드 '화이트'

 
지난해부터 생리대 업계는 여러 이슈에 휘말렸습니다. 우선 소셜미디어에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을 쓰는 친구를 봤다’는 글이 화제가 되면서 생리대 가격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이 글의 진위와는 무관하게, 생리대 가격 인상 시기와 생리대가 비싸 생긴 일에 대한 고충, 이에 대한 관심이 맞물려 결국 생리대 지원법 논의까지 이어진 것은 고무적이었죠.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브랜드 '좋은느낌'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브랜드 '좋은느낌'

이슈는 있었지만, 업계 차원에서의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생리대 브랜드 ‘화이트’와 ‘좋은느낌’을 보유한 유한킴벌리의 자리는 흔들리지 않았고요. 확고한 1위인 탓에 유한킴벌리는 생리대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좌불안석입니다. LG생활건강의 자회사인 유니참이 2위, 문제의 ‘릴리안’ 생리대 제조사인 깨끗한나라가 3위였습니다. 
깨끗한나라는 한국 P&G와 엎치락뒤치락해왔지만, 중견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대기업 사이에서 10%대 점유율을 누리며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왔습니다. 릴리안은 상대적으로 저렴해 온라인 상점 인기 제품이기도 했고요.    
한국 P&G의 '위스퍼'

한국 P&G의 '위스퍼'

유아용 종이 기저귀도 마찬가지지만 생리대 시장의 한계는 뚜렷합니다. 소비 인구 감소로 성장 가능성이 적은 품목입니다. 인구가 줄면 생리대 소비도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업체들은 이런저런 기능을 추가한 기능성 생리대를 많이 선보입니다. 더욱 슬림하고 더욱 편리한 제품,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과 유통에 집중할 수밖에 없죠. 회사 수익이 달려있으니까요. 마케팅이 고가제품에 집중되다 보니 자고 일어나면 생리대 가격이 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2위 LG 유니참의 생리대 브랜드 '바디피트'

2위 LG 유니참의 생리대 브랜드 '바디피트'

 올해 불거진 릴리안 파동은 생리대를 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띄웠습니다. 시작은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와 강원대 김만구 교수팀이 국내 상위 4개사의 생리대 11개 성분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입니다. 대상이 된 모든 제품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검출됐다는 결론이 나와 사용자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어 지난 8월 초, 가장 많은 유해물질이 나온 제품이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라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졌습니다.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

릴리안 생리대 불매운동이 시작됐고, 릴리안 생리대 사용자들의 부작용 경험담이 봇물 터지듯 나왔습니다. 깨끗한나라는 릴리안 생리대 전 제품의 생산 및 판매 중단과 환불을 시작했고요. 릴리안 뿐만 아니라 국산 생리대는 전부 못 믿겠다면서 해외에서 친환경 생리대 직구를 하는 소비자도 많았죠. '생리대의 난(亂)'이라 부를 만합니다.  
 
그런데 릴리안 파동 이후 생리대 시장은 많이 변했을까요. 표면적으로 그렇습니다. 깨끗한나라는 더는 릴리안을 팔지 않습니다. 점유율 2~3위에서 이젠 ‘기타 브랜드’보다도 점유율이 떨어졌습니다. 생리대 논란이 거세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전수 조사 끝에 지난 9월 “시중에 판매되는 생리대 중 인체에 유해하다고 볼만한 제품은 없다”는 결론을 내놓았습니다만, 불안감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생리컵 페미사이클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생리컵 페미사이클

현재 릴리안 생리대의 소비자 5300명은 깨끗한나라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1인당 300만원씩 총 159억원을 청구했습니다. 유해물질이 들어있는 생리대를 판매해 사용하게 되면서 정신적인 손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를 입증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표2> 유해 생리대 파동 이후 생리대 제조사 순위 변화

<표2> 유해 생리대 파동 이후 생리대 제조사 순위 변화

그러나 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식약처 발표 이후 3개월이 지난 지금 생리대 시장은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온 듯합니다. 다만 깨끗한나라가 시장 점유율 순위에서 빠지고, P&G가 3위로 올라섰습니다. <표 2>를 보시면 알겠지만, 각사의 점유율은 조금씩 늘었습니다. 
 
깨끗한나라가 시장에서 퇴출당한 것 외에 생리대 파동은 또 무엇을 남겼을까요. 생활필수품인 생리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덕분에 지지부진했던 생리컵의 판매 허가도 조금 앞당겨졌습니다. 여성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살충제계란', '유해물질 생리대' 등과 관련된 질의를 듣고 있다. 박종근 기자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살충제계란', '유해물질 생리대' 등과 관련된 질의를 듣고 있다. 박종근 기자

여성환경연대가 8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위한 기자회견을 제보자 동반으로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제보자들은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한 이후 생리주기 변화와 생리통이 심해지는 등 이상 증상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박종근 기자

여성환경연대가 8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위한 기자회견을 제보자 동반으로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제보자들은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한 이후 생리주기 변화와 생리통이 심해지는 등 이상 증상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박종근 기자

 
안타까움도 큽니다. 릴리안, 깨끗한 나라가 맞은 몰매가 과연 정당한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식약처 조사를 100% 믿을 수 없다는 소비자 마음도 이해는 갑니다. 그동안 워낙 실망을 많이 했으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전수조사에서 다른 제품과 의미 있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제품이 홀로 강제 퇴출당한 현 상황은 매우 찜찜합니다. 마녀사냥이 끝났는데, 잡은 마녀가 실은 마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반대로 모든 생리대에 문제가 있다면, 릴리안만 벌을 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겠지요.  
 
깨끗한나라는 더이상 자사의 제품을 안심하고 사용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과연 몇 년 지나면 바닥으로 떨어진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의문입니다. 설사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더라도 ‘해로운 물질을 뿜어대는 생리대’라는 꼬리표는 계속 따라다닐 것이고요.  
 
소비자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생리대 같은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에 각별히 주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유해성 의혹을 제기할 때는 한 번쯤은 신중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 이미지를 누르면 지난 '별별 마켓 랭킹 이건 몇등이니'를 볼 수 있습니다.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