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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인 집단비난 바탕엔 은밀한 ‘샤덴프로이데’ 있다

중앙선데이 2017.12.10 00:02 561호 6면 지면보기
자기 확신 빠진 온라인 세계, 왜
고(故) 김광석씨의 전부인 서해순씨는 경찰 조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고(故) 김광석씨의 전부인 서해순씨는 경찰 조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인터넷상 집단 여론몰이로 극심한 피해를 본 건 2010년 가수 타블로가 대표적이다. ‘왓비컴즈’로 알려진 미국 시민권자 김모씨가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타진요) 카페를 개설하고 그의 스탠퍼드대 학력 위조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었지만 이후 가족에 대한 의혹 등 전방위적인 음해로 확산됐다.

타인 불행 보며 느끼는 기쁨 '샤덴프로이데'
2010년 ‘타진요’ 집단 음해 시초
익명 뒤에 숨어서 상대방 비난
대가 없고 ‘정의에 기여’ 만족감

인터넷 의혹 사실로 여기는 것은
‘잘못 제대로 처벌’ 믿음 없기 때문
“일정 정도는 표현의 자유” 시각도

 
타진요 사건은 2012년 운영진과 회원 9명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가 확정되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1심 서울중앙지법은 의혹을 완전히 종결시키기 위해 스탠퍼드대로부터 받은 입학서류, SAT 응시 결과, 성적증명서 등을 하나하나 설시했다. 그럼에도 주범 왓비컴즈 김씨(소재 불명으로 기소 중지 상태)는 여전히 카페를 운영하며 똑같은 음모론을 반복 생산하고 있다.
 
이렇듯 특정인을 비난하는 집단 심리에는 정의감과 은밀한 만족감이 동시에 내재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라고 한다.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조지선 박사는 “사람에게는 부와 명예를 갖춘 유명인이나 특정인의 지위를 추락시켰을 때 은밀한 즐거움을 느끼는 본능이 있다. 특히 온라인 세계는 상대방을 비난하더라도 자신은 익명의 뒤에 안전하게 있기 때문에 면대면에서 공격했을 때 치를지도 모르는 대가가 없다.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을 비난함으로써 스스로 사회 정의에 기여하고 있다는 심리적인 이익까지 주어진다”고 분석했다. 김민식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희생양 만들기는 어느 인간사회나 있어 왔지만 온라인의 특성상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 행위가 공개적으로 노출된다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타진요 회원들, 네티즌 수사대의 시작
타블로

타블로

2010년 당시 타진요 회원 수는 10만 명을 넘어섰는데 네티즌이 직접 범죄 대상을 찾아 의혹을 제기하고 나름의 증거를 모아 수사를 하는 ‘네티즌 수사대’의 시초가 됐다. 이후 ‘OO녀’ 등으로 현실에서 불쾌한 행동을 하는 일반인을 공격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오인 정보를 바탕으로 할 경우 당사자가 큰 피해를 보게 된다는 점이다. 설사 죄가 있더라도 국가의 형사 사법 절차에 따르지 않은 단죄는 위험하다는 시각도 있다. 외국에서는 범죄자를 직접 처단하는 ‘디지털 자경단(自警團)’의 활동이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에서 소아성애 등 어린이에 대한 범죄를 감시하는 ‘레츠고 헌팅(Letzgo Hunting)’, 중국의 ‘인육수색(人肉搜索)’ 등은 신상 유포를 통해 직접 처단에 나선다. 2013년 영국에서는 레츠고 헌팅에 의해 신상이 공개된 남성이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논란이 됐다.
 
‘아이를 떼어놓고 운행했다’는 의혹이 일었던 240번 버스와 2015년 성폭행 피해를 주장한 세 모자 사건. 모두 사실과 다른 의혹으로 밝혀졌다. [중앙포토]

‘아이를 떼어놓고 운행했다’는 의혹이 일었던 240번 버스와 2015년 성폭행 피해를 주장한 세 모자 사건. 모두 사실과 다른 의혹으로 밝혀졌다. [중앙포토]

온라인 여론의 긍정적인 역할을 고려해 일정 정도는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용석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240번 버스 사건은 아동 보호와 관련한 이슈였기 때문에 공적 관심사였다고 볼 수 있다. 가수 김광석씨 사건 역시 제기된 의혹에 비해 실체 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 공중의 사적 관심이 공적으로 확대돼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불법적이고 해악적이지 않다면 표현의 자유로 폭넓게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1996년 사망한 가수 김광석씨는 사건 당시부터 타살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올해 들어 유명 기자가 김씨의 이름을 딴 영화를 공개하고 국회의원이 ‘김광석법’ 제정을 추진하며 수면으로 다시 떠올랐다. 과거 인터넷에 떠다니던 몇몇 조각에 지나지 않았던 의혹들이 집중 조명됐고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장근영 선임연구원은 “우리 사회에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나 잘못된 행동을 저지른 사람이 적절하게 처벌받고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표현을 규제하는 방향보다 언론이 사실을 제대로 검증하고 여론이 과열될 때 이를 진화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들을 제시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6월 ‘세모자 사건’은 언론이 검증을 통해 유언비어의 확산을 차단한 사례다. 40대 여성 이모(46)씨는 미성년자인 두 아들과 함께 출연한 동영상을 포털 게시판에 올리면서 “남편과 친척, 동네 사람들 100여 명에게 수년간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맘카페를 중심으로 “피해자가 힘이 없어 외면당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이씨의 주장을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여론이 커지자 한 방송사가 취재를 하면서 무속인 김모(59)씨의 존재가 드러났다. 경찰 수사 결과 이씨를 세뇌시켜 두 아동까지 허위 증언을 하도록 한 것이 드러났다. 무고·아동복지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무속인 김씨는 징역 9년, 이씨는 징역 2년이 올해 3월 확정됐다.
 
응집력 높고 외부 단절 때 집단 사고 강해
이처럼 반박 여론 또는 사실 검증이 기존 여론을 압도하면 부정확한 확신은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하지만 폐쇄적이고 결속력이 강한 커뮤니티일수록 객관적인 상황 인식을 하지 못하는 인지 부조화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에 동조했던 이들이 그렇다. 안아키는 극단적인 자연주의 육아로 아동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보건복지부가 나서 경찰 수사로 이어졌고 대구 수성경찰서는 김씨 등 3명을 의료법 위반 혐의가 인정된다는 취지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회원은 “안아키가 마녀사냥에 희생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80년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는 이 같은 집단 사고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집단 사고는 ‘하나보다 둘, 둘보다 여럿이 확신하는 정보는 믿을 만하다’는 전제에 의사 결정에서 집단의 능력을 과신하고 도덕성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집단 응집력이 높고 외부 의견으로부터 단절됐을 때, 구성원들이 높은 스트레스나 낮은 자존감에 휩싸여 있을수록 취약하다. 집단 사고로 형성된 여론은 객관적인 상황 파악을 어렵게 만든다. 반론을 제기하는 구성원은 비난받고 침묵으로 동조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외부의 지적이 들어오면 집단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커뮤니티보다 포털 사이트의 영향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강정한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소규모의 서브 컬처이기 때문에 인터넷 전체로 볼 때 영향력이 크지 않다. 한국의 특수성은 포털 사이트에 있다. 개인적인 문제라도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르면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된다. 주요 언론사들은 이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용석 교수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보통신망법상 임시 구제 조치를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법적인 처벌을 떠나 손상된 평판은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건의 초기 단계에서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평소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온라인 미디어 등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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