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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자기장에 선우예권 가세 … 흥행 ‘가성비’ 최고

중앙선데이 2017.12.10 01:00 561호 26면 지면보기
[CRITICISM] 남성 피아니스트 전성시대
조성진

조성진

12월이 되니 자연스럽게 2017년 한 해를 정리하게 된다. 클래식 음악계에도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올해 내게는 ‘남성 피아니스트’란 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조성진
예매창 열리자마자 몇분 내 매진
홍민수·손정범 신예도 주목
백건우·김선욱 등 노련미 여전
내한 연주·음반 발매 남성 대세
‘리스토마니아’ 내년 계속될 듯

 
피아니스트 조성진(23)이 그 중심에 있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2015년 가을 이후 두 해가 지났지만 그의 자기장은 여전히 세다. 공연은 예매창이 열리자마자 수분 만에 매진되고 그동안 발매된 음반 쇼팽 콩쿠르 실황, 쇼팽 발라드는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11월엔 사이먼 래틀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과 본고장 베를린과 서울에서 라벨 협주곡을 협연하며 어린 시절 꿈을 이뤘다.
 
올해엔 조성진의 새로운 대항마가 가세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이다. 지난 6월 미국 포트워스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우승 직후 며칠간 한국 내 공연 제안 요청이 40여 건이나 밀려들었다. 12월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 잡혀있던 연주회가 매진돼 더 큰 홀인 콘서트홀을 하루 더 대관, 수상 기념 무대를 마련했다. 해외 스케줄이 꽉 짜여 있어 약 3년 동안은 선우예권의 국내 공연을 잡기 어려울 전망이다.
 
 
선우예권 국내 공연계획 3년간 꽉 차
2017년을 빛낸 신예 피아니스트들. 독일 뮌헨 ARD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에 오른 손정범, 프란츠 리스트 콩쿠르 2위 홍민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선우예권(위부터). 선우예권의 올 6월 우승 직후 국내 공연 제안이 40여 건이나 밀려들었다. [사진 류태형, 중앙포토]

2017년을 빛낸 신예 피아니스트들. 독일 뮌헨 ARD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에 오른 손정범, 프란츠 리스트 콩쿠르 2위 홍민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선우예권(위부터). 선우예권의 올 6월 우승 직후 국내 공연 제안이 40여 건이나 밀려들었다. [사진 류태형, 중앙포토]

피아니스트 홍민수(25)의 프란츠 리스트 콩쿠르 2위 입상도 쾌거였다. 1846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를 방문한 리스트를 기념하기 위해 작곡가의 서거 100주기인 1986년부터 위트레흐트에서 개최된 콩쿠르다. 리스트의 작곡·편곡·작품만을 연주하는 이 콩쿠르에 25개국의 19~29세의 피아니스트 74명이 겨뤘다. 현지에서 관람한 준결선에서 홍민수는 감탄을 자아내는 터치로 새로운 차원의 연주를 들려줬다. ‘순례의 해’ 1년 스위스 S160 중 ‘빌헬름 텔 성당’은 돔 타워의 카리용 소리처럼 맑게 울렸다. 압도적인 파워의 중저음은 지축을 울리는 듯했다. ‘발렌슈타트 호수에서’는 물 흐르듯 유려한 타건에서 촉촉한 사운드가 흘렀다. ‘샘가에서’는 시적이고 서정적이었다. ‘폭풍우’에서는 격렬한 연주로 광기와 몰락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손의 속도가 다른 참가자와 달랐다. ‘라 캄파넬라’는 곱게 연마된 고음 트릴에 숨이 멎을 듯했다. 홍민수는 지난달 11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리스트 콩쿠르 갈라 콘서트 무대에서 우승자 영국의 알렉산더 울먼, 3위 입상자인 러시아의 디나 이바노바와 함께 국내 팬들에게도 기량을 선보였다.
 
이에 앞서 독일 뮌헨 ARD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에 오른 손정범(26)의 향후 활약도 기대해 볼 만하다.
 
대한민국 남자 피아니스트의 대선배 백건우(71)는 10년 만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여드레 동안 완주하며 건재함을 노출했다. 간판 주자 김선욱은 서울시향과 브람스 협주곡 2번을 협연하며 독일 레퍼토리에 강함을 보여 줬다. 김선욱은 베이스 연광철의 반주자로도 나서는 한편, 영화 ‘황제’에서 배우로도 변신했다.
 
내한 공연도 남성 피아니스트의 흑건과 백건이 강세였다. 물론 경륜과 음악성으로 마니아층 관객들의 격찬을 받았던 엘리소 비르살라제와 관능적인 연주의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등 여성 피아니스트의 공연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빈 본고장의 베토벤을 들려준 루돌프 부흐빈더, 정교한 타건으로 세부를 낱낱이 조망한 이고르 레비트, 쇼팽 콩쿠르 우승자다웠던 라파우 블레하츠, 바흐를 연주하는 성자 같았던 예프게니 코롤리오프를 위시해 파질 사이,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당 타이 손 등이 수많은 청중을 매료시켰던 한 해였다.
 
이 같은 남성 피아니스트 강세는 클래식 음반계도 마찬가지다. 올해 유니버설 뮤직의 발매 스케줄을 보면 단연 남성 피아니스트의 존재감이 눈에 띈다. 선우예권 콩쿠르 실황(데카 골드), 예프게니 키신의 베토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슈베르트, 다닐 트리포노프의 쇼팽, 조성진의 드뷔시(이상 DG)로 이어졌다. 거물 피아니스트의 발매가 잇따르자 한국 유니버설 뮤직에서는 9장의 피아노 신보를 ‘피아노 마스터’란 제목으로 묶어서 홍보했다. 엘렌 그리모의 두 장짜리 베스트앨범을 제외하면 모두 남성 피아니스트다.
 
클래식 음악의 3대 주류 악기로 전공자 수나 중요도 면에서 피아노바이올린첼로가 꼽힌다. 이 가운데 피아노, 그중에서도 남성 피아니스트가 유독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악기의 특성도 꼽히지만 기획사 입장에서 보면 흥행의 측면에서 ‘가격 대 성능비’가 가장 높은 카드이기 때문이다.
 
프란츠 리스트

프란츠 리스트

백건우와 김선욱 공연을 개최한 공연기획사 빈체로의 송재영 부장은 “확실한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남성 피아니스트 공연의 티켓이 잘 팔린다. 단순히 티켓 판매만 고려하면 오케스트라보다 낫다”고 했다. 티켓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면 클래식 음악 공연 관람을 위해 지갑을 여는 쪽이 여성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김선욱 같은 경우 기존 팬층이 탄탄하고 30~40대 여성이 티켓을 많이 구매한다고 한다. 백건우의 공연은 어린 시절 그를 보고 자란 50~60대 여성이 자녀들과 함께 관람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쌓아 온 명성에 홍보를 의존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에 비해 남성 피아니스트 공연 티켓은 기존의 팬층이 좌우한다. 개인의 실력에 꾸준한 인기가 크레마처럼 덮여 티켓 판매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피아노는 바이올린이나 첼로에 비해 레퍼토리 폭이 넓다. 청중에게 질리지 않는 메뉴를 공급할 수 있다. 셈여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폭이 오케스트라에 버금간다. 불꽃 같은 강렬함과 호수처럼 잔잔함으로 여성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장면은 남성 아이돌에 열광하는 대중음악계를 떠올리게 한다. 조성진이 무대로 걸어 나올 때 청중의 환호는 결코 가요계에 뒤지지 않는다.
 
 
기존 팬층 탄탄 … 여성이 압도적
클래식 음악이든 대중음악이든 연주자에게 열광하는 팬의 실루엣은 한 남성 피아니스트로부터 기원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프란츠 리스트(1811~1886)다. 헝가리 출신의 리스트는 9세 때 베토벤의 제자였던 체르니가 재능을 알아보고 악보까지 사주면서 가르쳤다. 11세 때 이미 작곡을 하고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섰다. 리스트는 28세 때부터 8년 동안 대규모 유럽 투어를 감행했다. 초월적인 솜씨를 발휘하며 탁월한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높인 영예로운 시간들이었다. 여성팬들은 집단히스테리에 가깝게 열광했다. 1841년 첫 공연차 베를린에 머물던 리스트의 숙소 앞에 30명의 학생이 모여 그가 작곡한 가곡을 합창했다. 며칠 뒤 베를린 최초 리사이틀은 보기 드문 청중의 열광으로 끝났다. 시인인 하이네는 그 현상을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라고 명명했다. 리스트의 연주가 청중을 엑스터시에 이르게 한 현상을 일컫는다. 도자기와 브로치에 리스트의 초상화를 새겨 넣은 건 오늘날 ‘굿즈(Goods)’라 부르는 기념품과 다를 게 없는 얌전한 모습이다. 리스토마니아는 지저분할 정도로 치열한 양상을 띠었다. 여성 팬들은 리스트의 손수건과 장갑, 머리카락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였고 그가 연주 중 피아노 현이 끊어질 때마다 쟁탈전을 벌였다. 현으로 기념 팔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녀들은 리스트가 먹다 남긴 커피 찌꺼기를 얻기 위해서 작은 유리병을 들고 다녔다. 한번은 리스트가 피우다 남은 담배를 버렸는데, 기다리던 팬이 그것을 주워 리스트의 이니셜 ‘F.L.’을 다이아몬드로 수놓은 갑에 소중히 담아 갔다고 한다. 오늘날 흔히 쓰이는 ‘마니아’는 ‘열중하는 사람들’ 정도의 의미지만 당시에는 의학 쪽에 방점이 찍힌 병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었다. 음악학자 다나 쿨리는 “리스토마니아는 비틀스 팬을 일컫는 ‘비틀마니아’ 정도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히스테릭한 반응”이라고 정리했다.
 
유럽 투어 당시 리스트의 티켓 수익은 엄청났다. 모스크바 한곳에서만 고급 저택 한 채 값이었던 4만 프랑을 벌었고, 1840년대에만 22만 프랑의 돈을 벌었다. 리스트가 세상을 떠난 지 150년이 지난 지금, 그의 후예들은 여전히 흑건과 백건의 마법으로 전 세계 청중을 매료시키고 있다. 클래식 공연계에 남성 피아니스트의 매력은 새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꼭 들어 봐야 할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빌헬름 박하우스(1884~1969)는 19세기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정통 독일 피아니스트다. 아르헤리치가 “박하우스의 베토벤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고 말한 대로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등에서 언뜻 딱딱해 보이지만 웅숭깊은 배음이 기품 있게 공명한다.

 
폴란드 출신의 아르투르 루빈슈타인(1887~1982)은 쇼팽에 강했다. 에튀드를 제외하고 쇼팽의 거의 모든 작품을 녹음했다. 스페인·프랑스나 남미 작곡가들, 특히 드뷔시나 라벨 등의 20세기 초 작품 해석에도 밝았다. 발터 기제킹(1895~1956)은 프랑스 리용에서 태어난 독일인답게 프랑스와 독일 레퍼토리 해석에 뛰어났다. 모던한 베토벤상을 구현했고 서정적이면서도 정교한 라벨과 드뷔시 연주를 남겼다.
 
빌헬름 켐프(1895~1991)는 낭만주의적인 베토벤상을 그렸다. 나이를 먹으면서 기교가 상승 그래프를 그렸던 보기 드문 피아니스트였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4~89)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출신으로, 안톤 루빈슈타인의 제자 펠릭스 블루멘펠트에게 배우며 러시아 피아니즘을 계승했다.
 
글렌 굴드(1932~82)는 캐나다 토론토 출신 불세출의 피아니스트다. 그의 삶은 아리아로 시작해 변주를 거쳐 다시 아리아로 돌아오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닮았다. 1955년의 첫 음반, 1981년의 마지막 음반의 차이는 바로 우리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클라우디오 아라우(1903~91),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1915~97), 에밀 길렐스(1916~85),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1920~95) 등도 꼭 들어봐야 할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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