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패딩, 문제는 적정 사이즈 … 유행 벗어나 코트로 멋 내 볼 만

중앙선데이 2017.12.10 01:00 561호 23면 지면보기
[두 남자의 스타일 토크] 겨울 아이템
언제부터인가 겨울철이 되면 십대 학생들의 패션이 모두 똑같아진다. ‘등골 브레이커’라고 불리는 고가 패딩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너도나도 똑같은 옷을 입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역 되물림’ 받는 부모들이 철 지난 아이들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어른들의 패션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거다. ‘유행’이라기보다는 ‘강박증’으로까지 보이는 천편일률적 겨울 패션 트렌드 속에서 멋쟁이를 꿈꾸는 남자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두 명의 패션 고수가 이야기를 나눴다.

소매 길어도 그냥 입는 식이면
복장에서 힘 빠지고 격식 잃어
키 작은 사람은 롱패딩 부적절

‘에르노’는 어른 남자들의 패딩
유행 지난 아이 패딩‘역 되물림’

이너웨어 패딩은 발상의 전환
코트 안에 입으면 품위 유지돼

 
 
해링본 패턴 코트는 클래식한 분위기 속에 감각을 뽐낼 수 있는 비장의 무기다. 천편일률적인 겨울 아우터 사이에서 개성을 뽐내고 싶다면 도전해 볼 만하다. 장갑은 소재보다는 컬러 톤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 [사진 pitti immagine uomo]

해링본 패턴 코트는 클래식한 분위기 속에 감각을 뽐낼 수 있는 비장의 무기다. 천편일률적인 겨울 아우터 사이에서 개성을 뽐내고 싶다면 도전해 볼 만하다. 장갑은 소재보다는 컬러 톤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 [사진 pitti immagine uomo]

신동헌(이하 신)=꼭 이야기하긴 해야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게 남자의 겨울 아이템인 것 같다. ‘전국민 패딩시대’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요즘은 ‘겨울 패션=패딩’이 된 것 같은데.
 
남훈(이하 남)=그나마 패딩도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뉘어 있어 다행이다. 주로 아이들이 많이 입는 건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보온성이 높은 아웃도어 패딩이고 성인들에게 인기 있는 건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보온성과 멋을 결합시킨 패딩이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인된 패딩은 멋을 좀 아는 어른 남자들이 많이 입는다. 예를 들면 에르노(Herno) 같은 것들.
 
신=에르노가 ‘어른 남자들의 패딩’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브랜드 로고도 없고 가볍고 심플해서 좋더라. 알고 보니 역사가 꽤 깊은 브랜드던데, 원래 패딩전문 브랜드인가.
 
남=에르노는 원래 트렌치 코트를 만들던 브랜드였다. 그들이 내세우는 장점 중 하나가 초경량 테크놀로지인데, 패딩 아우터인데도 셔츠나 니트 정도의 가벼움을 지녔다. 어깨를 짓누르지 않아 어른들 특히 나이드신 분들한테도 적합하다. 슈트 위에 입기도 적당하고.
 
신=포멀한 분위기의 패딩이면 모르겠는데, 노스페이스, 캐나다구스 등 아웃도어 느낌이 강한 패딩을 슈트 위에 입고 다니는 건 개인적으로 썩 예뻐 보이지 않던데.
 
남=요즘은 슈트에 운동화 신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는데 뭐 그런 아재 같은 이야기를 하나(웃음). 패딩은 캐주얼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점점 드레스업을 내려놓고 캐주얼차림을 즐기는 요즘의 추세에 맞닿아 있어 그런 조합들이 등장하는 거 같은데, 아우터 선택에 따라 그 날 복장에 대한 격식이 갖춰진다는 건 알아 둬야 할 것 같다. 물론 슈트 위에 패딩을 입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날씨가 추운날이면 자연스레 패딩에 손이 간다. 하지만 격식이 필요한 날이나 자리에는 패딩보다는 코트를 입는 게 맞다고 본다.
 
신=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회사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이용해 이동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패딩을 입지 않아도 코트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 게다가 요즘처럼 패딩을 많이 입는 시기에는 오히려 코트 입는 게 더 멋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는 캐쥬얼에도 코트를 주로 입는다.
 
보온성과 멋을 결합시켜 성인에게 인기 있는 이탈리아 맨온더분 패딩. [사진 맨온더분] 카멜 색상 코트는 코트의 정석이라 불러도 좋다. 어떤 이너웨어에도 어울린다. [사진 pitti immagine uomo]

보온성과 멋을 결합시켜 성인에게 인기 있는 이탈리아 맨온더분 패딩. [사진 맨온더분] 카멜 색상 코트는 코트의 정석이라 불러도 좋다. 어떤 이너웨어에도 어울린다. [사진 pitti immagine uomo]

남=어떤 하나가 너무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 거기에 대한 반작용이 생긴다. 일종의 패션 변증법 같은 거지. 사랑을 위해 왕위를 포기했단 영국의 윈저공도 그런 사람이었다. 왕실의 엄격한 복장 규율을 따르지 않고 위트를 더해 보고자 슈트에 니트를 조합해 입었다. 그게 최초의 포멀-캐주얼 믹스매치였던 셈이지. 아마도 다들 슈트와 코트를 입고 다닐 때에 누군가가 패딩을 선택했을 거고, 이런 방식으로 ‘슈트와 패딩을 조합해도 나쁘지 않구나’하는 흐름이 지금의 유행을 선도했을 거라 본다.
 
신=아, 갑자기 패딩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패딩을 선택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남=캐주얼웨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사이즈 선택에 있어 범위가 자유롭다는 것이다. 패딩의 소매가 길다고 해서 수선해 입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게 작은 부분에 관대해지기 시작하면서 전체 복장에서 힘이 빠지는 거다. 패딩이 문제가 아니라 적절하지 않은 사이즈가 패딩을 격식을 차리지 않은 옷으로 보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신=한때 ‘등골 브레이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아웃도어 패딩 기억하는가. 요즘 학원가에 가면 어른들이 그 패딩을 입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유행이 지나 아이들의 손을 떠난 패딩을 버리기 아까우니까 그 부모들이 입는 거지. 사이즈도 제대로 맞지 않는 그런 패딩들을 입고 있는 어른들을 보면 약간 서글플 때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롱패딩도 곧 그렇게 될 것 같아 걱정이다.
 
남=날씨가 추우니까 롱패딩이 유행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모든 사람이 단지 유행이라고 해서 같은 아이템을 입는다는 게 안타깝다. 특히 롱패딩은 키 작은 사람에게는 어울리는 아이템이 아니고, 추위를 심하게 타지 않는 사람에게도 별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그게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단지 유행이라는 이유만으로.
 
신=만약 자녀들이 롱패딩을 사 달라고 떼를 쓴다면 어떻게 설득시킬 건가.
 
남=아이들의 성향을 억지로 바꿀 수는 없다. 아이들의 미래는 현재의 경험에서부터 형성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원한다면 못하게 막는 것보단 원하는 걸 이루어 주고 동시에 다른 경험의 기회도 제공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유행하는 롱패딩을 갖고 싶어한다면 사 준 다음에 코트나 니트, 재킷 등을 입는 기회도 만들어 주는 것. 이렇게 경험을 쌓다 보면 더 이상 패딩을 입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됐을 때 어떤 걸 선택하면 좋은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거다.
 
신=공감한다. 미국에서는 아버지 세대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문화와 놀이들을 자식 세대와 공유하는 게 낯설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캐치볼을 한다거나, 롤링스톤스의 음악을 듣는다거나, 오래된 차를 고친다거나. 그래서 자식 세대가 나이가 들어 아버지 세대가 되었을 때 또 다시 같은 주제로 대화할 수도 있고, 세대 간의 공통분모가 생겨나는 것 같더라.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세대별로 즐기는 문화와 유행이 너무 다르고, 그걸 공유하면 이상하게 여긴다. 할아버지가 걸그룹 노래를 찾아 들으면 변태 취급 받기 십상일 거다. 조용필까지 안 가고 서태지만 해도 아이들에게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 보니, 우리의 아버지 세대는 취향을 가지기 힘들었던 것 같다. 먹고 살기 바빴으니까. 어른들의 취향을 존중하고 공감하려 해도 그럴 만한 잣대가 없는 거 같아 서글프다.
 
남=맞는 말이다. 요즘 아이들이 보기에 복장뿐 아니라 문화를 즐기는 방식에 있어 존경할 만한 사람이 부족한 거 같다. 소위 영향력 있는 사람들조차 제대로 된 문화를 즐기는 방식을 몰랐으니 본보기가 되기 힘들었지. 어떻게 보면 복장이 세대 간에 쌓이는 그 나라의 수준이고 문화인데, 한국처럼 굉장히 성장을 많이 이뤄 낸 나라에 제대로 된 복장과 문화를 즐기던 사람이 없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 변하기도 하지만 영향력 있는 사람에 의해 변화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앞으로 그런 본보기가 되어 줄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유행이라는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데, 3년 전에 카센티노(보풀이 일어나 있는 울 소재) 코트를 구입해 잘 입고 다녔었다. 참 마음에 드는 코트인데 요즘엔 잘 안보이는 거 같아서 선뜻 꺼내 입기가 겁이 난다. 올해 겨울에도 입어도 될까.
 
남=물론이다. 복장은 남과 비교하면 안된다. 자기 자신이 비교 대상이어야 한다. 즉 스스로의 기분과 환경에 따라 옷을 고르고 입어야 한다는 거지. 남과 비교하는 습관 때문에 롱패딩 사태도 일어나는 거다. 스스로에게 어울린다 판단되면 어느 때라도 좋다.
 
신=패딩을 입을 때 이너웨어는 얇게 입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 복장 그대로 아우터만 코트로 바꾸면 좀 춥다. 코트를 입을 땐 이너웨어를 어떻게 입는 게 좋은가.
 
남=얇은 패딩을 코트 안에 입는 걸 추천하고 싶다. 코트 안에 입었을 때 잘 보이지 않는 것. 얇지만 몸에 밀착돼서 충분히 따뜻하다. 패딩을 이너웨어로 선택하는 건 발상의 전환이다. 격식을 잃지 않고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 유니클로나 데이즈 같은 SPA 브랜드에서 싸고 좋은 게 많이 나온다.
 
신=슈트를 입는 사람들은 꼭 가죽장갑만 껴야 되나. 장갑에도 따로 룰 같은 게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남=근대까지만 해도 장갑은 사시사철 필수품이었다. 장갑은 예의의 상징과도 같은 거였는데, 중세시대 때 서로 장갑을 벗어 던지면 결투신청과 같은 의미였다. 그만큼 필수적인 아이템이었는데 점차 줄어든 것이다. 아무래도 슈트를 입을 때면 가죽장갑이 좋겠지만, 소재보다는 컬러 톤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안정감이 들고 더 드레시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신=내복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와이셔츠 안에 내복을 입는 건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인가.
 
남=상황에 따라 입을 수 있다고 본다. 단 ‘난닝구’라고 불리는 소매가 없는 건 금물이다. 심지가 없는 반팔이나 긴팔을 선택하고 셔츠와 꼭 색깔을 맞춰서 입어야 한다.
 
신=마지막으로 40대 직장인 남성이 꼭 갖추고 있어야 할 겨울 아이템을 꼽자면 뭐가 있을까.
 
남=먼저 언제 어디서나 입어도 좋은 네이비, 혹은 카멜 색상의 코트, 정말 추운 날 입을 심플한 디자인의 패딩 사파리. 캐시미어 소재의 블랙과 그레이 터틀넥 두 벌, 가죽과 가죽이 아닌 소재의 장갑 두 개. 그 정도면 회사에 가건 주말에 외출을 하건 멋쟁이 소리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알록달록한 패딩은 유행이 지나면 촌스러워 보이지만, 이런 옷들은 말 그대로 평생 입을 수 있다.
 
 
신동헌·남훈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 대표
신동헌 스포츠투데이·에스콰이어 기자를 거쳐 남성패션지 레옹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온갖 놀거리를 섭렵한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패션뿐 아니라 카메라·오디오·전자기타·자동차·모터사이클에 이르기까지 광폭의 취미를 자랑하는 순혈 마초다.
남훈 남자의 복장과 패션에 대한 연구를 삶의 목표로 삼은 클래식 슈트 매니어. 패션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여러 기업과 협업해서 브랜드와 편집숍을 함께 만들었다. 자신만의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도 운영한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