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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다운 사자를 위하여

중앙선데이 2017.12.10 02:00 561호 34면 지면보기
야생동물
백과사전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산과 들에 저절로 나서 자라는 동물로 새·사슴·물고기·다람쥐·뱀 따위다. 야생동물들을 잘 관리하고 보호하려면 먹이·물·은신처 등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 여자의 사전
아마도 그 여자가 반려동물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서 부쩍 신경을 쓰게 된 것들. 사람과 교감하는 모습에 감동을 느끼다가도 그들이 자연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독이게 되는 것들.  

 

“그건 너답지 않아”. “나다운 게 뭔데”.  
 
드라마에서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답다’ ‘~다움‘이란 말이 맴돌면서 나는 뜬금없이 십 년 전 아프리카 초원에서 보았던 사자를 떠올린다. 그 때 드넓은 들판에서 그 숫사자는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런데 문득 쿵하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사자, 그러니까 그림책에서나 동물원에서, 혹은 TV속 동물의 왕국에서 수없이 보았던 사자는 모두 가짜였던 것 같은 그런 느낌. 저래서 바로 백.수.의. 왕.사.자.인거구나. 저게 바로 진짜 사자’다움‘이구나. 
 
그 사자가 동물의 왕국에서처럼 옆에 있던 기린이나 사슴을 마구 잡아먹으면서 입에 피를 묻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풀밭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에 갈기를 날리고 있는 모습은 숨이 탁 막힐 정도로 멋있었다. 뭐랄까, 진정한 사자의 정수 혹은 사자의 행복을 엿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사자는 겨우 사자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았다. 사자가 사자 ‘다워지려면’ 풀과 바람과 넓은 땅이 있어야 했다.  
나는 동물원에 가기를 좋아했다. 동물원은 왠지 낭만적인 느낌이다. 동물원이라는 가수의 노래도 그렇고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 역시 소박하고 안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동물원에 가서 기린을 보고, 공작새를 보고, 팬더 곰을 보고 하는 풍경만 떠올려도 괜스레 미소가 지어지지 않는가.  
 
그런데 ‘사자다운’ 사자를 보고 나서는, 왠지 동물원에 가는 일이 꺼려진다. 여기서 나는 세상의 모든 동물원이 없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물론 아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원의 사육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고, 그 분들이 동물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는지도 알고 있다. 다만 그 사자를 만난 이후로 야생의 동물을 그들답게, 그들의 본성에 충실할 수 있게 동물원이 어떻게 변해야 할까 고민하게는 된다.  
하지만 요즘 또 중독적으로 보고 있는 동물 TV프로그램이나 동물 비디오 같은 걸 보면, 내가 생각했던 야생동물의 ‘본성’이란 것이 진짜인지 또 헷갈린다. 이런 프로그램에는 드라마의 “그건 너답지 않아”만큼 자주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야생의 짐승이어야 할 삵이나 칡, 혹은 고라니나 올빼미가 사람들과 친해지는 이야기다. 혼자서 죽을 고비에 몰렸다가 고마운 아저씨 아주머니의 손길로 살아난 뒤, 그 정을 잊지 못해 자꾸만 집으로 찾아온다. 그들은 사람에게 애교를 부리고 애틋한 정을 주고 받는다. 그러다 전문가가 등장한다. “이렇게 사람 손길에 익숙해지면 야생에서 살아갈 수가 없어요.”
 
이들에게 미꾸라지나 벌레를 먹이면서 야생훈련이 시작되고 결국 그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식으로 끝맺는다. 이별의 장면에서 주인공도, 나도, 시청자도 눈물을 뿌린다. 댓글이 쏟아진다. “꼭 돌려보내야 하나요. 그게 꼭 그 동물들을 위하는 건가요”. 나도 마음이 흔들린다. 어쩌면 진짜 야생동물 ‘다움’에는 인간과 교감하는 본성도 들어있는 것 아닐까. 개가 그랬고 고양이가 그랬듯이 그렇게 조금씩 사람과 가까워지면서 함께 살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어차피 살아남을지도 아닐지도 모르는 들판에 내보내는 게 최선일까. 
 
그러나 오랜 진화와 문명의 역사를 본다면 어쭙잖은 동정심으로 야생의 본성 운운할 일이 아니다. 우생학자 프랜시스 갤턴은 “모든 야생 동물은 한 번쯤 가축이 될 기회가 있었다. 그 중에서 일부만 성공했고 나머지 대부분은 과거에 어떤 사소한 문제 때문에 실패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야생 상태로 남아 있을 운명인 듯하다”라고 이미 1세기 전에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 ‘사소한 문제’ 때문에 이렇게 엇갈린 운명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러니 그들의 운명이 바뀌었으면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야생은 야생‘답게’ 인간과 공존하면서 사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결론 지었다. 
 
갑자기 동물들을 생각하게 된 건 먹을 것이 없어 자꾸 도심으로 내려오는 멧돼지들과 겨울 추위에 돌아다니는 길고양이들이 안타까와져서다. 멧돼지와 길고양이들을 우리가 전부 품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그들답게,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윤정 : 칼럼니스트. 사소하고 소심한 잡념에 시달리며 중년의 나이에도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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