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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 사는 젊은이들 … 자동차 업체 ‘마이 카 시대’ 종말에 대비

중앙선데이 2017.12.10 01:05 561호 18면 지면보기
포르셰도 매달 ‘구독’한다고?
월 2000달러(약 220만원)만 지불하면 언제 어디서나 차량을 빌려 탈 수 있는 포르셰 패스포트 서비스. [사진 포르셰 패스포트]

월 2000달러(약 220만원)만 지불하면 언제 어디서나 차량을 빌려 탈 수 있는 포르셰 패스포트 서비스. [사진 포르셰 패스포트]

차량 한 대 가격이 1억원을 호가하는 포르셰 스포츠카를 매달 200만원가량만 내고 탈 수 있다면 어떨까. 설마하는 상상이 현실로 나타났다. 포르셰는 지난달 미국 애틀랜타에서부터 구독(서브스크립션) 서비스 ‘포르셰 패스포트’를 시작했다. 월 2000달러(약 220만원)만 지불하면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카이옌·마칸·박스터 등 총 8가지 차종을 골라 탈 수 있다. 1000달러(약 110만원)를 더 낸다면 총 22개 차종으로 선택권이 넓어진다. 신문이나 잡지처럼 자동차를 구독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앞으로는 소비자가 쏘나타·그랜저를 자기 소유로 구매하지 않고 ‘현대’나 ‘제네시스’라는 브랜드와 약정 계약을 맺고 일정 기간 여러 종류의 차를 마음껏 탈 수 있게 된다. 렌터카와 자동차 공유를 섞어 놓은 듯한 신종 서비스인 셈이다.

2030년 차 판매 400만 대 줄 전망
금융위기 겪은 청년 세대 겨냥해
판매에서 공유로 패러다임 전환
팔지 않고 매달 이용료 받을 수도

 
포르셰는 왜 새 차를 파는 대신 자신들의 고가 차량을 렌트하기로 했을까. 포르셰는 “청년 세대를 겨냥한 시도”라고 밝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에선 청소년 시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현 20~34세 연령층을 ‘경기침체 세대(Recession Generation)’라고 부른다. 이들은 자신들의 부모 세대와 달리 차량·집 등 큰돈이 들어가는 소비에 인색하다. 황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에어비앤비·우버와 같은 서비스에 익숙한 이들은 예전과는 다른 소비 개념을 갖고 있다”며 “금융위기를 통해 집·자동차 등 보유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경험한 젊은 세대는 무엇을 ‘계속’ 소유하는 것을 경계한다”고 설명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최근 차량 공유(카셰어링) 개념의 확산으로 2030년에는 일반 소비자의 자동차 구매량이 현재보다 연간 최대 400만 대 감소하고 차량공유용 판매량은 200만 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30대의 차량 구매 11% 감소
지난 8일 정의선(47) 부회장 주재로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열린 현대차 법인장 회의에선 색다른 주문이 떨어졌다. 양적 성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미주, 유럽, 중국, 아프리카·중동 등 각 권역별로 질적 성장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달라는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내년 글로벌 판매목표 역시 올해(825만 대) 대비 10%가량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이 연간 판매 목표량을 줄인 건 이례적인 일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양적 성장도 중요하겠으나, 자율주행차·전기차 등 각종 신기술의 등장으로 자동차가 ‘탈 것’에서 ‘모빌리티(이동수단)’로 바뀌고 있다”며 “포르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더 이상 ‘마이카’ 시대가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당장 내수 시장만 하더라도 30대 이하 소비자가 ‘엔트리 카(첫 차)’를 사는 일이 전에 비해 드물어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조사 결과, 올 상반기(1~6월) 30대가 사들인 승용차는 14만4360대로 전년 동기(16만2422대) 대비 11.1% 감소했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전체 승용차 신규등록 대수(79만3987대) 가운데 30대 소유자 비중(18.2%)은 20%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2014년 서비스를 시작한 쏘카와 그린카의 이용자 수는 2014년 각각 51만 명에서 320만 명(6.2배), 240만 명(4.7배)으로 늘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과 달리 청년 실업률 증가와 결혼 연령 증가 등의 다른 요인이 있다”면서도 “최근 추세를 보면 향후에는 차를 소비자에 파는 것이 아니라 차량공유 회사에 기업 간 거래(B2B)로 납품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해석했다.
 
마이카의 개념이 변화하는 가운데, 정 부회장이 제시한 질적 성장의 한 가지 방안이 바로 ‘카셰어링(차량 공유)’이다. 현대차는 현재 AJ렌터카와 사업 제휴 방안을 모색 중에 있다. 렌터카 업체를 인수한다면 현대차는 카셰어링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로부터 차량 구매대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또는 렌터카 업체로부터 매달 이용료를 받으며 고정 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이미 현대차는 전 세계 곳곳에서 차량공유 시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아이오닉 일렉트로닉’ 100대로 구성된 카셰어링 서비스를 시작했다. 순수 전기차(EV)로만 구성된 서비스는 유럽에서 현대차가 처음이다. 국내에서도 내년 2월까지 현대캐피탈과 함께 내놓은 ‘딜카’에서 1박2일간 코나 무료 카셰어링 서비스를 진행한다. 딜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모바일 앱을 내려받은 뒤 아이디·비밀번호·이름(실명)·운전면허번호 등을 입력하면 된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1년 이상 된 사람만 가입할 수 있다.
 
벤츠·BMW, 전 세계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
미국 차량공유 서비스 1·2위인 우버·리프트에 모두 가입한 운전자 차량. [AP=연합뉴스]

미국 차량공유 서비스 1·2위인 우버·리프트에 모두 가입한 운전자 차량. [AP=연합뉴스]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는 독일의 다임러·BMW는 2010년을 전후해 차량공유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 자동차 판매량 역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월간 신차 등록 대수는 2009년까지만 해도 40만 대를 넘었지만 올해에는 월 평균 36만 대 수준에 그쳤다. 업계에선 2020년엔 30만 대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회사 다임러만 하더라도 2008년 독일에서 자회사 ‘카투고(car2go)’를 설립해 차량 공유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전 세계 26개 도시에서 총 1만4000대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에서만 7개 도시에서 카투고를 이용할 수 있다. 렌트 요금은 1분에 26유로센트(350원)로 두 시간을 운전하면 17.90유로(약 2만4000원), 하루를 통째로 빌리면 79유로(10만7000원)다. 디터 제체 다임러 최고경영자(CEO)는 올 1월 “벤츠의 럭셔리 승용차들도 카투고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BMW는 2011년 ‘드라이브나우’라는 자회사를 BMW 본사가 있는 독일 뮌헨에 설립했다. 후발 주자인 BMW는 소속 브랜드인 미니와 BMW 전기차·SUV·세단 등 인기 차종을 제공하는 전략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현재 유럽 지역에서 약 5400대를 서비스하고 있다.
 
일본 도요타 역시 차량 공유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으려 하고 있다. 버블 경제 시기였던 1990년 789만 대에서 지난해에는 550만 대까지 자국 내수 시장 규모가 30%가량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도요타는 우버에 1억 달러(약 1100억원)를 투자하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미국 카셰어링 업체 겟어라운드에도 1000만 달러(약 110억원)를 출자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우버와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를 펼치는 그랩에도 차량 100대를 제공하기로 했다. 포드는 지난해 9월 통근용 밴 합승 서비스 채리엇을 인수했다.
 
차량공유 서비스의 성장세는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자동차 시장의 밸류체인(가치 사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윤대성 수입차협회 부회장은 “자율주행이든 차량공유든 앱을 매개체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만큼, 자동차 제조 업체보다 각종 서비스를 개발해 내는 구글 같은 플랫폼 사업자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메이커는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절벽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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