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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전투기 처음 본 영국군 반응과 사드의 공통점

중앙일보 2017.12.14 14:39
 [Focus 인사이드]
B-17 폭격기 인근 상공으로 치고 올라오는 Me 163.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었던 연합군을 공황상태에 몰아넣었다. [사진 acesflyinghigh.wordpress.com]

B-17 폭격기 인근 상공으로 치고 올라오는 Me 163.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었던 연합군을 공황상태에 몰아넣었다. [사진 acesflyinghigh.wordpress.com]

 

독일 신형 전투기 앞에 영국군 죽음의 공포 느껴
실제 전공은 9기 격추 뿐, 심리적·전략적 효과 커

1944년이 되자 연합군은 대대적인 폭격으로 독일군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를 막으려 독일 전투기들이 쉬지 않고 출격했으나 폭격기들을 보호하기 위해 따라온 연합군의 호위기들에 의해 차단당하기 일쑤였다. 독일의 Bf 109, Fw 190은 제2차 대전을 상징하는 대표적 전투기일 만큼 성능이 좋았지만 엄청난 물량 공세로 나온 연합군의 폭격기와 호위기를 요격하는데 한계에 부닥쳤다.

 
빠른 속도로 폭격기에 신속히 접근해 일발필살로 격추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다. 바서팔(Wasserfall) 같은 초보적 지대공미사일은 당시의 부족한 기술력 때문에 명중률이 형편없어 실전 투입이 어려웠다. 연이은 폭발 사고로 개발에 실패한 Ba 349처럼 조종사가 직접 조종하는 유인 로켓까지 대안으로 등장했을 만큼 독일은 다급했다. 그래서 일단 작동이 된다면 안전성을 무시하고 곧바로 실전에 투입한 무기들도 있었다.
 
그냥 쳐다만 보다 
 
대표적으로 제2차 대전 당시 등장한 모든 유인 비행체 중 가장 빠른 속도를 내었던 Me 163 코메트(Komet) 로켓 전투기를 들 수 있다. 1944년 8월 5일, 브란데스 상공을 비행 중이던 연합군 비행대 위로 3기의 낯선 비행체가 갑자기 튀어 올라오더니 폭격기들을 호위하던 P-51 전투기를 공격하여 3기를 격추한 뒤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P-51보다 시속 250km가 빨랐던 Me 163의 충격적인 데뷔 모습이었다.
 

연합군 조종사들은 마치 영화 구경하는 것처럼 멍하니 지켜만 봤다. 다음에 나타나면 그냥 공격이 빗나가고 빨리 사라져버리기를 기도하는 방법 외에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결국 몇 차례의 습격을 더 받은 후 연합군 조종사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고 일부는 Me 163이 출몰하는 지역으로의 비행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한마디로 연합군 조종사들에게 Me 163은 죽음의 공포였다.
 
임무를 마치고 착륙한 직후의 Me 163. 안정성이 나빠 정작 독일 조종사들이 탑승을 두려워했다. [사진 wikipedia.org]

임무를 마치고 착륙한 직후의 Me 163. 안정성이 나빠 정작 독일 조종사들이 탑승을 두려워했다. [사진 wikipedia.org]

 
모두가 두려워하다
 
그런데 정작 Me 163 조종사들이 가지고 있던 공포가 연합군 조종사들이 느끼는 두려움 못지않았다. Me 163은 개발 기간 단축을 위해 오래전에 제작된 저속의 글라이더에 고속을 낼 수 있는 발터 RII-203 로켓을 억지로 장착한 형태여서 조종이 상당히 힘들었고 부실한 강착 장치로 인해 착륙 시 전복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만큼 안전에 대한 조치가 전무 한 상태였다.
 
더불어 추진체로 사용된 물질이 인체에 닿으면 피부를 괴사시킬 정도로 독했고 성분이 불안정해서 툭하면 폭발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때문에 정작 Me 163은 독일 조종사들에게도 죽음의 공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쪽은 나타나지 않기를 학수고대했고 다른 한쪽은 탑승을 두려워했지만, 문제는 서로 자신들이 느끼는 공포만 알 뿐 정작 상대가 얼마나 무서워하였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굳이 따진다면 독일이 얻은 효과가 컸다. Me 163은 10여 분의 짧은 시간만 비행이 가능해서 기지 상공 위로 지나가는 한정된 목표만 공격할 수 있었고 선회가 어려워 최초 공격이 실패하면 곧바로 귀환해야 했다. 그래서 전사에 기록된 공식 격추 기록이 총 9기에 불과했다. 이처럼 전술적 효과도 미미했고 독일 조종사들도 탑승을 못마땅해 했지만 연합군에 끼친 심리적, 전략적 효과는 너무 컸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그동안 관계개선의 최대 장애가 돼온 사드 갈등에 마침표를 찍고 양국 교류협력을 정상궤도로 회복시키자는데 뜻을 모았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그동안 관계개선의 최대 장애가 돼온 사드 갈등에 마침표를 찍고 양국 교류협력을 정상궤도로 회복시키자는데 뜻을 모았다. [연합뉴스]

 
그런데 무기사에는 Me 163처럼 몰라서 무서워 했던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드에 대한 중국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아직 실전에 사용된 적 없고 우려하는 레이더의 성능도 미국이 흘린 정보밖에 없다. 방어용이므로 사실 무서워할 이유가 없음에도 당장 대응할 수단이 없어 무력감을 준 것이다. 어쩌면 중국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스스로 한계를 드러낸 증거다. 자신들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알려준 전략적 실수라 할 수 있다.  
 
남도현 군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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