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백성호의 현문우답]붓다를 만나다(18)-붓다가 말한 '먼지 없는 세상'이 정말 있을까
백성호의 현문우답

붓다를 만나다(18)-붓다가 말한 '먼지 없는 세상'이 정말 있을까

중앙일보 2017.12.14 00:56 종합 27면 지면보기
백성호 기자 사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붓다는 생각을 바꾸었다. “슬픔에 잠긴 이들을 위해 가르침을 펴달라”는 브라흐마의 간곡한 요청을 수락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더러움에 덜 물든 사람이 있으리라. 붓다의 가르침은 그들의 가슴을 관통하리라. 사람들의 가슴이 뚫리는 순간, 불사(不死)의 문(門)도 함께 열리리라.’ 네란자라 강변의 보리수에서는 그런 시(詩)가 울려퍼졌다.  
 
보드가야 사원의 대탑 앞에서 한 순례객이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그의 앞에는 꽃을 꿰어 만든 꽃목걸이가 놓여 있다. 남방 불교에서는 꽃으로 붓다에게 공양하는 전통이 있다.

보드가야 사원의 대탑 앞에서 한 순례객이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그의 앞에는 꽃을 꿰어 만든 꽃목걸이가 놓여 있다. 남방 불교에서는 꽃으로 붓다에게 공양하는 전통이 있다.

 
나는 보드가야 사원을 거닐었다. 풍경은 다채로웠다. 대탑 주위만 돌아도 전세계의 불교를 다 만날 수 있었다. 인도에서 온 순례객들, 더 남쪽으로 내려간 스리랑카의 순례객들, 바닷길로 이어진 태국과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에서 온 남방불교의 순례객들이 있었고, 부탄과 네팔, 티베트와 중앙아시아,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불교의 순례객들도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가사의 색과 형태는 다 달랐다. 사원에서 낭송하는 경전의 언어와 어감도 다 달랐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였다. 붓다의 이치 앞에서 자신의 착각을 부수어가는 수행자로서, 그들은 하나였다.  
 
보드가야 사원의 보리수 앞에서 인도인 순례객이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교 경전을 읽고 있다.

보드가야 사원의 보리수 앞에서 인도인 순례객이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교 경전을 읽고 있다.

 
붓다는 마침내 눈을 떴다.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펴고자 결심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선뜻 내밀 수는 없었다. 왜일까. 깨달음의 이치가 참으로 오묘했기 때문이다. 붓다는 고민했다. “누구에게 전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참으로 오묘하고, 참으로 명쾌한 이 이치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붓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상대는 알라라 칼라마였다. 자신이 출가한 후 찾아간 두 번째 스승이었다. 당시 인도에서 명성이 자자하던 요가 수행의 고수였다. 붓다는 생각했다. “알라라 칼라마는 지식이 풍부하고, 경험이 많고, 지혜롭다. 오랜 세월동안 그는 눈에 먼지가 적은 사람이다. 그에게 이 가르침을 설하면 어떨까?”  
 
산치 대탑에 있는 조각. 2300년 전에 아소카 왕이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보리수를 찾아온 모습이다. 당시 아소카 왕은 이곳에 사당 같은 작은 움막을 지었다고 한다. 그 움막이 있던 자리에 훗날 대탑이 세워졌다

산치 대탑에 있는 조각. 2300년 전에 아소카 왕이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보리수를 찾아온 모습이다. 당시 아소카 왕은 이곳에 사당 같은 작은 움막을 지었다고 한다. 그 움막이 있던 자리에 훗날 대탑이 세워졌다

 
알라라 칼라마는 훌륭한 인물이었다. 비록 싯다르타는 그의 가르침에서 한계를 느꼈지만 말이다. 팔리어 경전에서 붓다는 그를 ‘눈에 먼지가 적은 사람’이라 평했다. 무슨 뜻일까. 우리의 눈에는 늘 먼지가 내린다. 겨울철 차가운 하늘에서 눈발이 내리듯, 먼지가 내린다. 먼지의 정체는 ‘착(着)’이다. 그래서 눈에 착착 달라붙고, 마음에도 차곡차곡 쌓인다. 먼지가 쌓이면 쌓일수록 우리는 세상을 엉뚱하게 본다. ‘있는 그대로’ 보질 않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본다.  
 
가령 교차로의 빨간불을 파란불로 보고, 사랑하는 자식을 원수로 대하고,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여긴다. 왜 그럴까. 먼지 때문이다. 내 마음의 눈을 덮어버린 먼지 때문이다. 그 때문에 수시로 충돌사고가 생긴다. 붓다가 가르침을 펴고자 결심한 까닭도 이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눈에 낀 먼지 때문이다. 그걸 없애주기 위함이었다. 먼지 때문에 사고가 나고, 먼지 때문에 고통을 받으니까.  
 
붓다는 먼지의 정체를 보라고 말한다. 정체를 꿰뚫는 순간, 먼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먼지를 털어내려는 쪽으로 수행을 한다면 끝이 없다. 먼지는 끝없이 내리기 때문이다.

붓다는 먼지의 정체를 보라고 말한다. 정체를 꿰뚫는 순간, 먼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먼지를 털어내려는 쪽으로 수행을 한다면 끝이 없다. 먼지는 끝없이 내리기 때문이다.

 
붓다의 눈은 맑다. 그의 눈에는 먼지가 없다. 그래서 붓다는 먼지 없는 세상을 본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먼지가 가득 낀 눈을 통해 세상을 봐왔던 우리에게는 ‘붓다의 눈’이 낯설기만 하다. 붓다가 말하는 ‘먼지 없는 세상(佛國土)’이란 왠지 허구 같다. 지어낸 거짓 이야기로만 들린다. 왜 그럴까. 우리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런 세상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의 이치 앞에서 자꾸만 고개를 젓게 된다.  
 
붓다 당시에도 그랬다. 기원전 600년은 지금과 비교하면 ‘야만의 시대’였다. 전쟁의 형태는 훨씬 잔혹했고, 생존의 욕구는 그 무엇보다 강할 때였다. 생존의 욕구가 강하면, 쾌락에 대한 욕구도 덩달아 강해지는 법이다. 그러니 붓다에게는 ‘먼지가 적은 눈’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야 ‘먼지 없는 세상’에 대해서 말할 때 눈이 열리리라 보았다.  
 
보리수 둘레에서는 세계 각국의 순례객들이 다양한 언어로 된 불교 경전을 앞에 놓고 명상을 한다. 왼쪽은 베트남어로 된 불교 경전이고 오른쪽은 한자로 된 법화경 경전이다.

보리수 둘레에서는 세계 각국의 순례객들이 다양한 언어로 된 불교 경전을 앞에 놓고 명상을 한다. 왼쪽은 베트남어로 된 불교 경전이고 오른쪽은 한자로 된 법화경 경전이다.

 
그런데 알라라 깔라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싯다르타가 출가한 지 이미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번에 붓다는 웃다카 라마푸타를 떠올렸다. 싯다르타가 만난 세 번째 스승이었다. 그는 불과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난 터였다. 붓다는 다시 생각을 했다. ‘그럼 누가 있을까, 누구에게 이 이치를 설하면 좋을까.’ 그러자 다섯 비구가 떠올랐다. 출가해 수행하는 자신과 6년을 함께했고, 고행을 멈추고 죽을 먹자 배신감을 느끼고 떠났던 동료들이다. 붓다는 그들에게 깨달음의 이치를 전하고자 했다.  
 
다섯 비구는 보드가야를 떠나 바라나시의 사슴동산(녹야원)에 있었다. 사슴동산은 말 그대로 사슴들이 뛰어노는 동산이다. 당시 숱한 수행자들이 모여있던 곳이다. 바라나시는 인도 동부 갠지스강 유역의 중심 도시다. 옛날에는 ‘빛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카시(Kasi)’로 불리었다. 기원전 600년경 카시 왕국의 수도였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지금도 인문과 문화의 중심지다. 바라나시 대학은 수도에 있는 델리 대학과 함께 인도의 양대 명문으로 꼽힐 정도다. 그만큼 문화적ㆍ역사적 저력이 깃든 도시다.  
 
보드가야 대탑에 새겨진 불상고 조각들. 붓다는 네란자라 강변을 떠나 바라나시로 가르침을 펴기 위해 길을 떠났다.

보드가야 대탑에 새겨진 불상고 조각들. 붓다는 네란자라 강변을 떠나 바라나시로 가르침을 펴기 위해 길을 떠났다.

 
보드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상당히 먼 길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을 따라가면 무려 320㎞나 된다. 서울에서 대구까지(약 290㎞) 거리보다 더 멀다. 붓다는 네란자라 강가의 보리수를 떠났다. 다섯 비구가 있다는 바라나시를 향해 길을 떠났다. 그때 붓다는 길에서 나체고행자 우파카를 만났다. 당시에도 인도에는 ‘무소유’를 지향하며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살아가는 고행자들이 많았다. 우파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당신의 얼굴색은 맑고 피부는 깨끗하고 빛이 난다. 당신은 누구에게 출가를 했나? 당신의 스승은 누구인가? 누구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나?”
 
3월부터 인도는 더워진다. 길을 걷기만 해도 햇볕이 살갗을 파고들며 태우는 느낌이다. 붓다는 당시 먼길을 어떤 식으로 걸었을까. 잠은 또 어디서 청했을까.

3월부터 인도는 더워진다. 길을 걷기만 해도 햇볕이 살갗을 파고들며 태우는 느낌이다. 붓다는 당시 먼길을 어떤 식으로 걸었을까. 잠은 또 어디서 청했을까.

 
얼굴은 마음의 창(窓)이라고 한다. 붓다도 그랬을까. 우파카는 붓다의 얼굴색만 보고도 범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물었다. 어떤 스승 아래서, 어떤 수행법을 따르고 있는지 말이다. 그건 자신이 애타게 찾고 있는 물음이기도 했다. 붓다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겼다/모든 것을 알았다/번뇌에 물들지 않는다네…스스로 알았으니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눈먼 세상에서 생사에서 벗어나는 북을 울리기 위해, 담마(法)의 바퀴를 굴리기 위해 카시로 간다.”
 
붓다는 "나는 모든 것을 알았다 번뇌에 물들지 않는다네"라고 노래했다. 어떻게 번뇌를 물들지 않음이 가능할까. 그건 붓다가 번뇌의 정체를 뚫었기 때문이다. 물들래야 물들 수 없는 번뇌의 본래 속성을 말이다.

붓다는 "나는 모든 것을 알았다 번뇌에 물들지 않는다네"라고 노래했다. 어떻게 번뇌를 물들지 않음이 가능할까. 그건 붓다가 번뇌의 정체를 뚫었기 때문이다. 물들래야 물들 수 없는 번뇌의 본래 속성을 말이다.

 
붓다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겼다. 나는 모든 것을 알았다.” 혹자는 이 말을 듣고 “너무 오만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 같다”는 지적이다. 그게 아니다. 붓다가 말하는 ‘나’는 우주와, 이치와 온전히 하나가 된 나다. 그러니 우주 자체이고, 이치 자체이다. 다시 말해 붓다는 “우주가 모든 것을 이겼다. 이치가 모든 것을 알았다”고 말한 셈이다. 사람들이 붓다의 정체를 몰라서 빚어진 오해다.
 
이 말을 듣고서 우파카는 말했다. “친구여, 그대가 말한대로라면 무한의 승리자(Jina)임에 틀림없군.” 붓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번뇌를 부순 사람은 승리자다. 나같은 승리자다. 나는 모든 악을 극복했다. 그러니 우파카여, 나는 승리자다.”  
 
보드가야 사원에 새겨져 있는 연꽃 모양의 조각. 연꽃은 진흙에서 올라온다. 진훍이 없으면 연꽃도 없다. 둘의 속성이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속성과 번뇌의 속성도 서로 그렇게 통한다.

보드가야 사원에 새겨져 있는 연꽃 모양의 조각. 연꽃은 진흙에서 올라온다. 진훍이 없으면 연꽃도 없다. 둘의 속성이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속성과 번뇌의 속성도 서로 그렇게 통한다.

 
사람들은 세상을 둘로 쪼개서 본다. 선과 악. 둘을 나누는 기준은 ‘나’다. 내게 좋으면 선이고, 내게 나쁘면 악이다. 만약 ‘내가 세운 기준’을 무너뜨리면 어떻게 될까. 선도 악도 무너져 내린다. 쪼개짐이 사라진다. 그래서 붓다는 스스로 “나는 모든 악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선악을 나누는 담벼락이 이미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고서 우파카는 “무한한 승리자임에 틀림없군”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파카는 붓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지도 모르겠네, 친구여”라며 머리를 흔들고서 가버렸다. 간절하게 스승을 찾고, 제대로 된 수행처를 찾고 있었을 우파카는 ‘눈앞의 정답’을 몰라본 채 지나쳐 버렸다. 왜 그랬을까. 먼지 때문이다. 우파카의 눈에 낀 먼지 때문이다. 비단 우파카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눈에 낀 먼지 탓에 자신의 삶에서 수시로 충돌사고가 발생하지만, 우리는 ‘정답’을 찾지 않는다. 스승을 찾지 않고, 수행처를 찾지 않는다. 우파카처럼 “그럴지도 모르겠네”라며 지나쳐 버린다.  
 
나체고행자 우파카는 붓다의 얼굴이 범상치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에게 스승과 수행처를 물었다. 그러나 그는 눈앞에 서있는 인물이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임은 알아보지 못했다. 인도 중부의 산치에 있는 불상.

나체고행자 우파카는 붓다의 얼굴이 범상치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에게 스승과 수행처를 물었다. 그러나 그는 눈앞에 서있는 인물이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임은 알아보지 못했다. 인도 중부의 산치에 있는 불상.

 
어찌 보면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의 첫 설법 상대는 우파카였다. 그러나 우파카는 붓다를 알아보지 못했다.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찾고 싶었을 스승이 눈앞에 있었지만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만약 우파카에게 안목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질문을 던졌을 터이다. 자신의 수행에서 끝내 뚫지 못하고 있는 막다른 골목의 물음을 붓다에게 던졌을 터이다. 만일 붓다가 그 물음을 뚫는다면 스승으로 삼지 않았을까. 그러나 우파카에게는 그런 안목이 없었다.  
 
붓다는 다시 길을 떠났다. 인도의 햇볕은 뜨겁다. 낮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붓다는 해가 뜨기 전부터 길을 걷지 않았을까. 뜨거운 낮에는 쉬었다가 해질녘에 다시 길을 갔으리라. 그리고 나무 위나, 동굴 등에서 비와 바람과 이슬을 피하며 잠을 청했으리라. 그렇게 먼 길을 걷고 또 걸어서 붓다는 다섯 비구를 찾아갔다. 나는 버스를 타고 사슴동산으로 갔다.  
 
인도의 시골 정경. 붓다는 저런 오솔길도 걸으며 보드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먼 길을 갔을 터이다.

인도의 시골 정경. 붓다는 저런 오솔길도 걸으며 보드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먼 길을 갔을 터이다.

 
붓다를 만나다, 지난 기사가 궁금하세요?
보드가야(인도)=글·사진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배너

백성호의 현문우답

이메일 받기를 하시면 기사 업데이트 시
메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