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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환자 질병은 의사에게 통역이 필요해요

중앙일보 2017.12.14 01:00 종합 31면 지면보기
세브란스병원 치과에서 환자 보호자에게 수화로 치료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김선영씨. [우상조 기자]

세브란스병원 치과에서 환자 보호자에게 수화로 치료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김선영씨. [우상조 기자]

김선영(41)씨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의료수화통역사다. 의료진과 청각장애 환자 사이에서 수화로 ‘통역’을 하는 게 그의 일이다. 국내 청각장애인은 약 27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3차(상급종합) 병원 가운데 의료수화통역사가 있는 곳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 한 곳뿐이다.
 

종합병원 수화통역사 1호 김선영씨
심장 아파서 환자가 가슴 쳤더니
오해한 의사가 소화제 처방하기도

“초보지만 감사 인사 많이 들어요
그만큼 수화통역 절실한 거지요”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의사소통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진료와 치료가 불가능하죠. 가령 엑스레이를 촬영할 때, 환자가 어디가 불편한지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면 엉뚱한 곳만 찍을 수 있잖아요. 실제로 어느 병원에선 심장질환으로 가슴이 답답해서 주먹으로 가슴을 치는 환자에게 소화제를 처방한 적도 있다고 해요. 환자가 자신의 몸상태를 상세히 설명하지 못해서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의사소통 부재가 생기면 이와 비슷한 위험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거죠.”
 
말을 못 들으면 글로 대화(필담)를 하면 되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씨는 “청각장애인에게 표음문자인 한글은 장벽이 높은 언어”라고 말한다. ‘가·갸·거·겨’ 같은 소리와 의미를 연결시켜야 하는데 실제 음을 듣지 못하니 말을 익히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수화통역사들은 ‘청각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대신 농인(聾人·보는 사람)과 청인(聽人·듣는 사람)으로 구분한다. ‘청인들의 세상’에서 수화 통역은 농인들에게 대단히 절실한 일이다. 특히 의료수화의 경우는 생사를 좌우할 수도 있다.
 
“농인에게 수화는 한국어·영어·일본어와 같은 별개 언어에요. 목소리가 아니라 손짓과 표정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다를 뿐이죠. 그래서 ‘통역’이라고 하는 거죠.”
 
김씨는 어린 시절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아이였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면 부끄러워 대답도 잘 못할 정도였다. 대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결국 미대를 졸업하고 미술학원 선생님이 됐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즐거웠다. 하지만 10년 이상 직업인으로 살다보니 점점 재미가 사라져갔다. 사실 미대생 김선영에겐 오래 전부터 ‘손으로 그리는 대화’ 수화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과거형이 돼버린 그 꿈을 다시 불러내기로 했다.
 
2014년 1월 수화교육원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했지만 수화는 쉽지 않았다. 일단 한글과 어순이 달랐다. 표정도 중요했다. ‘예쁘다’란 말을 전달할 때 어떤 표정인가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졌다. 미술학원 일 때문에 힘들어 결석하는 날도 점차 늘었다. 하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해 11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수화통역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렇게 시작한 병원 봉사활동은 아이들이 학원에 오지 않는 오전 시간대를 활용했다. 김씨는 오전엔 봉사, 오후엔 일, 밤엔 수화공부를 했다. 재수 끝에 지난해 12월 수화통역사자격증도 땄다. 올 초 세브란스 병원이 계약직 수화통역사를 모집한다는 채용공고를 내자 주저 않고 지원했다.
 
“처음엔 통역을 하며 많이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병아리나 마찬가지인 초짜인 저한테 농인 환자분들이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그만큼 통역이 절실하다는 거잖아요. 그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힘을 냅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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