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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 확신’에 빠진 그들 … 일단 마녀사냥 ‘240번 버스’, 무혐의에도 싸늘 ‘김광석 의혹’

중앙선데이 2017.12.10 00:02 561호 1면 지면보기
“욕하는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영웅심에 그러는지 몰라도 당사자한테는 어마어마한 충격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인터넷 미확인 정보로 비난 화살
‘내 말이 맞지’ 편향된 정보만 수용
“증거가 없을 뿐 무죄는 아니다”
이슈 확산 때 저널리즘 검증 중요

 
지난 9월 ‘240번 버스 사건’이 일어난 지 3개월. 버스 운전기사 김모(60)씨는 여전히 그 생각만 떠올리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당시 김씨가 운행하던 240번 버스가 건대역을 출발하면서 ‘어린아이와 엄마를 떼어놓은 채 운행을 강행했다’는 의혹이 맘카페를 중심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김씨의 딸이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 글을 올렸지만 ‘버스 기사를 처벌해 달라’는 글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가는 등 분노한 여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서울광진경찰서가 사실 확인에 나서면서 김씨는 누명을 벗게 됐다. 짧은 기간 그는 무자비한 악플에 두들겨 맞아야 했다.
 
지난 6일 서울 중랑구 신내동 중랑공영차고지에서 만난 김씨는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건이지만 나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이번 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했다. 김씨는 “인터넷 악플이 이렇게 무섭다는 걸 처음 알았다. 추측성 글을 올린 사람들은 따끔하게 혼이 나야 하는데 내가 알기로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아주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 확인도 안 하고 보도한 언론사들도 문제”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김씨의 딸은 결혼식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가족들의 신상이 노출되는 것을 가장 우려했다고 한다. 그는 “딸이 처음 글을 올리고선 펑펑 울더라. 그 생각을 하면 (그 글을 올린 사람이) 용서는 안 된다. 그래도 좋은 일을 앞두고 있고 회사도 많이 배려를 해줘 고소장을 정식으로 내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새 온라인상의 확인되지 않은 정보 때문에 특정인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2012년 채선당의 임신부 폭행사건, 푸드코트 국물녀 사건, 2015년 세모자 사건과 올해 240번 버스 사건 등이 그것이다. 2010년 가수 타블로 학력위조 논란 때만 해도 연예인들이 마녀사냥의 주 타깃이었지만 일반인으로 그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수사기관이 개입해 정반대 사실이 드러나도 피해는 회복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선 채선당 사건의 점주는 폐업을 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인터넷은 다양한 소스를 통해 정보가 확산되는 만큼 이용자들이 선택적으로 지각하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거봐, 내 말이 맞아’라는 심리로 편향된 정보만을 받아들인다. 이를 확증편향(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비슷한 성향의 이용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건의 실체와 관계없이 집단적인 확신이 형성되면 당사자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황 교수는 “어떤 어젠다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단계가 있는데 바로 언론이 개입할 때다. 전통적인 저널리즘이 사실 검증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故) 김광석씨와 딸 서연양 사망과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서해순씨에게도 비난이 집중됐다. 서연양의 유기치사 혐의는 의사 소견 등에 따라 검경이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은 “증거가 없는 것이지 죄가 없는 것이 입증된 건 아니다”며 여전히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박훈 변호사는 “대중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 있는 증거가 전혀 제공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한쪽으로 휩쓸려 갔다. 일부 국회의원이 사건 초반에 실체를 명확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동조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영화 ‘김광석’의 감독 이상호씨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상태다.
 
이처럼 반복되는 현상을 ‘디지털 자경주의(自警主義)’로 규정하고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있다. 남궁현 미국 덴버 메트로폴리탄 주립대 교수는 “현실 세계의 불법·비도덕적 행위라고 판단한 개인 또는 집단이 온라인상에서 자의적으로 당사자를 응징하는 것을 묵과하면 ‘디지털 린칭(lynching·사적인 제재)’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아무리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했더라도 수사와 처벌은 국가기관의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제·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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