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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달력을 걸며

중앙선데이 2017.12.10 01:00 561호 29면 지면보기
삶과 믿음
12월이 되니 각 사찰에서 새해 달력을 보내 왔다. 사찰 풍경에 음력과 육십 간지를 큼지막이 써 놓아서인지 첫눈에도 약간 촌스럽다. 하지만 절 달력은 시골 어르신과 연세 드신 분들에게 특히 인기다. 숫자가 커서 보기가 좋고, 음력이 있어 농사에 필요한 계절과 시기를 잘 알 수 있다. 육십 간지는 글쎄.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정보인데, 왜 절 달력에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여러 달력 중 하나를 골라 벽에 걸고 보니 새삼 올 한 해가 다 간 것이 실감 난다. 그간 이룬 일은 무엇이며 아쉬운 일은 또 무엇인가.
 
인생은 누구에게나 가지 않은 길을 매일 가야 하는 나그넷길이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문득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 떠오른다. 시에서 그는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택했고,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두 갈래가 아니라 무수한 길이 놓여 있다.
 
작게는 음식 메뉴부터 상품 선택, 진로, 배우자, 하는 일을 지속할지까지 우리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도 있고, 크고 작은 낯선 길도 매일 생겨 난다. 프로스트는 두 갈래 길에서도 선택에 대한 회한이 따른다는데, 수많은 갈래 앞에 선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에 따른 결과는 언제나 아쉬움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정말 커다란 아쉬움과 후회는 선택도 하지 않고 시도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 아닐까? 이런 얘기를 들었다. 어느 가난한 이탈리아인이 광장의 성인 조각상에 ‘꼭 복권이 당첨되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참다 못한 조각상이 버럭 소리쳤다고 한다. “먼저 복권부터 사!”라고.
 
얼굴을 붉히며 올해 선택하지도, 시도하지도 않았던 일들을 손꼽아 본다. 성공을 기원하기 전에 먼저 선택하고 시도부터 해야 하는데, 말하자면 복권부터 일단 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다.
 
얼마 전 TV를 보니, 일본 장례식장의 목탁 치는 로봇스님이 나왔다. 영상으로 보니 웃음부터 났지만, 사실 같은 업종(?)으로서 남 일이 아니었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더니, 이제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어느 부분까지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지하고, 어느 일을 사람이 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결정은 누가 하며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
 
나와 외모가 닮은 로봇스님 때문인지, 한 해를 보내며 예전과 달리 무지의 답답함을 느꼈다. 종교는 이런 일을 판단하는 데 과연 어떤 지혜를 줄 수 있는지 걱정도 되고. 휴머니티를 내세워야 하나, 공리를 내세워야 하나? 아니면 절 달력 날짜에 나타난 육십갑자를 헤아려 봐야 하나? 다만 분명한 건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는 점이다. 모든 선택에는 아쉬움이 남겠지만, 그것이 곧 자신의 삶이자 미래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원영 스님
조계종에서 불교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아사리. 저서『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인 것들』. BBS 라디오 ‘좋은 아침, 원영입니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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