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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형평 감안한 수능 1주일 연기

중앙선데이 2017.12.10 01:00 561호 28면 지면보기
이호영의 동양학 가라사대
베이징 공원의 시험장. 빈부를 막론하고 이 좁은 공간에서 며칠간 시험을 치러야 했다.

베이징 공원의 시험장. 빈부를 막론하고 이 좁은 공간에서 며칠간 시험을 치러야 했다.

동양은 시험 위에 서 있는 문명이다. 교육, 수능, 학벌과 출세가 시험을 바탕으로 한다. 지난달 지진으로 수능을 1주일 연기하자 나라는 들끓었지만 실로 안전과 형평을 적절히 감안한 조치였다. 이를 통해 시험이나 성적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걸 배울 수 있었다.
 
중국 왕조시대 3년마다 베이징(北京) 공원(貢院)에서 회시(會試)가 열렸다. 2박3일씩 일정으로 세 차례 연달아 사서(四書), 오경(五經), 책론(策論) 시험을 치렀다. 살을 에는 베이징의 3월, 문도 없이 비좁은 칸막이에서 답안을 채워야 했고, 시험장에 들어서면 죽어야만 도중에 나올 수 있었다.
 
회시를 보는 건 현시(縣試), 부시(府試), 원시(院試), 세시(歲試)를 거쳐 과시(科試), 향시(鄕試), 거인복시(擧人覆試)에 합격했음을 뜻한다. 이후 회시복시(會試覆試)와 궁궐에서 치르는 전시(殿試)가 남는다. 약 80만 자를 외워야 하고, 시험만 16년이 걸리는 가혹한 삶이었다.
 
향시와 회시에는 괴담도 많았다. 각 지역에서 뽑힌 영재 수백이 좁은 시험장에 며칠씩 갇혀 심한 경쟁과 스트레스를 겪었다. 가문, 지역 간 알력과 개인적 원한이 시험장을 메웠다. 치명적인 실수를 노리는 원한 맺힌 귀신들 이야기도 많이 전해진다.
 
귀족세력을 누르고 중앙집권 강화를 목적으로 시작한 과거는 1904년(조선은 1894년)에 막을 내릴 때까지 약 1400년을 이어 오며 나라의 근간을 이뤘다. 과거제도 흥행의 일등공신은 평등한 응시자격과 공정한 시험 및 채점제도였다. 오랜 제도니 만큼 신뢰와 지속성도 강했다.
 
왕조시대에 관리는 타산이 좋은 직업이었다. 관리만이 명예와 부를 누릴 수 있었기에 출세도 외길이었다. 평민도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으므로 온 백성의 눈은 과거에 모아졌다. 모두의 관심이라 국가도 철저히 관리했다. 대체로 과거제가 타락하면 민심이 이반하고 왕조가 몰락했다. 수능의 관리도 이와 마찬가지다.
 
병폐도 심했다. 경전(經典) 외우기 시험이라 전문성이 없었다. 외우기가 전부라 교육은 사학인 서당이 전담했다. 국가는 시험을 위해 엄청난 비용을 치르면서도 정작 전문교육기관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그저 시험만이 국가의 교육정책이었던 것이다.
 
불필요한 학과목, 사교육, 암기 위주 시험 그리고 학벌주의는 우리 교육의 병폐다. 우리네 중·고등학교와 대학 대부분도 사립이다. 성적과 학벌만이 실력이라 암기 요령만 가르치는 사교육이 판친다. 내용은 변했지만 형식은 과거제와 다를 바 없다. 과거를 폐지했다고 의미까지 죽은 건 아니었다. 아직도 시험과 성적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셈이다.
 
수능 연기 조치는 지금껏 ‘시험을 위한 교육’ 위에 세운 동양이 아닌 ‘안전과 형평성을 위한 교육’의 새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시험을 위한 사회에서 안전을 위한 사회로의 이전이기에 소중한 변화다.
 
 
이호영 현 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연구원. 서강대 종교학과 학사·석사. 런던대학교(S.O.A.S.) 박사. 동양학 전공. 『공자의 축구 양주의 골프』『여자의 속사정, 남자의 겉치레』『스타워즈 파보기』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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